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紫霞 申緯 誕生 250周年 記念 書畵展
자주빛 노을에 물들다.
詩와 글씨와 그림은 하나일수 있을까요? 옛 文人들은 詩와 글씨와 그림을 모두 人間의 內面에서 自然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며 이 세가지에 모두 뛰어난 人物을 三絶 이라 일컬었읍니다. 申緯는 (1769 ~ 1847)는 詩.書.畵 三絶로 19 世紀 全般 文化界를 代表하는 人物 입니다. 그는 韓國 歷史上 最高의 詩人으로 推仰받았으며 대나무 그림에도 뛰어나 朝鮮時代 3 代 墨竹畵家의 한 사람으로 곱혔읍니다. 어린時節에는 朝鮮後期 藝團의 總帥였던 姜世晃(1713 ~ 1791)에게 指導 받았고 뒤 세대 인 金正喜 (1786 ~ 1856)에 앞서 朝鮮의 文藝를 集大成 하였읍니다. 申緯의 號인 紫霞는 世界를 물들이는 자주빛 노을을 뜻합니다. 神仙처럼 高潔한 삶을 꿈꾸었던 申緯의 誕生 250 周年을 맞이하여 그의 藝術 世界가 펼쳐 집니다.
대나무와 바위
(竹石圖)
申緯는 열네살에 姜世晃의 文下에 들었다. 훗날 어릴때 竹石 한가지만 배운것이 지금까지 限이된다. 라고 할만큼 姜世晃에게 주로 대나무 그림을 지도 받았다. 姜世晃이 十竹齋書畵譜를 비롯한 中國 畵報를 參考 하였듯이 申緯도 그러하 畵報의 影響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畵帖 가장자리에 써놓은 申輝는 申緯의 初名 이다. 紫霞 라는 낙관 아래 찍은 印章또한 申徽之印인것으로 보아 이 그림이 申緯가 아직 初名을 쓰던 젊은날 그렸음을 알수있다. 솜씨는 다소 서투루지만 먹의 농담을 調節하고 붓을 부드럽게 쓰기 위해 努力한 痕跡을 엿볼수있다.
日脚凝冰風怒呼
樓陰山黛合模糊
夢回酒氣全消席
人靜香烟尙在爐
一點斜飛融? 硯
乾聲驟至變寒蘆
偶然水墨參黃米
幕地神遊訪戴圖
햇살도 얼어붙고 바람소리 거세지니
누각 그늘 검푸른 산 아울러 어렴풋해
술기운 모두깨어 꿈에서 돌아오니
고요한 채 향 연기만 향로에 여전한데
눈 한송이 날아들어 벼루위에 녹더니만
휘익휘익 휘몰아쳐 갈대위에 가득할제
우연히 황공망과 미불을 참조해 수묵화를 그려내니
갑자기 대규를 찾아기는 그림속을 노니는듯
初雪酒後 自題黃不米不米法
첫눈 내린날 술을 마시고나서 스스로 황공망이면서 황공망이 아니고, 미불이면서 미불이 아닌 화법 이라 쓰다.
행서
(行書)
天下畿人學杜甫
當時四海一子由
天下에 몇 사람이 杜甫를 배웠나
當時 世上에 蘇撤 한 사람뿐이었네
소식 (1036 ~ 1101)의 詩에서 두 句節을 뽑아 쓴것이다. 內用은 天下에 몇 사람이 杜甫를 배웠나(天下畿人學杜甫) 당시 世上에 蘇撤 한 사람뿐이었네 (當時四海一子由)이다. 각각 공의보집을 보고 옛사람의 句節에 次韻하여 준다(次韻孔毅甫集古人句見贈)와 美淑을 보내며(送美淑)라는 詩에서 발췌해 소식.소철 兄第가 杜甫를 繼承했음을 보여준다. 申緯는 소식을 거쳐 杜甫의 境地로 들어선다. (由蘇入杜)라는 詩論을 天命 하였다. 그는 소식의 藝術論에 影響을 받아 作者의 精神이 自然스럽게 表出된것이 .書.畵라고 보았다. 이 書畵帖에는 申緯의 그림과 글씨, 權敦仁(1783 ~ 1859)이 쓴 七言詩등이 함께 실려 있다.
행서대련
(行書對聯)
士大夫가 지켜야 할 學文의 規範을 쓴 글이다. 申緯는 童基昌(1555 ~ 1636)과 米茀(1051 ~ 1107)의 서풍을 연구하여 王羲之 처럼 自然스러운 風格을 갖추고자 힘썼다. 1812년 中國 施行때 翁方綱 (1733 ~ 1818)을 만난뒤에는 그의 書體를 딸았다. 申緯는 글씨를 均一하게 配列하면서도 字形을 조금씩 달리하여 단조로움을 피했다. 획은 굵기의 變化를 주었으며 파임의 끝부분은 걷어들여 부드럽고 넉넉한 멋이 살아있다.
誠敬工夫尊鹿洞
雅馴文字重龍門
誠敬 工夫는 鹿洞의 規範을 尊重하는 것이요
高尙하고 自然스러운 文字는 司馬遷의 法을 重視 한다.
대나무
(墨竹圖)
대나무와 바위를 그린 두 폭의 그림으로 원래 한쌍을 이룬 대련으로 推定된다. 19세기에는 화사한 雰圍氣를 演出하기 위해 色이 다른 비탄이나 종이를 함께 使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作品은 申緯의 初期作과 比較하면 筆致가 더욱 빠르고 輕快하며 번지가 手法이 積極的으로 使用되었다. 이 特徵은 中國 楊州八怪중 한 사람인 정섭(1693 ~ 1765)의 影響으로 보인다. 19세기 燕行을 계기로 石도(1642 ~ 1707)를 비롯한 靑나라 文人畵風이 朝鮮에 紹介되어 書畵家들에게 刺戟을 주었음을 알수있다.
대나무
(墨竹圖)
대나무를 그린 열폭의 畵帖이지만 원래 머릿屛風 으로 장황되어 있었다. 各 폭에는 두세 구루의 대나무를 간략한 筆致로 表現 하였다. 바람에 날리는 댓가지,안개 자욱한 대숲, 돋아나는 竹筍,비에 젖어 처진 댓잎등 대나무의 生態가 多樣하게 펼처진다. 제 3폭에는 蘭草,제4폭에는 菊花가 함께 그려져 있다. 이 作品에는 梅花가 빠졌지만 四君子를 先驅的으로 結合한 事例로서 申緯가 靑나라 화단의 動向을 빠르게 理解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령도
(詩舲圖)
詩舲 李學懋를 蘇軾(1036 ~ 1101)에 빗대어 後赤璧賦를 그림으로 表現하고 題目을 詩舲圖(시 짓는 배 그림)라 붙인 作品이다. 題目은 申緯가 썼고 그림과 發文은 그의 첬째 아들 신명준이, 또 다른 發文은 둘째 아들 신명연이 남겼다. 申緯는 소식에 대한 尊敬을 담아 제자 李學懋에게 詩舲과 景蘇라는 字를 지어주고 두 아들과 함께 作品을 完成 했다. 그림 속 스산한 달밤의 景致와 홀로 날아가는 鶴의 모습은 後赤璧賦 의 처연한 心象을 잘 表現 하였다.
신명준이쓴발문
詩舲圖.李詩舲年?弱冠,出語不俗,拈畢如神,家大人愛其才,而錫佳名曰學懋,
字曰景蘇,又其別字曰詩舲,以勉其詩髓之必在由蘇也,故余乃繪爲此圖,
且告以劉商禮部琉璃詩境,甲午中元節,小霞學人寫因題於聽秋室中.
詩舲圖, 李詩舲이 나이는 스물에 지나지 않으나, 하는말이 속되지 않고 붓을 들면 神舲이 깃든것 같았다. 나의 아버지(申緯)께서 그 재주를 사랑하여 아름다운 이름을 주었으니, 이름은 學懋 자는 景蘇 또 다른 자는 詩舲이라 하였다 詩의 精수는 반드시 蘇東坡를 거쳐야 함을 권한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그림을 그리고 또 禮部郎中 劉商(88세기후반)의
琉璃詩境
을 일러준다. 갑오년(1834)음력 7월 15일
小霞學人
이 聽秋室에서 그리고 쓴다.
제화시
(題畵詩)
晝出淸涑字 森沈綠樹村
溪居廛氣淨 老居道心尊
幽客瘦於竹 野山靑入門
退公無一事 詩思滿層軒
서늘한 집 그림으로 그려내니 울창하게 푸른나무로 우거진 마을
사는곳은 시냇가라 속기는 맑아지고 집은 낡았어도 道心은 높아간다
호젓하게 사는이는 대나무보다 야위었는데 野山의 푸르름은 門 안으로 들어온다
조정에서 돌아와서 딱히 할일 없는지라 詩想만은 樓閣에 가득히 차오르네
붉은여뀌를노래한시
1832년에 지은 庭園속 가을꽃 열네수 (園中秋畵十四詠) 가운데 한수로 배를 집삼아 自然과 벗하는 悠悠自適한 風流가 담겨 있다.詩의 抒情性과 글씨,裝飾性인 비단 바탕이 調和를 이룬 秀作이다. 글씨에는 自然스러운 變化가 흐르고 있어 老年의 申緯가 도달한 完熟한 境地를 느깔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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