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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國內博物館

大韓民國歷史博物館

 

 (大韓民國歷史博物館)

 

 

大韓民國 歷史 博物館은 開港期 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苦難과 逆境을 딛고 發展한 大韓民國의 歷史를 記錄하여 後世에 全勝하고 國民들의 自矜心과 念願을 모아 未來의 希望을 이아기 하는 歷史文化空間 입니다. 

 

 

 

안중근의사유묵과추모기념 포스터

 

國家安危勞心焦思 는 安重根 義士가 1910년 3월 獄中에서 쓴 行書글씨 內用은 國家의 安危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라는 뜻이다. 오른쪽 위에  증안강검찰관(贈安岡檢察官)이란글로 安重根義士가 獄中에서 自身의 取調를 擔當했던 旅順 檢察廳 이스오카 세이시로(安岡靜因郞)檢察官에게 써준 것임을 알수있다. 이스오카는 死亡하기 直前 이 遺墨을 큰딸 우에노에게 물려주었고 그 뒤 東京國際韓國硏究員의 최서면 院長을 通하여 1976년 2월 11일 安重根義士 僧帽會에 寄贈되었다. 末尾에는 庚戌年 3월 監獄에서 大韓國人 안중근(庚戌三月 旅順監獄中 大韓國人 安重根)이라 落款하고 왼쪽 손바닥으로 丈人을 찍었다.

 

 

육군지원병명패

(陸軍志願兵名牌)

 

1938 ~ 1943년에 日本 陸軍에 志願한 軍人들의 집에 附着한 銘佩

 

 

공출사발

 

日本이 놋그릇등을 供出해간 以後 나누어진 사발 하얀 그릇에 공출보국(供出報國) 결전(決戰)이라고 쓰여 있다.

 

 

조선징병독본

(朝鮮徵兵讀本)

 

1943년 8월 1일부로 韓國에 發效된 徵兵制에 따라 1944년 부터 行해진 韓國人 徵兵에 관한 冊

 

 

유언장

(遺言狀)

 

强制徵用 되기전 家族에게 남긴 遺言狀 强制로 動員된 勞動者의 遺言狀이 봉공대라고 불리는 주머니에 담겨있었다.

 

유언장내용

 

身體가 그다지 健康치 못했던 男便이 아내와 男妹를 남겨두고 떠나 살림이 어려우면 不動産이라도 팔아 生計를 꾸리라는 哀絶한 內容이 들어있다.

 

 

전쟁강제동원

(戰爭强制動員)

 

數 많은 韓國人이 日帝의 侵略戰爭터로 끌려갔다. 1938년 부터 志願兵 및 學兵제 徵兵제 등으로 젊은 男性들이 兵士로 끌려갔다. 많은 勞務者가 募集,알선,徵用의 方式으로 炭鑛,工事場,工場에 動員되었다. 또 젊은 女性들은 勤勞精神대 와 日本軍 慰安婦로 끌려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重勞動에 시달리다가 疾病,事故 爆擊 때문에 不具者가 되거나  목숨을 잃었고 戰爭이 끝났는데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다. 또 日帝는 헐값에 政府에 販賣하는 供出이나 강재 獻納등의 方式으로 쌀,보리,金屬類등의 物資를 수발하였다.

 

 

태극기목판

(太極旗木板)

 

3.1 運動때 太極旗를 大量으로 찍는데 使用 하였다고 알려진 太極旗 목파 1985년 3월 남궁용이 獨立記念館에 寄贈하였다.

 

 

유관순수형기록표

(柳寬順受刑記錄票)

 

3.1運動당시 忠淸南道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群衆에게 太極旗를 나눠주고 萬歲運動을 主導하다 逮捕된 柳寬順의 受刑記錄標.

 

 

3.1 독립선언서

(獨立宣言書)

 

3.1運動때 民族代表 33인이 朗讀한 獨立宣言書 民族自決原則에 入閣하여 韓國의 獨立을 宣言하고 引導主義에 基礎를 둔 非暴力的이고 平和的인 獨立方案을 提示 하였다. 獨立宣言書에는 天道係 15안 基督敎係 16인 佛敎係 2인등 33인의 民族代表가 書名하였다.

 

 

솟재보람

(優等證書)

 

周時經先生이 運營한 한글배곧(조선어강습소)의 優等證書 한글을 草證鐘聲을 합하여 모아쓰기를 하지 말자는 周時經의 뜻을 따라 풀어 쓰기로 되어있다. 

 

 

님의침묵

 

僧侶이자 詩人이며 3.1運動때 民族代表 33인의 한사람인 韓龍雲의 詩集 初刊本

  

 

선서문

李奉昌義士 漢人 愛國團入團宣誓文

  

 

우체통

 

日帝 强占期부터 1945년 光復 直後까지 使用되었다. 日本式 郵便마크 위에 大韓民國 郵便마크를 덧칠하여 썼다.

 

 

소책자

 

金日成의 北朝鮮 共産黨과 김두봉 朝鮮 新民黨의 合黨에 관한 內容에서 始作하여 당 강령 당 規約등 9개의 項目을 記錄한 冊

 

 

미군 제6사단기

 

美軍 제 6 師團 將兵들이 非公式的으로 使用하기 위해 만든 깃발

 

 

반민족행위처벌법

 

提憲國會에서 1948년 6월 16일 反民族行爲處罰法 안을 國會에 上程하여 9월 22일 公布 하였다.

 

 

북한의남침

 

南北韓에 각기 政府가 樹立된後 素輦과 美國은 韓半島에서 軍隊를 撤收하였으나 北韓은 蘇聯과 中國으로부터 大規模로 武器와 兵力을 志願받았다. 北韓의 金日成은 蘇聯의 스탈린 中國의 마오저둥과 武力統一 計劃을 議論하여 1950년 4월 스탈린에게서 南侵計劃을 承認받고 마오저둥에게 志願을 約束받았다. 短期間 내에 戰爭을 끝낼수 있다고 自信한 北韓은 1950년 6월 25일 奇習 南侵을 開始 하였다.

 

 

안전보장요청서

 

6.25 戰爭에 參戰한 美軍 飛行士의 身分을 證明하는 安全保障 要請書 飛行機가 不時着 하였을때 飛行士를 保護하기위해 使用.

 

 

3. 4대선거벽보

 

1956년 5월 15일 치러진 제 3대 大統領 選擧의 野黨후보의 選擧壁報 選擧其間中 申翼熙 候補가 갑자기 死亡하였고 副統領에 張勉이 當選되었다.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제 4대 大統領選擧의 大統領 候補 李承晩. 副統領 候補 李起鵬의 選擧壁報 "이번에는 속지말고 바로 뽑자"라는 文句는 1956년 選擧에서 野黨後報인 張勉이 副統領으로 當選된것을 警戒한 것이다.

 

 

시발자동차

(始發自動車)

 

始發自動車는 1955년 8월에 生産하기 始作한 첫 國産車 이다. 戰爭後 破壞된 自動車의 部品을 活用해서 自動車를 만드는 再生業이 活潑하였는데 최무성 씨 3兄弟가 美軍 지프의 附屬品에 새로 깎아 만든 國産 部品을 結合해서 始發自動車를 만들었다. 始發自動車는 1955년 10월 산업博物館에서 最優秀 國産品으로 選定되어 大統領賞을 받았으며 택시로 人氣를 끌었다.

 

 

4.19 革命에 下野 聲明書

 

연탄틀

 

깨진 煉炭 부스러기를 모아 틀에 넣고 나무망치로 때리면서 한장씩 찍어내는 道具 1970년 대만 해도 마을을 돌아다니며 費用을 받고 煉炭을 찍어 주는 技術者들이 많았다.

 

 

저금통

 

푼돈넣어 황소사자 라는 文具가 눈에 띈다. 당시에는 經濟開發에 必要한 資金을 調達하고자 勤儉,節約,貯蓄 이 强調되었다. 

 

大韓民國의 힘을 믿습니다.

당신은 자랑스런 大韓民國의 國民 입니다.

 

大韓民國 歷代 大統領

 

 2002년 韓日월드컵 公印球

 

대한민국자동차발전사

(大韓民國自動車發展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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