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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國內博物館

國立한글博物館

국립한글박물관

(國立한글博物館)

 

한글걸어온길

 

 

1443 년 (世宗25) 한글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28개의 字母로 創製되었읍니다. 한글은 世宗大王이 百姓들의 文字 生活의 不便함을 딱하게 여겨 만든 愛民精神의  産物 입니다. 한글을 現代 言語學의 觀點에서 보아도 遜色이 없는 훌륭한 題字原理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의 性理學的 世界觀을 基礎로 한 深奧한 哲學을 담고 있읍니다. 韓國語를 적는 가장 完璧한 文字인 한글은 文字史的으로 길이 빛날 獨創性과 科學的 原理를 갖고 있어 世界의 言語學者 들로부터 讚辭를 받고 있습니다.

 

 

 

國立한글博物館

 

훈민정음

(訓民正音)

 

이두

(吏讀)

 

吏讀는 한자 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우리말의 어순대로 문장을 表記 한것이다.

 

향찰

(鄕札)

 

향찰은 우리말 그대로 표현하려 한 차자 表記法으로 우리말의 文法 要所뿐 아니라 語彙까지도 漢字를 빌려 나타냈다. 鄕札은 시가(詩歌)의 一種인 향가(鄕歌) 를 적는 데에 많이 使用되었다.

 

 

구결

(口訣)

 

口訣은 漢文을 읽을때 便利하게 하거나 漢文을 우리말로 쉽게 풀어 읽을수 있도록 漢字를 利用하여 照査나 어미 등을 끼워 넣은것 것을 말한다. 口訣은 음독구결(音讀口訣)과 석독구결(釋讀口訣)로 나눤다. 音讀口訣은 漢字를 音으로 읽으면서 中間에 우리말 調査나 어미만 넣어서 읽는다, 釋讀口訣은 漢字의 뜻에 맞춰 우리말로 풀어 앍는다. 

 

 

세종과훈민정음

(世宗과訓民正音)

 

한글을 創製한 世宗大王 世宗은 卽位 25년째 되던 1443년 한글을 創製하였고 그로부터 3 年後인 1446년에 그 文字를 解說한 訓民正音 解例本을 펴냈다. 뒤에 놓인 屛風에 적힌것은 새로운 文字 訓民正音의 解說書인 訓民正音의 序文 과 豫의 一部 이다.

 

 

이문건과한글영비

(寶物제1524호)

 

무덤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朝鮮中期 文臣 李文楗 그는 父母님의 墓에 한글로 된 碑石을 세웠는데 이것이 現存하는 한글 金石文중 가장 오래된 資料이다.

 

碑文을 번역하면

이 碑를 범하는 사람은 禍를 입으리라.

이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노라

 

 

숙종과 한글유지

 

大臣들 앞에 威嚴있게 앉아 있는 사람은 肅宗이다. 肅宗이 한글로 된 유지(有旨)를 承政院에 내려 이를 漢文으로 飜譯하게 하자 都承旨 유명견(柳命堅)이 反對 上消를 올렸다. 肅宗은 結局 한글 維持를 削除하라고 命했다.

 

 

신경준과 훈민정음운해

 

朝鮮後期 文臣 申景濬은 1750년에 한글硏究書인 訓民正音韻解를 쓴다. 訓民正音韻解는 最初의 한글 硏究所로 한글의 創製 原理를 그림과 함께 力學的으로 解說한 冊이다. 펼쳐저 있는 部分은 色의것 部分인 경세성음수도(經世聲音數圖)이다. 

 

 

고종과국문선포

高宗은 1894년 勅令을 通하여 한글을 朝鮮의 公式 文字로 삼도록 하였다. 뒤에 있는 資料의 제 14 조에서 該當 內容을 確認 할수 있다.

 

원 문

 

法 律 勅 令 總 以文 爲 本 漢 文 附 譯 或 混 用 國 漢 文

법 률 칙 령 총 이 국 문 위 본 한 문 부 역 혹 혼 용 국 한 문

 

 

주시경과 국어문법

 

周時經이 1910년에 쓴 "國語文法"은 現代 韓國語 文法의 綜合的인 體系를 磨鍊한 硏究書다. 이 硏修는 "한글 맞춤법 統一한"의 土臺가 되었다. 뒤에 있는 建物은 最初의 國立國語 硏究機關인 "國文 硏究所" 이다. 

 

 

가갸날잔치

 

가갸날 殘置는 1926년에 訓民正音 盤浦 480 周年을 記念하기 위해 朝鮮이 硏究會의 主導로 열린 記念式이다. 이 殘置에서 가갸날 이 처음 宣布 되었으며 가갸날은 지금의 한글날로 이어진다. 卓子 이에는 訓民正音 序文과 가갸날을 記念하는 韓龍雲 詩가 적혀 있다.

 

 

조선어학회와 조선말큰사전

 

卓子에 둘러앉아 事典 編纂에 힘을 쏟고 있는 朝鮮語 學會 會員들 朝鮮末 큰事典 은 最初의 韓國語 大辭典으로 1929년 事典 編纂會가 組織된 後 28년 만인 1957 年에 總 6 券으로 完刊된다.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朝鮮을 세운 일을 기리고 繁榮을 祈願하는 노래

 

 

월인석보

(月印釋譜)

 

月印千江之曲 과 石堡上綴 을 모아 釋迦牟尼의 一代記와 功德을 기린冊

 

 

법화경언해

(法華經諺解)

 

佛敎慶典 法華經을 우리말로 푼책

 

중용언해

(中庸諺解)

 

儒敎慶典 中庸 을 우리말로 푼冊

 

맹자언해

(孟子諺解)

 

소학언해

(小學諺解)

 

工夫를 始作하는 사람의 品性을 길러주는 小學을 우리말로 푼冊

 

중용언해목판

(中庸諺解木版)

 

훈몽자회

(訓蒙字會)

 

부모은중경언해

(父母恩重經諺解)

 

교첩

(敎帖)

 

普天敎에서 使用된 任命長 윤내촌 을 北方自强員 으로 任命한다는 內容이다.

 

재털이

 제1회 總人口調査記念재털이

 

청화백자항아리

(靑華白磁壺)

 

시케단지 라고 써서 食害 保管用임을 指定해 둔 항아리

 

함지

純化宮 곳간 汚陷俚婦 가 쓰여 있는 咸池

 

송강가사

(松江歌辭)

 

鄭澈이 지은 歌詞와 時調를 收錄한 詩歌集

 

한중만록

(閑中漫錄)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가 50 餘年間 宮中 生活을 回告하며 쓴글

 

홍길동전

(洪吉童傳)

 

허균(許筠 1569 ~ 1618)이 쓴 한글 小說 우리나라 最初의 國文小說로 알려져 있고 貪官汚吏를 膺懲하고 理想國家를 建設한다는 內容이다.

 

청구영언

(靑丘永言)

 

김천택(金天澤)이 自身이 作品들과 高麗末부터 당시까지의 歌詞,時調를 모아 엮은冊

 

열려춘향수절가

(春香歌) 

 

小說 春香傳 을 판소리로 再構成하여 臺本型式으로 쓴것.

 

한글

 

한글은 1932년에 創刊한 朝鮮이 學會의 機關紙로서 주로 國語學에 관한 硏究論文을 싣고 있다.

 

周時經先生遺稿

 

김덕朝鮮末本

 

韓佛事典

 

한글맞춤법統一案

 

바둑이와철수

(국어 1 - 1 )

 

文敎部에서 펴낸 國語敎材 大韓民國 政府樹立後 最初의 國定敎科書 이다.

 

심상소학

(尋常小學)

 

朝鮮末期 學部 에서 펴낸 國語敎材

 

한글 타자기

 

1947년 공병우  初期 打字機.

 

봉이김선달

(鳳伊金先達)

 

쓴 사람을 알수없는 구전(口傳)說話

 

시 집

 

 尹東柱의 詩集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한글佛敎家司木板

 

세상널리 퍼져 나아가니

 

1894년 한글은 朝鮮의 公式 文字로 宣言 되었읍니다.  1907년에는 한글을 硏究하는 國立 機關인 國文硏究所가 設立되어 우리말을  本格的으로 硏究하는  기틀을 磨鍊 하였읍니다. 하지만 3년 만인 1910년 日本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한글硏究는 물론이고 우리말과 한글의 使用까지도 禁止당하게 되었읍니다.  나라를 잃은 狀況에서도 이어진 國語學者들과 國語硏究 團體들의 勞力은 우리말과 한글을 지킬수 있는 틑틑한 뿌리가 되었읍니다.  現代에 한글은 單純한 意思疏通의 手段을 뛰어넘어 多樣한 藝術分野에서 注目받고 있으며 디지털 情報化時代에서도 매우 適合한 文字로 그 價値를 다시한번 認定받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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