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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3/記念&展示館

柳寬順烈士記念館

유관순열사기념관

(柳寬順烈士記念館)

 

 

寬順이가 태어난 곳은 天安의 지령리로, 現在 ‘柳寬順 生家’가 있는 바로 그 집입니다. ‘인걸은 지령’이라고 하였듯이 ,태어난 곳이 좋아야 훌륭한 人物이 나오는 法입니다. 딸 년은 每峯山 12봉의 精氣를 받아 1902년에 태어났는데, 울음소리 한 번 찌렁찌렁 울리더군요. 응~애, 응~애. 저를 닮아 머리가 비상하고 또 孝心까지 至極하였던 딸입니다. 저는 열 아들 부럽지가 않게 당시 最高의 秀才만 들어간다는 梨花學堂에 寬順이를 보냈어요.  그런데 끔찍한 일이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났어요. 이 날은 高宗皇帝가 昇遐하시어 葬禮를 치루던 날로, 高宗皇帝는 나라를 빼앗기고는 울분에 사셨던 분입니다. 그대 적어짐으로해서 우리는 이곳에 우뚝 섰다/   아, 미치도록 그리운 祖國의 獨立으로 이 땅의 해맑은 웃음 이루어 씨되어 흩날리나니/ 마침내 그대는 統一의 배꽃으로 태어나소서          

'고제희의 역사나들이'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초혼묘

(招魂墓)

 

招魂墓는 柳寬順(1902 - 1920) 烈士의 愛國愛族 精神을 기리기위해 만들어졌다  烈士는 1902년 12월 16일 忠淸南道 天安市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승권의 5남매중 둘째딸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이소제 이다  梨花學堂에 다니던중 서울의 3. 1 萬歲運動에 參與하였고 以後 故鄕으로돌아와 1919년 4월 1일 3천여군중이 參與한 湖西地方 最大의 獨立運動인 아우내 萬歲 運動을 主導 하였다. 日本 憲兵에게 逮捕되어 京城府심法院 最終判決에서 3年刑을 宣告받고 西大門 刑務所에 收監중 끊임없는 獄中萬歲 示威 運動을 主導하다가 갖은 暴行과 拷問에 못이겨  1920년 9월 28일 殉國하였다. 柳寬順烈士는 梨花學堂 주선으로 梨泰院 共同墓地에 安葬하였으나 日帝에 의해 烈士의 遺澤은 痕跡없이 忘失되었다.  이곳 에 烈士의 靈魂을 위로 하고자 1989년 10 월 12일 招魂墓를 奉安 하였다.  

 

유관순열사의생가

(柳寬順烈士生家)

 

梨花學堂에 다니던중 서울의 3. 1 萬歲運動에 參與하였고 以後 故鄕으로돌아와 1919년 4월 1일 3천여군중이 參與한 湖西地方 最大의 獨立運動인 아우내 萬歲 運動을 主導 하였다  日本 憲兵에게 逮捕되어 京城府심法院 最終判決에서 3年刑을 宣告받고 西大門 刑務所에 收監중 끊임없는 獄中萬歲 示威 運動을 主導하다가 갖은 暴行과 拷問에 못이겨  1920년 9월 28일 殉國하였다  政府에서는 1962년 3 월 1일 大韓民國 建國功勞勳章을 追書하고 烈士의 愛國精神을 永遠이 기리기 위하여 1991년 옛집터에 生家를 復元 整備 하였다. 生家옆에는 記念碑와 烈士가 生前에 다니던 매봉 敎會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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