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孫世基.孫昌根
記念室
眼福을나누다
2018 년 11월 孫昌根 先生은 父親 고 孫世基 先生과 自身이 收集한 202건 304점의 文化材를 寄贈 했읍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로 눈을 즐겁게 하는것을 眼福이라 하는데 孫昌根 先生의 條件없는 寄贈으로 많은 사람들이 眼福을 누릴수 있게 되었읍니다.
노송도
(老松圖)
許鍊(1808 ~ 1893)
열 폭의 종이에 늙은 소나무 한구루 그린 作品이다. 19세기 中盤부터 연이은 畵幅에 梅花를 그리는 大型 梅花屛風이 流行했는데 許鍊은 이러한 形式을 빌려 소나무를 그렸다. 巨大한 規模가 장관을 이루며 둥치의 껍질과 구불거리는 가지 表現 등에서 힘이 넘친다. 老年期의 完熟하고 거침없는 筆力을 보여주는 뛰어난 作品 이다.
孤標百尺雪中見
長嘯一聲風裏聞
老痴
눈속에서 백척높이 우뚝한 모습으로 나타내고
바람곁에 휘바람소리 듣는다네
노치
김정희글씨
(金正喜書)
金正喜는 19세기 朝鮮 文藝에 큰 影響을 미친 書畵家이자 理論家이며 金石學者 이다. 書券氣 를 强調한 金正喜는 南宗畵風을 繼承한 文人畵를 製作하며 自身만의 톡특한 書畵 世界를 形成 하였다. 書藝는 朝鮮의 書體와 淸나라의 翁方綱의 書體를 바탕으로 하여 獨創的인 筆法인 秋史體를 創出 하였다. 선면에 石畵軒의 詩를 썼는데 石畵軒은 翁方綱의 書體 이다. 金正喜가 尊敬했던 翁方綱의 詩를 景舜이란 人物을 위해 써 주었음을 알수 있다.
斷雲斜壓瘦蛟背 古寺橫江落月時
以我艸書蟠處壁 夢中乞得倒垂枝
石畵軒詩 書爲景舜
拂定髥阮
끊긴 구름 스듬히 수척한 교룡의 등을 누르고
예 절 가로지른 강에 달은지네.
나의 초서로 벼랑에 새겨놓으면
꿈속에서도 족히 늘어뜨린 꽃가지에 가 닿겠네
서화헌 시이다. 경순을 위해 쓴다.
불정염완(김정희의호)
산수
(山水圖)
許鍊은 全羅南道 진도 出身으로 初年에는 海南 綠雨堂에서 尹斗緖의 遺作과 顧氏畵報 등을 模倣하여 그림을 練習 하였다. 草衣禪師의 紹介로 金正喜의 弟子가되어 中國 文人畵風의 그림들을 그렸다. 특히 元나라 禮讚과 黃公望의 畵風을 즐겨그렸다. 이 그림에서도 禮讚式 山水畵 에서 주로 보이는 近景의 빈 亭子와 둔덕위 컫란 나무들이 登場한다. 許鍊 특유의 거치 筆致보다 부드러운 筆致로 그려졌고 詩와 더불어 抒情的인 雰圍氣를 자아낸다.
扶藜踏盡溪南
掩映斜陽作伴歸
청려장집고 시내남쪽을 모두구경하고
가로비치는 석양과 짝을지어 돌아간다
.
연경실
(硏經室)
吳世昌(1864 ~ 1953)
전서로 쓴 硏經室은 經書를 硏究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印章을 通해 吳世昌이 75세에 쓴 글씨임을 알수 있다.
묵란도
(墨蘭圖)
閔泳翊(1860 ~ 1914)
閔泳翊은 金正喜 文下에서 글씨를 배운 父親 閔台鎬와 叔父 閔奎鎬의 家學을 이어 15세 무렵부터 書畵家로 이름을 알리기 始作하였다. 中國上海에서 活動하던 淸나라 書畵家 푸하가 쓴 제발이 남아 있다. 上海에 定着했던 初期의 作品으로 아직 閔泳翊의 個性的인 芸楣蘭이 定着하기 以前 段階로 보인다.
왼쪽:푸화의제발
香國精華所聚
墨生王者風儀
胥山野史漫記
蒲華印
향국정화가 웅취된 것으로
먹에서 왕자의 기품이 나는구나
서산야사가 어지러이 쓰다.
포화인
오른쪽:푸화의제발
園丁寫意 臣翊
(閔泳翊)이 뜻을 그리다
묵란도
(墨蘭圖)
閔泳翊(1860 ~ 1914)
閔泳翊은 金正喜,李昰應의 墨蘭을 배워 自身만의 云楣蘭을 確立 하였다. 그는 開化派의 對立으로 甲申政變(1894)以後 政治活動을 접고 홍콩과 상하이 등에서 居住하며 書畵製作에 몰두 하였다. 濃墨으로 그린 難잎은 두께 變化가 거의 없이 곧게 뻗치거나 끝을 뭉툭하게 表現 하였다.
美人君子恰相同
泳翊之印, 雲楣居士
미인과 군자로 서로 같다.
양익지인.운미거사
술에취한이백
(醉太白)
朝鮮末期 畵家인 張承業은 강렬한 筆法과 墨法 과장된 形態와 纖細한 說彩法을 特技로 삼은 것으로 有名하다. 張承業의 자는 景猷이며 號는 吾園 文峀山人 醉暝居士 등으로 多樣하다. 그림에는 唐나라의 詩人 李白이 술에 취해 몸을 가눌수없는 모습으로 描寫되었고 그 옆으로 冊과 고동기 등 여러 기물이 그려졌다. 張承業이 故事人物畵와 器皿折枝圖에 뛰어났음을 엿볼수 있다. 吳世昌이 그림을 感想하고 오른편에 醉太白 이라 썻다.
산수화
(山水畵)
許鍊은 中國의 文人畵家 중 元나라 예찬의 黃公望의 畵風을 즐겨 그렸다. 이 그림은 예찬식 山水畵에서 보이는 모욕과 전경의 나무들이 등장하며 다소 거친 乾筆을 使用 하였다. 엷은 황색과 달황색을 使用한 설채는 그의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이다. 제발은 唐나라 詩人 王維의 王右丞詩集 券6에 나오는 우연히 6수를 짓다.중 제6수 이다.
王右丞有詩云 宿世謬詞客 前身應畵師
甲戌夏日 雲林閣中 小癡老人作
당의 시인인 왕우승이 지은 시에 "이 세상에서는 잘못되어 시인이 되었지만
후세에는 아마 화가였을 것이다."라 하였다.
갑술여름 운림각에서 소치노인이 쓰다.
화조영모도
(花鳥翎毛圖)
張承業(1843 ~ 1897)
朝鮮末期 職業畵家인 張承業은 山水畵,道釋,故事人物畵,花鳥翎毛圖,器皿折枝圖등 여러 分野의 素材를 폭넓게 다루었다. 그는 강렬한 筆法과 墨法,과장된 形態와 纖細한 設彩法등 뛰어난 技倆이 돋보이는 作品을 다수 남겼다. 두점의 花鳥翎毛畵는 52세에 그린 作品으로 細密한 팔선으로 대상을 表現하고 色彩를 積極的으로 使用하였다. 構圖와 筆致,能熟한 彩色에서 絶頂期의 技倆을 確認할수 있다. 張承業의 弟子인 安中植은 畵面에 그림과 어울리는 글을 남겼다. 張承業의 畵風은 第子인 安中植과 趙錫晉에게 傳해져 우리나라 近代 繪畵의 土臺를 이루었다.
설경산수,닭
(雪景山水,鷄)
安中植은 張承業을 繼承한 朝鮮의 마지막 畵員이자 高義東,李道榮 등 近現代 花壇의 大家를 길러낸 스승이다. 1881년 淸에 派遣했던 朝鮮留學生 使節團 領選使의 일원으로 趙錫晋과 함께 텐진(天津)에서 1년 동안 見聞을 넓히고 돌아왔다. 1902년(高宗39) 御眞圖寫에 趙錫晋과 더불어 畵師로 選拔 되었다. 以後 自身의 畵室인 耕墨堂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1911년 書畵美術院이 設立되자 後進 養成에 힘을 기울였다.
雪晴谿館無人歸一柯寒梅崔(鶴)守門
以李藕舡(船)先生詩句意寫之
丙辰中冬心田
눈개인 개울가집에 주인돌아오지 않고 한가지에 차가운 매화 피고 학은 문을 지키고 섰네.
이상적선생 의 시구 뜻으로 그리다.
병진년 음력 11월 심전
춘경산수
(春景山水)
趙錫晋은 安中植과 平生을 함께 같이한 同僚이자 書畵美術會 敎授였다. 그는 山水畵와 魚蟹畵를 잘 그렸던 圖畵署 畵員인 할아버지 林田 趙廷奎 밑에서 學文과 그림을 배우며 成長 하였다. 朝鮮의 마지막 畵員이 되어 1902年에 高宗의 御眞圖寫에 參與했다. 남종畵風으로 그린 이 그림은 中國 낙양의 天津橋를 背景으로 봄날의 아름다운 楓景을 表現했다. 나뭇자지에 더해진 암홍담정색 봄의 산뜻한 生氣를 傳한다.
天津橋上間步來
丙辰初秋之日
小琳
천진교에서 느긋이 산보를 하다.
1916년 초가을에 그리다.
소림(조석진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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