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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The Etruscans - Rising to Rome

국립중앙

(國立中央博物館)

 

로마以前

(The Etruscans -  Rising to Rome) 

 

에트루리아는 紀元前 900년 부터 紀元前 100년경 까자 이탈리아 半島 中北部地域에 있던 古代國家 입니다.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地中海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중에 가장 魅力的인 사람들로 評價되고 있읍니다. 베일에 싸인 그들의 紀元과 言語,宗敎는 에트루리아인들을 더욱 神祕롭게 만들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感歎과 魅力을 자아 냅니다.

   

유피테르 假面

야누스

(Two-faced Head of a Divinity)

 

야느스는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門을 지키는 守護神 역활을 하였읍니다. 로마인들은 야느스 머리를 彫刻한 기둥을 거리,交叉路,문앞,國境 등에 도둑과 事故를 막고자 設置 하였읍니다. 한쪽은 老顔의 얼굴로. 다른 한쪽은 靑年의 얼굴로 表現 한것이 特徵 입니다. 

 

 

1.地中海에 가려진 寶物

에트루리아

 Historical and Geogcaphical Context

 

 

紀元前 10 세기 이탈리아의 中北部 海岸을 끼고 있는 廣闊한 땅에 새로운 文明이 誕生 합니다. 로마에 吸收되기까지 약 1千年간 地中海를 中心으로 繁榮했던 文明 바로 에드리아 文明 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를 비롯한 地中海의 여러 都市들과 交流하였으며 華櫚하고 獨自的인 文化와 宗敎,言語들을 發達 시켰읍니다. 에투리아는 한때 이탈리아 北部와 코르시가 섬까지도 支配했지만 오늘날까지도 많은것들이 베일에 싸여있는 神祕의 文明 이기도 합니다.

 

2.의 과 

 Religion in the EtruscanCulture

 

에트리아인들은 旣存의 土着的인 信仰위에 그리스의 多神 思想을 받아들였읍니다. 多神 思想 은 당시 그리스 뿐만 아니라 이집트,패니키아,등 古代 地中海 世界에서 普遍的인 것이었읍니다. 에트두리아의 타니아 (그리스의 제우스,로마의유피테르)는 우니(그리스의 헤라,로마의 유노)멘르바(그리스의아테나,로마의 미네르바)와 함께 3 神을 이루었으며 이들을 모신 神殿이 에트투리아의 모든 都市에 세워졌습니다.  神殿 에서는 儀禮와 祈禱를 하고 奉獻物을 바쳤읍니다. 에트투리아인들은 自然에서 發生하는 모든 일에 神이 存在한다고  믿었읍니다  人間의 삶은 神의 統制하에 있고 모든일은 神에 의해 미리 豫定되어 있다고 생각 했으며 影響力 있는 사재들의 占星術과 豫言을 通 해서만  神의 뜻을 解釋할수 있다고 믿었읍니다.

 

3.의 

 Etruscan Life

 

初期 빌라노마 時期를 지나 그리스나 패니키아와의 交流 以後 王의 時代로 發展하는  時期를 洞房華 時期라고 합니다. 이 時期에 貴族들은 막강한 勢力으로 成長할수 있었고  근동에서 건너온 화려한 奢侈品과 文化에 心醉했읍니다.  에르투리아의  新興 貴族들은 화려한 粧飾 기와를  얹은 建物에居住 하였고  自身들을 위한 거대한 무덤을 짓기도 했읍니다. 紀元前 6 世紀 부터 에트루이아의 都市들은 自治權을 지닌 都市國家로 成長해 갔고  이를 통해 점차 복잡한  都市發展을 이룩했읍니다. 그들은 宗敎的인 行事를 자주 열었는데 에트투리아인의 삶은 祝祭,舞踊,音樂,文化,敎養으로 가득 찼읍니다. 貿易,航海,戰爭에 積極的이면서도, 이러한 文化的 삶을 重要하게 여긴 것은 에르투리아 文明의 重要한 特長 이기도 합니다.  

 

戰車

 

4.저승의 神과 死後世界

Infernal Divinities and Afterlife

 

에트루리아인들은 死後世界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죽은 이를 위한 宗敎意識과 儀禮 行爲들, 그리고 무덤과 埋葬地에 쏟는 精誠만 보아도 잘알수 있읍니다. 이들은 地中海 地域의 다른 모든 古代 文明과 마찬가지로 死後 世界에서도 죽은 이의 靈魂이 계속 存在한다고 믿었읍니다. 저승은 地下의 神들, 英雄들의 靈魂, 죽은이의 그림자로 가득차 있는곳으로  여겼읍니다. 出口가 없는 世界에서 怪物과도 같은 神靈들의  存在는 人間 本然의 두려움, 죽음에 대한 悲痛함, 運命의 불가피함을 象徵 합니다.

 

亡者를 人導하는

반트와 카룬이 描寫된 遺骨函

 

저승으로 向하는 旅程을 描寫한 遺骨函 입니다. 짧은 키튼을 입은 亡者는 말을 타고 왼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읍니다. 반트는 오른손으로 말의 고삐를 끌고 왼손으로 햇불을 들고 있읍니다. 아레를 향하는 햇불은 저승으로 進入을 意味 합니다.  뒤쪽의 카룬은 오른손에 칼, 어깨에 망치를 걸머지고 亡者의 마지막 旅程을 함께 하고 있읍니다.

 

바쿠스

 

바쿠스는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로 불리는 神 입니다.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永生을 얻었으며 地上의 人間들에게 葡萄農事를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오른손에는 葡萄송이를 들고 바쿠스를 따라다니는 動物인 표범을 데리고 있읍니다.

 

 

5.아와 로마

Etruria and Rome

 

로마에 끼친 에트루리아의 影響은 도서의 모습에서 잘드러남니다. 옹기종기 집들만 모여 있던 旣存의 마을이 包裝된 道路,廣場,水道施設,大規模寺院을 갖춘 都市 形態로 變貌한데 에는 에트루리아 影響이 가장 컸읍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아르카익 時期부터 로마에 定着 했읍니다.  歷史 記錄에 따르면 일곱명의 王이 紀元前 754 년에서  509 년 까지 로마帝國을 統治 했는데 이들중 마지막 세 명의 王이 에트루리아 와 關聯 된다고 합니다.  紀元前 4世期 로마는 帝國을 本格的으로 擴張하기 始作 했으며 에트루리아를 征服해 나갔읍니다.  紀元前 396년 로마가  베이오를 最初로 陷落한 以後 에트루리아의 다른都市를  역시 漸次 로마에 占領 당했으며 그 結果 에트루리아는  로마의 歷史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읍니다.

 

그라핀과의

戰鬪가 描寫된 遺骨函

Cinerary Urn Sarcophagus; fight with the Gryphoness

 

1858년 포르토네 네크로폴리스의 돌방무덤에서 發見된 遺骨函 입니다. 石棺 中央에는 그리핀과 싸우는 두명의 戰士가 描寫되어 있읍니다. 戰士는 防牌,창,劍 으로 武裝하고 있읍니다.  그리핀은 獅子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지닌 그리스 神話속 怪獸 입니다. 그리스 神話에서 그리핀은 아풀론의 보무을 지키고 금광을 守護 한다고 합니다.

 

  인물형상카노푸스단지

(人物型像카노푸스단지)

 

에트루리아의 遺骨단지는 單純한 半球形 뚜껑에 亡者의 얼굴을 간략하게 描寫한 初期 形態에서 점차 뚜껑에 얼굴을 具體的으로 表現한 카노푸스 단지로 發展 하였읍니다.  人物 形象은 亡者의 遺骨을 담는 단지임을 나타내려는 意圖로 보입니다. 外形的인 모습에서 무덤 主人이 女性인지 男性인지 區分되었으며 社會的 地位가 높은 사람은 玉座 위에 올린 모습으로 表現 되었읍니다.

 

   

 

피네스키 무덤 內部를 一部 再演한 空間 입니다. 피네스키 무덤은 1970년 볼테라의 포르토네 네크로폴리스에서 發見 되었읍니다. 紀元前 3 世紀 부터 紀元前 2 世紀의 에트루리아인의 삶을 담은 空間 입니다. 무덤이 損傷되지 않은채 發見되어 에트루리아 무덤의 內部 構成과 浸禮宴會를 살펴볼수 있다는 점에서 重要한 意味를 지닙니다.

 

화관

(花冠)

 

머리띠와 王冠은 헬레니즘 時期의 典型的인 머리 裝身具 입니다. 男性과 女性 모두가 生前에 使用하였으며  名譽와 尊敬의 象徵 이었읍니다. 葬禮式과 같은 行事에서 주로 살아 生前에 富를 誇示하기 위해 넣어둔 것으로 보입니다. 나뭇잎 무늬가 새겨진 직사각형의 얇은 板으로 製作되었으며 가장 單純한 形態의 粧飾中 하나 입니다.

 

연희장면과 사자가 묘사된 유골단지

(宴會場面과 獅子가 描寫된 遺骨단지)

 

웅크리고 있는 아켈로스가 石棺을 떠받치고 있는 形象을 한 遺骨 단지 입니다. 뚜껑은 경사진 지붕 形態로 龍마루 에는 두 마리의 獅子가 웅크리고 있읍니다. 石棺의 앞면에는 弔問客들과 함께 있는 亡者의 모습이 뒷면에는 葬禮의 儀禮를 暗示하는 戰車 競走가 描寫되어 있읍니다. 짧은 구 옆면에는 宴會場面이 새겨져 있읍니다.

 

영웅상

(英雄像)

 

사냥꾼 모습의 젊은 男性을 表現한 彫刻 입니다. 오른손에는 뿔을 들고 왼발로는 野生돼지의 머리를 밟고 있으며 개를 데리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