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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 2 (室內展示場)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室內展示場

 

 

 

경천사십층석탑

(敬天寺十層石塔)

 

이 塔은 高麗 忠穆王  에 大理石을 材料로하여 세운 10층 石塔이다. 高麗時代 木造建築의 다포 樣式을 따르고 있으며 당시佛敎 敎理와 思想을 잘 表現하고 있다. 基壇部는 四面이 튀어나온 아(亞)자형 으로 사자(獅子) 서유기(西遊記),나한(羅漢) 등의 彫刻이 있다. 欄干과 塔身 그리고 지붕으로 이루어진 塔身部는 木造塔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하다. 1층부터 4층까지는 靈鷲山에서 說法하는 釋迦牟尼佛과 같이 佛敎에서 重要視되는 여러場面을 描寫한 16회상이 彫刻되어 있다. 지붕에는 각각이 어떤 字面人智를 알려주는 懸板이 달려 있다. 5층부터 10층까지는 다섯분 혹은 細分의 부처를 빈틈없이 彫刻 하였다. 相輪部는 元來의 모습을 알수없어 박공 형태의 지붕만을 復元 하였다. 이 塔은 1907년 日本의 宮內大臣 다나카 가 日本으로 密搬出 하였으나 英國 言論人 베텔과 美國 言論人 헐버트등의 勞力에 의하여 1918년 에 返還되었다. 1960년에 일르러 景福宮에 復元 되었으나 酸性비 風化作用에 의해 保存上 問題點이 드러나 1995년 解體되었다. 國立中央博物館에서는 2005년 새 博物館 開館에 맞춰 歷史의 길에 復元 하였다.

 

 

월광사원랑선사탑비

(月光寺圓朗禪師塔碑)

 

이 塔碑는 新羅末의 高僧 원랑선사(816 ~ 883년)의 一生을 記錄하고 있다. 원랑선사가 입적(入寂)하자 헌강왕(憲康王)은 대보선광(大寶禪光)이라는 塔 이름을내리고 김영(金潁)에게 碑文을 짓게 하였는데 글씨는 唐나라 구양순(毆陽詢)의 해서체(楷書體)이다. 거북받침(龜趺)위에 비몸(碑身)을 올려놓고 그 위에 교룔(蛟龍)을 새긴 머릿돌을 얹는 構成으로. 이러한 塔碑의 모습은 統一新羅와 高麗時代에 크게 流行하였다.

 

 

청동그릇

(壺杅銘靑銅盒)

 

三國時代 (高句麗 415) 호우 글자가 있는 靑銅그릇 慶北 慶州 壺杅塚 出土.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국보 3호

 

新羅 眞興王 16년에 세움

 

 

금동미륵보살반가상 

(金銅彌勒菩薩半跏像)

 

元來 이 像은 부처가 太子였을 때 人生의 無常함을 느끼고 出家하여, 衆生救濟라는 큰 뜻을 품고 苦惱하는 태자사유상(太子思惟像)에서 由來한 것이다.  新羅에서는 花郞을 彌勒과 連結시켜 흔히 미륵보살반가상(彌勒菩薩半跏像)이라고 불렀다.  이 半跏思惟像은 日本에도 傳해져 아스카[飛鳥] 時代와 하쿠호[白鳳] 時代에 많이 製作되었는데, 특히 고우류 사[廣隆寺]에 있는 木造半跏思惟像은 國寶 제83호의 半跏思惟像과 거의 같은 形態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많은 적송(赤松)으로 만들어진 점이나 당시 三國과 日本 간의 交流關契를 살펴볼 때 우리나라에서 製作된 像으로 推定하고 있다.

 

 

구름학무늬매병

(靑磁象嵌雲鶴畵文梅甁)

 

高麗  梅甁은 中國 宋나라 梅甁에서 由來된 것이지만, 12 世紀경에 이르러서는 高麗만의 豊滿하면서도 類緣한 線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이러한 高麗  梅甁의 樣式은 이 作品에서 洗練味의 極致를 보여주고 있다. 높이 42.1㎝, 입지름 6.2㎝, 밑지름 17㎝의 크기의 매병의 아가리는 작고 낮으며 밖으로 살짝 벌어져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가리 아랫부분에는 꽃무늬를 둘렀으며 굽 위로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몸통 前面에는 구름과 鶴을 새겨 넣었는데, 黑白象嵌한 圓 안에는 하늘을 向해 날아가는 鶴과 구름무늬를, 원 밖에는 아래쪽을 向해 내려가는 鶴과 구름무늬를 새겼다. 鶴의 進行方向을 다르게 表現한 것은 陶瓷器 表面이라는 일정한 制約을 넘어 四方으로 空間을 擴散시켜 짜여진 區劃으로부터의 自由로움을 追求한 듯하다. 이같은 表現相의 變化 追求와 함께 文樣處理의 能熟함에서 高麗  陶瓷器 의 優秀함과 高麗人의 創意力을 엿볼 수 있다. 高麗   13 世紀  간송미술관 소장

 

 

잔.잔받침

(靑磁蔭刻簞花文花形托盞)

 

靑磁 풀꽃 무늬 꽃模樣 盞과 盞받침

 

 

사자장식향로

(靑磁獅子香爐)

國寶60호

 

宋나라 使臣 서긍이 지은 "宣和奉使高麗圖經" 에는 獅子香爐에 대하여 위에 쭈그리고 있는 짐승이 있고 아래에는 연꽃이 있어 그것을 받치고 있다. 라고 記錄되어 있다. 記錄과는 약간의 差異가 있겠으나 12세기 靑磁 사獅子香爐의 特徵을 보여주는 作品이다.

 

 

청자칠보투각향로

(靑瓷七寶透刻香爐)

 

高麗 前期의 靑瓷 香爐로, 높이 15.3㎝, 대좌지름 11.2㎝의 크기이며 뚜껑과 몸통 두 部分으로 構成되어 있다.뚜껑은 香이 피어올라 퍼지도록 뚫어서 粧飾한 구형(球刑) 부분과 그 밑에 받침 部分으로 되어 있다. 형 部分 곳곳의 交差 地点에는 흰 점이 하나씩 粧飾되어 있다. 몸통은 두 부분으로 윗부분은 둥근 火爐 形態인데, 몇 겹의 菊花잎으로 싸여있고 다시 커다란 菊花잎이 이를 받치고 있다. 아래 部分은 香爐 몸체를 받치고 있는 臺座로, 3 마리의 토끼가 등으로 떠받들고 있다. 臺座의 옆면에는 덩굴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토끼의 두 눈은 검은 점을 찍어서 나타냈다. 釉藥은 灰靑色으로 은은한 光澤이 난다.

 

 

원앙모양향로                        뚜껑연꽃모양향로

(靑磁鴛鴦形香爐)                                 (靑磁陰刻蓮花形香爐)

 

高麗 12세기 1909년 購入 이와같은 形態의 香爐는 像型物이 粧飾된 뚜껑의 像型物을 通해 香을 피우도록 構成되어 있다. 香爐의 基本的인 造型은 中國당대 金屬器에 있으며 北宋代에 運營된 河南省 淸凉寺 가마터에서도 靑瓷 香爐片이 出土되었다. 비록 像型粧飾 뚜껑은 없지만 實用기와 感想容器의 性格을 모두 갖춘 秀作이다.

 

 

거북모양주자

(靑磁蓮花龜紋注子)

國寶제 96호

 

高麗 12세기 1966년 入手    高麗 12세기 1916년 購入

 

 

사자장식향로

(靑磁獅子香爐)

國寶제60호

 

高麗 12세기 1951년 入手 宋나라 使臣 서긍이 지은 "宣和奉使高麗圖經" 에는 師子向路에 대하여 위에 쭈그리고 있는 짐승이 있고 아래에는 연꽃이 있어 그것을 받치고 있다. 라고 記錄되어 있다. 記錄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겠으나 12세기 靑瓷 師子香爐의 特徵을 보여주는 作品이다. 

 

 

용머리장식붓꽂이

(靑磁透刻龍頭飾筆架)

 

高麗 12세기 1912년 購入 筆架는 붓을 保管하기 위한 것으로 硯滴과 함께 必須的인 文房具이다. 龍머리 粧飾과 透刻,陰刻,仰角,鐵花등 多樣한 粧飾 技法이 어울려 造型的으로 아름답다. 高麗靑瓷를 代表하는 傑作 가운데 하나이다.

 

 

어룡모양주자

(靑磁漁龍形注子)

國寶 제61호

 

高麗 12세기 1951년 入手 청자어용형주자 (靑磁漁龍形注子) 高麗 12 世紀의 것으로 國寶 61호 이다 . 머리는 용,몸통은 물고기 模樣을 한 상상의 動物을 어룡 (漁龍)이라고 한다. 이 酒煎子의 경우 龍이날고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비용(飛龍)이라고도 한다. 一說에 의하면 西海에 사는물고기 一種인 호가 魚龍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傳 해온다.

 

 

시를새긴병

(靑磁陽刻蓮塘草文瓢形甁)

 

주전자

(靑磁象嵌瓜形注子)

 

 

잔과잔받침

(靑磁托盞)

 

 

모란무늬항아리

(靑磁 象嵌 牡丹畵文壺)

國寶제 98호

 

高麗 12세기 1986년 購入 象嵌靑瓷의 무늬는 大部分 가는線 으로된 선상이 많고 이 항아리처럼 넓은 면을 纖細하게 象嵌한 예는 매우 드물다. 그릇의 形態는 당시 流行하던 動氣에서 影響을 받았다. 그릇의 丹鼎한 模樣과 兩面의 시원스런 牡丹무늬가 잘 어울린다. 

 

 

청자병새긴

 

細鏤金花碧玉壺

豪家應是喜提壺

和賀老乘淸興

抱向春深醉鏡湖

 

푸르고 아름다운 술병에 금꽃 아로새겼으니

호사로운 집안에서 이 술병을 사랑하였을 것이다.

옛날 하로(하지장)가 기분 좋을적

늦은 봄 강호에서 이 병을 안고 흠뻑 취했으리라.

 

 

부여사택지적비

(扶餘砂宅智積碑)

寶物제1845호

 

 

甲寅年正月九日奈祇城砂宅智積

慷身日之易往慨體月之難還穿金

以建珍堂鑿玉以立寶塔巍巍慈容

吐神光以送雲峩峩悲貇含聖明以

 

百濟 義慈王代의 人物인 大座平 舍宅 指摘이 隱退後 寺을 세운것을 記念하여 만든것이다.

 

 

백제금동대향로

(百濟金銅大香爐)

(국보제287호)

 

百濟金銅大香爐는 1993년 12월12일 百濟羅城과 百濟王陵園 中央칸 西쪽의 한구덩이에서 出土된 이 香爐는 높이 61.8 cm 무게 11.8kg의 大形香爐로 몸체와 뚜껑으로 區分되어 있으며 위에 附着한 鳳凰과 받침대를 包含하며 뚜껑에는 피리와 소비파,현금,북들을 演奏하는 5인의 樂士와 各種 武人像,騎馬狩獵像등 16인의 人物像과 鳳凰,龍을비롯한 動物을이 表現되어있다 百濟時代의 工藝와 美術文化,宗敎,思想,製造技術까지도 파악케하는 貴中한 文化財이다 (國寶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

(百濟金銅大香爐)

국보제287호

 

百濟金銅大香爐는 1993년 12월12일百濟羅城과 百濟王陵園 중앙칸 西쪽의 한구덩이에서 出土된 이 香爐는 높이 61.8 cm 무게 11.8kg의 大刑香爐로 몸체와 뚜껑으로 區分되어 있으며 위에 附着한 鳳凰과 받침대를 包含하며 뚜껑에는 피리와 소비파,현금,북들을 演奏하는 5인의 樂士와 各種 無人像,騎馬狩獵像등 16인의 人物像과 鳳凰,龍을 비롯한 動物들이 表現되어 있다. 百濟時代의 工藝와 美術文化, 宗敎,思想, 製造技術 까지도 把握하게 하는 貴重 文化財 이다.

 

 

신라왕관

(新羅王冠)

 

新羅 왕관(王冠)은 5~6세기 마립간 時代에 集中的으로 만들어졌다. 金冠은 王族 중에서 男女 모두가 使用했던 반면 金銅冠은 王族 중에서 地位가 낮은 사람이 使用했던 것으로 보인다. 王과 王妃가 모두 着用한 바 있는 新羅 金冠은 新羅 王室과 貴金冠이 新羅의 首都였던 慶州에서만 發見되는데 비해 金銅冠은 新羅의 影響力이 미친 慶尙南道로부터 京畿道 坡州까지 이르는 넓은 地域에서 發見된다. 金冠에는 나무·나뭇잎·사슴뿔 粧飾·새·꽃과 풀 등이 粧飾되어 있다. 金冠에서 나무는 生死와 密接한 關係를 가진 聖스러운 存在로 保護를 받는 신수(神樹)이다. 

 

 

신라왕관 

(新羅王冠)

 

특히 樹木形 입식[山자 겹칩식]과 양쪽의 사슴뿔장식[鹿角形立飾]은 시베리아의 샤만(Shaman)의 관에서 由來한 것으로 推定되고 있다. 사슴은 당시 가장 중요한 樣式員으로 崇拜의 大常이자 食糧이었다. 여기에 琴瑟로 곱은옥(曲玉)과 영락(瓔珞)을 달았는데, 곱은옥은 나무의 과실로 生命을 象徵한다. 곱은옥(曲玉)은 生命을 象徵하는 것으로, 나뭇가지 模樣의 金冠에 열매 模樣으로 달리기도 하고 귀고리·허리띠·목걸이에도 粧飾으로 달리기도 한다. 나뭇잎 模樣은 原形과 끝이 뾰족한 심엽형(心葉形 : 하트형 잎모양)이 있다. 金冠에만 달려있는 나뭇잎은 新羅인이 崇拜하던 백화나무의 잎을 본뜬 것으로 보인다.

 

 

금귀걸이

 

鏤金技法은 金屬 工藝品의 表面을 金屬 알갱이 등을 利用해 表面에 接着하는 技法이다. 慶州 普門洞 合葬墳과  梁山 금조총에서 出土된 굵은고리 金귀걸이는 고리 表面이 누금으로 粧飾되어 있다. 특히 中心고리에는 數百개의 金 알갱이로  거북등 무늬와 꽃무늬 등이 表現 되어있는데 新羅古墳에서 出土된 귀걸이 가운데 가장 正敎하고 華櫚 하다.

 

 

귀걸이

(梁山金鳥塚出土節耳鳥足形裝飾)

寶物제1921호

 

慶州에서 벗어난 地域에서 最上級의 金屬 工藝品이 副葬된 예로 新羅文化의 傳播와 系譜를 硏究하는데 있어 重要한 作品들이다.

 

 

경주월지금동초심지가위

(慶州月池金銅)

寶物제 1844호

 

文武王 이 만든 人工 연못인 慶州 月池에서 出土된 가위이다.

 

 

은제도금화형탁잔

(銀製鍍金花形托盞)

寶物 1899호

 

盞과 盞받침 모두 銀으로 形態를 만든다음 水銀이 말갑 技法으로 金鍍金을 하였다. 盞에는 陰刻 技法을 盞 받침대에는 陰刻 技法과 함께.

 

 

청동거울

 

尙方作鏡眞大好上有仙人不知老

渴飮玉泉?食束壽(如)金右?

 

상방에서 만든거울은 참으로 좋아 옛날 선인들이 늙지 않았고

목마르면 옥샘물을 마시고 배고푸면 대추 먹으며

쇠,돌과 같이 긴 생명을 누렸도다.

 

 

훈민정음

(訓民正音)

 

世宗과 集賢殿 學者들이 訓民正音을 創製한 뒤 世宗 28년 (1446) 百姓에게 斑布한冊이다. 世宗이 지은 序文에 이어 解釋과 쓰임법인 溶解 鄭麟趾의 解例 序文으로 이루어져 있다. 冊 이름은 訓民正音 이며 解釋과 用例가 함께 있는것이 特徵이므로 普通 혜례본 이라고 부른다. (複製品)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訓民正音이 創製된 후 한글로 엮은 最初의 冊으로 15세기 言語와 文學을 硏究하는데 貴重한 資料이다. 朝鮮王朝가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읋은 노래 歌詞와 그 背景說明으로 構成되어 있다. 龍飛御天歌는 宮中演戱에서 불러졌으며 모두 125장 이다. 編纂,刊行 徑爲에 대해서는 鄭麟趾의 序文과 崔恒의 發文에 자세 說明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