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bienna 1900, 꿈꾸는藝術家들
Vienna에 분 自由의바람
프란츠요제프 1세 皇帝는 비엔나를 유럽의 文化와 藝術의 中心地로 만들기 위한 都市擴張 計劃을 斷行 했읍니다. 이 課程에서 오늘날 비엔나를 代表하는 觀光地로 꼽히는 有名한 建築物이 지어졌읍니다. 그러나 그 結果物은 過去 藝術樣式의 模倣과 再現에 그쳤읍니다. 기대와 실망속에 論難의 中心이된 大都市 비엔나에는 各種分野의 藝術家들이 모였고 討論의 場이 펼쳐졌읍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이때 새로지어진 建物에 壁畵를 그리면서 크게 名聲을 떨쳤읍니다. 그러나 傳統樣式을 그대로 따르는 일은 클림트의 뜻과 맞지 않았읍니다. 그는 傳統的인 慣習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藝術의 길을 探究했고 뜻이 맞는 同僚들과 함께 특별한 藝術運動을 始作합니다. 클림트는 새로운 挑戰을 꿈꾸던 藝術家들의 求心點이 되었읍니다. 클림트와 同僚들이 만든 비엔나 分離派의 活動으로 이제 비엔나에 " 自由의 바람 "이 불어오기 始作 합니다.
꽈리열매가있는자화상
오스트리아 ~ 헝가리帝國의 불안한 政治生活과 急變하는 社會雰圍氣는 藝術家들에게 正體性에 대한 苦悶을 안겨 주었다. 에곤실레(1890 ~ 1918)는 " 自我 正體性 의 危機 "라는 主題를 視覺的으로 强熱하게 表現한 藝術家였다. 깔끔한 灰色을 背景으로 어두운 옷을 입은 人物과 强熱한 붉은색의 꽈리열매가 作品 左右에서 均衡을 이룬다. 어깨를 살짝돌리고 觀覽者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自信感과 연약함이 同時에 느껴진다. 얇고 細密하게 그려진 선에서는 실레의 銳敏한 性格과 內面의 不安한 感情이 傳해진다.
푸른옷을입은소녀
허름한 灰色갈벽 앞에 앉은 少女는 팔꿈치를 잡은 조심스러운 姿勢로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듯 하다. 少女의 어두운 눈 周邊은 방금 운듯 붉은 氣運이 감돈다. 로빈크리티안 안데르센(1890 ~ 1969)은 차갑게 가라앉은 色彩로 人物의 感情을 드러냈다. 그는 아카데미의 保守的인 人物의 感情을 드러냈다. 그는 아카데미의 保守的인 敎育方式에 反撥하여 新藝術家 그룹의 設立에 參與했다. 또한 새로운 藝術傾向에 同參하여 個性 있으면서도 强烈한 感情 表現法을 硏究했다.
아르투어슈니츨러의초상
막스오펜하이머(1885 ~ 1954)는 1908 년과 1909 년 비엔나 藝術展覽會에 參與하면서 文化, 藝術界의 主要人事들과 親分을 쌓고 그림注文을 많이 받았다. 오펜하이머는 당시 灰色과 褐色系列 色彩를 주로 使用하면서 얼굴과 손의 독특한 描寫로 人物의 性格을 表現하는 肖像畵를 作業하며 느꼈던 점에 대해 " 肖像畵를 그릴때는 時間을 超越하는 特徵을 表現해서 그 人物이 사라지더라도 意味있는 作品으로 남을수 있도록 해야한다" 라고 말했다.
벨베테레궁전
(Belvedere Palace)
벨베데레 宮殿은 오스트리아의 宮殿으로서 빈 南東쪽에 있는 바로크 樣式 宮殿이다. 王家는 1697년 敷地를 사들이고 사보이의 王子 오이겐(Eugen von Savoyen)이 거대한 公園을 우선 造成하였다. 벨베데레 宮殿은 都市 近郊에서 王族이 보낼 수 있는 代表的인 建物로 떠오르게 되었다 1714년 建築이 始作되어 일단 틀을 닦고 庭園도 만들게 되었다. 그 周邊으로는 오랑제리와 그림을 展示하는 空間을 만들었다. 建築 은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가 맡았으며 그는 지금까지도 오스트리아의 baroque樣式을 極大化한 巨匠으로 손꼽힌다. 그와 함께 베네치아 出身의 彫刻家 죠반니 스타네티가 함께 하였다. 하부 벨베데레 宮殿의 建設은 1716년 完工되었으며 天井은 마르니코 알트몬테라는 畵家가 完成하였다.
벨베데레 궁전 정원
벨베데레궁전
19 世紀 後半 비엔나에서는 木版畵 製作이 活潑하게 이루어졌다, 비엔나 分離派의 創立會員 이었던 카를몰(1861 ~ 1945) 역시 비엔나 風景을 담은 版畵를 많이 만들었다. 이 版畵는 벨베데레 宮殿 庭園의 겨울 風景을 담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彫刻像에서 쭉 뻗은 庭園의 길을 따라 벨베데레 宮殿으로 視線이 自然스럽게 이어진다 몰은 빛의 反射와 纖細한 色感을 洗練되게 活用하여 겨울 雰圍氣를 表現했다.
와인잔을앞에둔화가의아내
안톤파이슈타우어(1887 ~ 1930)는 와인잔을 앞에두고 두손으로 턱을 괸채 깊은생각에 잠긴 自身의 아내를 그렸다. 에곤실레가 主導한 新藝術家 그룹의 創立會員이었던 파이슈타우어는 유럽 藝術의 흐름을 重要하게 생각했다. 그는 특히 後期 印象主義者 풀 세잔의 構圖와 構成을 硏究했다. 또 프랑스 印象主義 畵家들과 交流하며 물감을 두껍게 올려 붓이나 나이프 자국을 表面에 남기는 임파스토 技法을 作品에 活用했다. 이 作品에서는 아내가 입은 옷의 질감과 明暗의 對照를 强調하는 强烈한 붓자국으로 깊은 印象을 준다.
수풀속에여인
구스타프클림트(1862 ~ 1918)는 外國의 先進藝術을 經驗하여 새로운 藝術形式을 찿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890 년대 後半 클림트의 肖像畵에서는 印象主義의 影響이 뚜렸하게 드러난다. 洗練된 모자를 쓰고 소매가 風聲하게 부푼 블라우스를 입은 女人이 파란눈으로 觀覽者를 바라보고 있다. 女人 뒤쪽에 우거진 수풀과 블라우스 소매를 거친 붓놀림으로 두껍데 칠해 表面 질감이 두드러지도록 表現했다.
스페인여인
한 女人이 便安하면서도 自信感 있는 姿勢로 앉아있다. 두껍게 칠해진 푸른색과 黃土色은 소용돌이치듯 畵面을 감싼다. 무릅 위에 올린 女人 의 오른손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어 마치 그림 밖의 누군가와 對話를 나누는 듯하다. 한스븰러 (1884 ~ 1961)는 밝은 色感과 力動的인 畵風으로 氣品 있으면서도 쾌활한 女人의 性格을 表現했다. 뷜러는 人物畵와 風景畵를 주로 그렸는데 人物內面의 感情과 自然의 生命力을 强烈한 色彩로 果敢하게 表現한것이 特徵이다.
기도하는소녀
흰옷을 입은 어린少女가 곧은 姿勢로 서서 맨발로 祈禱하고 있다. 알빈에거 - 리엔츠(1868 ~ 1926)는 어두운 空間에서 祈禱하는 어린 少女 의 素朴한 信仰心과 경건함을 두껍고 힘찬 붓질로 表現했다. 背景에는 多樣한 빛깔의 동그란 등이 神祕로운 빛을 말한다. 밝게 그려진 少女와 畵面을 가로지르는 등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十字架의 形象을 聯想 시킨다.
양쪽에서본화가의자화상
오스카코코슈가(1886 ~ 1980)는 1923 년 가을 취리히의 갤러리 볼프스베르크에서 열린 自身의 單獨 展示會 포스터로 같은해에 그린 自畵像을 活用했다. 왼손에 붓을 들고 觀覽者를 쳐다보는 그림속 人物은 藝術家이자 個人展을 開催하는 主人公인 코코슈카 自身을 表現한 것이다. 이 個人展은 코코슈카가 獨逸과 오스트리아를 넘어 國際的인 藝術家로 成長하는 데 重要한 契機가 되었다.
여인의초상
브론치아콜러 - 피넬(1863 ~ 1934) 主人公의 어두운색 옷이 畵幅에 절반을 次知해 얼굴과 목의 밝은 皮膚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머리를 살짝 기울인 女性의 視線은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듯 아련한 雰圍氣를 풍긴다. 背景의 노란색 壁紙에는 多樣한 色의 動物과 植物이 그려져 있다. 이는 1903년 設立된 Vienna design 攻防에서 자주 만들던 壁紙의 design 이다.
동굴속의비너스
洞窟의 둥근 空間에서 Venus가 베일을 쓰고 나오는 場面을 그렸다, Venus의 몸은 밝은 部分에서는 노란색을, 어두운 部分에서는 옅은 보라섹을 띤다. 콜로만모저(1868 ~ 1918)는 Venus뿐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베일, 바위, 꽃다발등에 흔히 쓰지 않는 色을 混合해 使用했다. 그는 독특한 色彩 對比와 象徵으로 古典的 主題인 Greece. Roma. 神話를 새롭게 再解釋 했다. 1914 년 무렵 모저 畵風의 變化를 보여주는 作品이다.
어머니와아이
작은 크기의 畵幅에 그려진 이 作品은 聖畵인 聖母子像을 聯想시킨다. 空間을 알아볼수 없는 어두운 背景앞에 어머나와 아이가 두꺼운 붓질로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의 머리는 서로 이어져 있는듯 하다.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점잖은 表情으로 아이를 보고 있으나 아이는 반짝이는 눈을 크게 뜨고 觀覽者를 正面으로 바라보고 있다. 畵面 오른쪽 아래에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이의 손은 어너니와 아이의 不安定한 關係를 象徵한다.
하나지역의소녀
作品에 製作時期가 쓰여 있지 않지만 구스타프클림트(1862 ~ 1918)가 學生이던 時節에 그린것으로 推定된다. 오늘날 체코 모라비아에 있는 하나지역에서 나온 少女를 그렸다. 少女는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있는데 이는 하나지역 風習을 따른것이다. 옷과 背景을 모두 옅은 灰色으로 칠해 寫實的 으로 描寫한 얼굴이 더욱 두드러진다. 살짝 옆을 보는 少女의 눈길은 그녀가 어떤생각에 잠겨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스미라그다베르크
上流層 집으로 보이는 空間에 한 女人이 밝은 빛을 받으며 앉아 觀覽者를 똑바로 凝視하고 있다. 그림속 主人公은 作曲家 엘벤베르크의 女同生이자 pianist였던 스미라그다베르크 이다. 리해르트게르스틀은 같은 音樂家와 가깝게 지냈다. 그는 비엔나 分離派에서 活動하지는 않했지만 音樂家들과 깊이 교류하며 藝術의 靈驗을 받았고 各別하고 힘있는 붓질로 感情을 表現하는 畵風을 發展 시켰다.
고향에서영감을얻은풍경
뭔헨과 비엔나에서 20년 넘게 살았던 알빈에거-리엔츠(1868 ~ 1926)는 늘 煩雜한 都市에서 벗어나 故鄕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는 故鄕 에서 靈感을 받은 風景畵를 많이 그렸다. 씨를 뿌리고 밭을갈고 穀食을 거두거나 쉬고 있는 시골 사람들의 風景을 作品에 充實히 反映했다. 한편 에거 - 리엔츠는 뭰헨과 비에나에서 열린 國際展示會에서 유럽 巨匠들의 作品을 接하며 새로운 藝術的 靈感을 받았다. 특히 오귀스트로댕의 影響을 받아 웅장한 彫刻이 떠오르는 畵風을 發展 시켰다.
베토벤의집이있는거리
카를 몰은 비엔나 디자인 空房과 協力해 Beethoven house 라는 木版畵 連作을 만들었다. 이 作品들은 루트비히판베토벤이 머물렀던 비엔나의 집들을 描寫했다. 몰은 비엔나 分離派가 尊敬했던 베토벤의 삶과 관련된 場所들을 그렷다. 이 連作은 간결하고 洗練된 몰의 作品 世界를 잘 보여준다. Renaissance 時期에 全盛期를 맞았던 木版畵는 19 세기 유럽에서 다시 流行했고 비엔나에서도 活潑하게 만들어졌다.
어머니와두아이
어머니가 얼굴과 맨발을 제외한 몸 全體를 초록色 천으로 가리고 있다 어머니의 움푹꺼진 눈과 입은 骸骨을 聯想 시킨다. 어머니의 무릎위에 누운 아이역시 죽어있는듯 하다. 에곤실레(1890 ~ 1918)는 聖母 Maria가 예수그리스도의 屍身을 품에 안은 피에타에 빗대 이 作品을 그렸다. 어머니의 왼쪽에는 마치 空中에 떠 있는듯한 어린아이가 한 명 더있다. 줄무늬 옷의 다채로움은 純粹함과 希望을 象徵하지만 얼굴에서는 絶望感이 엿보인다. 이 作品은 어머니와 不便한 關係였던 실레의 不安感과 喪失感, 그리고 內緣연의 葛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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