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근대서화
(近代書畵)
봄 새벽을 깨우다.
1. 書畵의 新世代
The New Generatino of Korean Calligraphy and Painting
開港 以後 朝鮮은 西洋의 知識과 文物을 빠르게 收用하였읍니다. 安中植을 비롯한 1860년대를 前後하여 태어난 새로운 世代를은 이 變化의 中心에 있었읍니다. 새로운 知識으로 武裝했던 이 젊은 élite들이 以後 近代 畵團을 이끌어갈 追憶이 됩니다. 특히 安中植과 조석진은 1902년 高宗의 즉위 40주년을 記念하는 御眞製作 에 나란히 참여하였고 以後 高宗이 寵愛하는 宮中畵家로서 당시 畵團 이끌었읍니다.
승일반송도
(昇日蟠松圖)
美國에서 高宗,純宗의 誕身日을 記念하여 그린 그림
영선사 일기
(領選使日記)
1881년 淸나라 北京에 派遣되었던 最初의 朝鮮人 留學生 施行團 領選使를 이끌었던 김윤식의 日記다.領選使에는 多樣한 分野에서 새로운 知識을 習得하기 위해 38명의 留學生들이 施行團으로 選拔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屋相이라는 이름을 섰던 靑年 安中植과 台源 이라는 이름을 섰던 趙錫晉이 포함 되었다. 그들은 畵圖廠에 配置되어 各種 機械와 武器의 設計圖 및 제도법을 배윘다.
지운영초상사진
(池雲英肖像寫眞)
朝鮮末期 書畵家 이자 寫眞術 導入에 앞장섰던 池雲英(1852 ~ 1935)의 肖像 寫眞 이다. 그는 1882년 朴泳孝(1861 ~ 1939)의 修信使 일행으로 日本에 건너가 고베의 寫眞 家 헤이무라 도쿠베이(平村德兵衛 1850 ~ 1894)로 부터 寫眞術을 배웠다.
김옥균친필
(金玉均親筆)
朝鮮末期 官僚이자 改革派 政治家였던 金玉均이 亡命中 그를 後援했던 日本人 스나가 하지매 에게 써준 글이다.
金玉均 墓碑
嗚呼 아 슬프도다
抱非常之才 비상한재주를 가지고
遇非常之時 비상한시국에 만나
無非常之功 비상한 공이없이
有非常之死 비상한 죽음만 있었으니
박영효친필
(朴泳孝親筆)
甲申政變 以後 金玉均과 함께 日本으로 亡命했던 朴泳孝가 스나가 하지매 에게 써준 부채이다.
北征歌
南怡將軍 (1441 ~ 1468)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의은 칼을 갈아서 다 없애고
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라
男兒二十未平國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 하겠는가?
난초
(蘭草)
朝鮮末期 政治家이자 書畵가 閔泳翊이 그린 墨蘭圖로 畵面 왼쪽 위에 閔園丁이 뜻을 그리다 閔園丁寫의 라는 글귀와 함께 그의 호인 千尋竹齋를 새긴 주문방인이 찍혀 있다. 閔泳翊은 兵曹判書,禮曹判書등을 지냈다. 閔泳翊이 상하이에서 그린 蘭草그림
묵란도
(墨蘭圖)
힘 있는 필치가 돋보이는 金應元의 墨蘭圖 이다. 金應元은 어린 時節부터 興宣大院君 李昰應(1820 ~ 1898)의 집에서 일하며 蘭草 그림으로 有名했던 大院君의 畵法을 스스로 터득 했다고 한다
게
朝鮮末 代表的인 畵家인 張承業이 그린 게 그림이다. 게와 갈대는 科擧及第를 祈願하는 吉祥의 意味를 담고 있어 朝鮮後期에 활발히 그려진 畵題였다. 그림 왼쪽 위의 글은 그와 가까게 자냈던 安中植이 남긴 것이다.
酒興墨緣 日夕源源乃 술의 흥취와 묵연이 밤낮으로 이어졌으니
辛卯夏 日事也 신묘년(1891)여름날 일이다.
今吾園兄 巳歸道山 지금은 오원이 이미 저 세상으로 갔다.
追題此畵 不覺潸然 이 그림에 늦게나마 제발을 적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구나.
기러기와 갈대
(蘆雁圖)
安中植이 1901년 日本에서 그린 作品으로 그는 1882년 領選使 一行으로 中國을 訪問한 이래 여러차례 中國과 日本을 오갔다. 각 畵面의 완쪽에 題詩와 함께 韓客 安中植 이라는 官書가 있는것으로 보아 外國人에게 그려주었음을 알수 있다.
꽃과새,동물
(花鳥翎毛畵)
꽃과 새,동물,물고기등 각기 다른 素材를 그린 屛風이다. 作品을 完成한 陰曆 1901년 8월은 安中植이 같은 해 2월 日本에서 滯留하다 歸國한뒤 왕성하게 活動하던 時期이다. 각 폭마다 中國의 歷代 名詩에서 畵面 속 動物 植物에 어울리는 句節을 뽑아 行草 書體로 쓰고 印章을......
바다위의신선들
(海上群仙圖)
朝鮮末 畵員으로 함께 活動하던 젊은 時節의 安中植과 조석진이 함께 그린 作品 이다.
꽃과새
(花鳥圖)
安中植이 昱相이라는 初名을 使用하던 時節에 그린 作品으로 각 畵面마다. 季節感을 드러내는 詩 句節을 적고 매화와 대나무 수국 백합 수선화 국화를 季節의 變化를 보여주는 꽃을 그려 넣었다.
기명절지도
(器皿折枝圖)
安中植과 조석진이 함께 그린 器皿折枝 屛風이다. 목련,모란,연꽃과 같은 꽃가지와 복숭아,포도,석류,등의 과일,무,배추 같은 채소류. 그리고 多樣한 古銅器와 書冊이 季節感을 살려 함께 아우러져 있다.
고사인물화
(古事人物畵)
韓國最初의 西洋畵家인 高禧東이 安中植의 畵室인 耕鶩堂에서 書畵 受業을 받던 時節에 그린 作品으로 現在 까지 알려진 高禧東의 作品 中 製作時期가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기명절지도
(器皿折枝圖)
高禧東과 李道榮이 함께 그림을 完成하고 그들의 스승인 安中植이 題跋을 남긴 器皿折枝圖 이다. 古銅器를 비롯하여 무,물고기,고추,옥수수,복숭아,산딸기,수박등이 調和롭게 그려져 있다. 畵面 오른쪽 위에 觴詠風味 즉 술을 마시며 詩를 노래하고 飮食의 맛을 吟味 한다는 畵題로 보아 詩會를 記念하여 製作된것으로 보인다.
2. 啓蒙의 붓
The Brush of Enlightenment
印刷 媒體는 寫眞과 더불어 書畵家들의 關心을 끈 새로운 道具였습니다. 安中植은 吳世昌의 啓蒙 活動에 同參해 先驅的인 揷畵家로 活動 하였읍니다. 安中植의 두 弟子인 高禧東 과 李道榮은 그의 影響 아래서 印刷 媒體에 關心을 가지게 되었고 各種 啓蒙 雜誌나 小說에 그림을 그렸다. 특히 대중 啓蒙運動에 積極的으로 同參한 李道榮은 세대를 諷刺하는 날카로운 諷刺漫畵를 先보이며 印刷美術의 새로운 領域을 開拓 하였읍니다.
대한협회의 단체사진
(大韓協會의 團體寫眞)
民衆啓蒙團體인 大韓協會 의 創立 2 周年을 맞이하여 1909년 11월 17일 白雲山莊에서 大韓協會 人事들이 모여 찍은 記念 寫眞 이다.
계몽신문
(啓蒙新聞)
1906년 光武10년 6월 17일 天道敎에서 吳世昌이 創刊한 日刊新聞 이다.
계몽교과서
(啓蒙敎科書)
安中植이 揷畵를 그린 大韓帝國기 官僚이자 史學者인 헌재가 著述 한 歷史 地理 敎科書 이다 어린이용 이었지만 老人층까지 전 國民이 國民的 敎科書로 獨立과 愛國心을 鼓吹 시키는 內容이 많아 1909年 5月에 禁止圖書로 指定 되었다.
대한민보
(大韓民報)
이도영이 漫畵를 그린
신소설
(新小說)
조석진,이도영이 表紙를 그린 新小說
계몽잡지
(啓蒙雜誌)
崔南善이 (1890 ~ 1957)이 創刊한 一般人 對象의 敎養 雜誌 이다. 高禧東과 安中植이 揷畵와 表紙를 그린 雜誌 이다.
어린이잡지
安中植과 조석진이 揷畵 및 表紙를 그린 어린이 雜誌
근역서휘
(槿域書彙)
吳世昌의 槿域書彙 編輯을 祝賀 하는 그림
花首百合 백합은 꽃의 우두머리,
硯波沁香 벼루의 파도에서 향기가 스며드네,
墨華翠潑 묵화가 아름답게 솟아나니,
槿兮再光 무궁화 다시 빛나네.
묵란도.묵죽도
(墨蘭圖.墨竹圖)
김진우는 日帝强占期 墨竹의 대가로 손꼽히던 書畵家 이자 12세의 어린 나이부터 義兵活動에 參與했던 獨立運動家 이다. 墨蘭과 墨竹 모두 김진우의 大膽하고 호방한 필치가 돋보이는 作品이다. 墨蘭은 水墨의 能熟한 농담 調節을 통해 단단하고 날카롭게 솟아오른 怪石의 形態를 더욱 强調하였고 그 위로 風聲하게 피어난 난 잎을 描寫했다.
3. 抵抗과 隱遁의 書畵
The Art of Besistance and Seclusion
1910년 庚戌國恥는 당시 朝鮮의 많은 官僚와 知識人, 藝術家들에게 選擇의 岐路에 서계 했읍니다. 吳世昌은 우리 書畵의 歷史를 整理 하면서 獨立의 길을 摸索 하였고 獨立運動家 김진우,이희영의 書畵는 抵抗의 道具로 이용 하기로 했읍니다. 日帝가 주는 職位를 拒否하고 隱遁했던 윤용구 日本을 流浪했던 황철 隱遁의 書畵家 지운영도 1910년 以後 우리 近代畵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적벽의 뱃놀이
池雲英이 完成한 황철의 遺作
산림초옥도
(山林草屋圖)
白蓮 池雲英은 舊韓末 開化 知識人의 한사람이자 書畵家로 波瀾萬丈한 삶을 살아간 人物이다. 日本에서 寫眞技術을 배워오는등 開化期 中央官僚로 活動한 金玉均을 日本에서 暗殺하려다 失敗하고 押送되어 寧邊으로 流配를 떠나기도 했다.
장송낙일도
(長松落日圖)
푸른잎이 우거진 소나무 아래 비탈진 산길로 말을 타고 올라가는 人物의 모습을 生生히 담은 作品 이다. 中國 淸代 畵家 鏡江의 그림을 따르고 淸代 文章家 紀昀의 詩를 引用해 春皐 朴泳孝를 위해 그렸다. 는 제발의 內容에서 알수 있드시 이 作品은 1895년 中國 상하이에서 發刊된 馬邃의 詩中畵에 수록된 그림에 淵源을 두고 있다.
석란도 묵죽도
(石蘭圖.墨竹圖)
尹用求는 朝鮮末期 官僚이자 書畵로 1895년 乙未事變이후 官職을 受諾하지 않고 서울 近郊 獐位山에 隱居하며 書畵로 餘生을 보냈다. 高宗의 측근으로서 옛 皇室의 象徵的인 人物이었기에 民族代表 33 人으로 參加 提議를 받았으나 이를 拒絶하고 隱者의 삶을 이어나갔다. 또한 組織 活動이 活潑했던 당시 主流 畵團과 떨어져 철저히 個人的인 範圍에서 創作을 持續 하였다. 石蘭圖(獨立運動家의 바위와 난초) 友堂 李會榮
화조영모도
(花鳥翎毛圖)
여름철 포도송이를 먹으려는 사슴과 가을날의 국화와 까치 한 쌍을 소재한 그림 이다.
4. 書畵家들의 結集과 擴散
Gatheringe and Popularization of Art
1910년 대는 書畵家들의團體 結成과 組織活動이 活潑히 展開 되었다. 1911년 設立된 書畵美術會는 자체 講習所를 運營해 새로운 世代의 젊은 書畵家들 을 排出 했읍니다. 1918년에는 全國規模의 美術 團體인 書畵協會가 結成되어 書畵家들의 組織的인 活動과 書畵의 大衆 擴散에 重要한 基盤이 마련 되어 있읍니다.
서화미술회10인의그림
(書畵美術會 10人畵)
陰曆 1917년 10월 書畵美術會 出身 스승과第子 10名이 함께 모여 完成한 10폭 屛風 이다.
李象範.丁大有.安中植.金應元.盧壽鉉.金殷鎬.李漢福.崔禹錫.姜瑨熙.姜弼周.
書畵家들의 글씨와 그림
書畵協會 創立을 記念하여 製作한 書畵帖
합벽도
(合碧圖)
1920년대를 代表하는 書畵家 14名이 各各 글과 그림을 나누어 그린 作品이다
산벽시사합벽도
(珊碧詩社合碧圖)
吳世昌이 中心이 되어 結成한 募臨인 珊碧詩社에서 共同으로 製作한 書畵帖 이다.
난죽도
(蘭竹圖)
김규진은 平安道 出身으로 18세가 되던 해에 베이징으로 留學을 떠나 10년 동안 中國各地에서 見門을 넓혔다. 歸國후에는 淸의 사정에 밝고 中國語와 書畵에 뛰어난 점을 認定 받아 官職에 올랐다.
노안도
(蘆雁圖)
蘆雁圖는 老年의 平安을 빌며 長壽를 祈願하는 意味를 담고 있어 吉祥畵家 人氣를 끌었던 19 世期에 크게 流行하였다. 이 作品은 양기훈이 故鄕인 平壤에서 活動하던 1901년에 그린 것이다.
書畵家들의그림과글씨
묵란도
(墨蘭圖)
平壤出身 女流畵家들의 蘭草 그림
팔춘도
(八椿圖)
여덞마리의 뛰어난 말
矗石樓에서의 모임을 記念한 山水畵
神仙을 만나러가는 童子
5. 巨匠 과 新藝
The Master and his Pupils
안중식의 畵風은 당시 書畵美術會에서 工夫했던 젊은 第子들에게 繼承되었다. 그의 華櫚한 靑綠山水畵나 近代的 雰圍氣를 자아내는 器皿折枝圖는 새로운 傳統으로서 그의 第子들에게 이어졌읍니다. 영광 風景 과 같이 實景에 대한 近代的 視角을 보여주는 紀念碑的 作品은 安中植 死後 新進世代들이 시도한 革新에 重要한 밑걸음이 되었읍니다.
미술잡지 조선미술전람회도록
(朝鮮美術展覽會圖錄)
石窟에서 비서를 받는 新羅 金庾信
석굴암11면 관음보살상
(石窟庵11面觀音菩薩像)
난초와대나무
(蘭草/竹)
이 屛風은 김규진이 1927년 製作하여 1931년 제10회 朝鮮美術 展覽會에 出品했던 作品.
日本留學中 에 그린꽃
서울을 내려다본 풍경
1927년 제6회 朝鮮美術展覽會에 出品되었던 김은호의 作品(부감)의 初本으로 現在 展覽會 도록의 寫眞으로만 原作이 남아있는 重要한 作品 이다.
僧侶服을 입은女人
기명절지도
(器皿折枝圖)
1920년 도대 日本畵風의 影響을 强하게 받았던 최우석은 1930년대 以後 傳通的인 水墨淡彩로 作品 傾向을 轉換 하였다.
신라와고려의 기명을 그린그림
1930년 제 10회 書畵協會 出品作으로 民族的 正體性을 보여주는 主題를 持續的으로 追求했던 이도영의 創作 世界를 잘 보여주는 大作이다.
개울가 정자와 가을숲
사계절꽃
6. 새로운挑戰 과 摸索
Challenges and Seeking of New Ways
1920년대 以後 展覽會 時代가 始作 되면서 書畵는 새로운 挑戰에 直面 하였읍니다. 新進 世代들은 展覽會에서 새로운 畵風을 先 보였고 書畵家들은 새로운 時代에 맟춰 變化를 摸索하였읍니다. 傳統에 基盤을 두고 近代的 感覺을 結合하고자 했던 新進 世代들의 시도는 安中植 以後 새롭게 變貌하기 始作한 우리 書畵의 모습 입니다.
가을풍경
(秋風景)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짜기의 稜線과 畵面 오른쪽에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調和를 이루는 夢幻的인 느낌이 山水畵 이다. 遠近에 따라 농담을 調節하여 風景넘어로는 윤곽선 없이 짧은 선을 덧칠하며 흐릿하게 처리 하였다.
양양화관
(洋洋畵館)
安中植이 살았던 時代는 東洋과 西洋이 만났던 混沌의 時代 였읍니다. 그는 急變하는 變化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傳統과 正體性을 維持했지만 그가 生前에 남긴 洋洋畵館 이라는 네글자에는 東洋畵와 西洋畵를 모두 아우르고자 했던 그의 理念이 잘 드러나 있읍니다.
괴 석
(塊石)
塊石 이라는 傳統 書畵의 素材를 立體主義的 時點으로 再解釋한 김환기의 作品이다. 塊石이 지난 造型的 特性을 살려 平面的인 여러 色面으로 分割하여 現代的 美感을 살렸다. 作品 뒷면에 돌 이라는 作品名과 1953년 김환기 가을 이라는 記錄이 남아 있다.
서창청환도
(書窓淸玩圖)
근원 김용준은 日本 도쿄美術學校 西洋學科를 卒業한後 1930년 대에 畵家이자 美術平論家로 活發히 活動 하였다. 1930년대 後半부터는 傳統 美術에 關心을 가져 이때부터 주로 傳統書畵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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