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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國內博物館

實學博物館

(實學博物館)

 

 

19세기 前半期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 ~ 1856)를 爲主로 하는 實事求是破의 學問的 指向은 經世致用破 및 利用厚生破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 두파가 모두 富國强兵을 위한 制度改革과 技術開發을 제시 하는데 積極的이었다면 實事求是破는 이러한 方面에 대해서는 그다지 觀心이 없고 오로지 實證的인 學問學文方法의 提示에 몰두 하였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즉 史實을 밝혀서 眞理를 追求한다는 뜻인데 確實한 證據가 없으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무징불신(無徵不信)의 學問精神이다.  實事求是破가 이러한 탈 理念的인 學問姿勢를 가졌던 데에는 그만한 背景이 있었다.

 

 

 

곤여만국전도

(坤與萬國全圖)

 

西洋의 世界地圖가 1602년 中國에서 그려졌읍니다. 거기에는 地圖뿐만아니라 宇宙에 대한 西洋의 科學知識이 함께 投影되었다. 그리고 이 地圖는 1603년(宣祖 36)朝鮮에 紹介되었읍니다. 마테오리치가 中國人 이지조 와 함께만든 "坤輿萬國全圖"가 그것 입니다.

 

 

김육

(金堉)

 

實學 先驅의 한사람인 金堉 (1580 ~ 1658)은 世上이 어려우면 몸을 숨겨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34세가 되던 1613년부터 10년간 加平 잠곡의 淸德洞에서 農事를 지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을 實踐한 김육(金堉) 낮에는 밭일을하고 저녁에는 松津으로 불을 밝혀 冊을 읽었다고 한다.

 

(그림설명)

어느날 宣祖 副馬인 신익성(申翊聖)이 金堉을 찿아왔다. 夫人이 급히 종을시켜 衣冠을 보냈으나 그는 태연히 밭을 갈면서 귀인(貴人)과 談笑 하였다. 이야기에 팔려 신익성도 밭두렁을 옮겨가며 즐거워 했다 한다. 오른편 東쪽 골짜기에 그의 처소 회정당(晦靜堂)이 있고 北쪽으로 너른 들판 멀리 몇 명의 나그네가 夕陽의 발거름을 재촉하고 있다. 農事일의 體驗으로 나라를 徑輪한 實學的 경세가(經世家)의 모습이다.

 

 

기하원본

(畿何原本)

 

그리스 數學者 유클리드 1 ~ 6장을 마테오 리치가 1602년에 中國人 서광계(徐光啓) 1562 ~ 1633 이지조 (李之藻) 1565 ~ 1629)의 도움으로 2년간의 勞力 끝에 한역한 서양 산학서(算學書)이다. 유클리드 幾何學은 점과 선의 槪念 定義를 세우고 空間은 平面이라는 前提에서 出發한다는 점이 特定的이다. 이 冊은 여러차례 重刊되면서 東洋數學 發見에 많은 影響을 끼쳤고 朝鮮에서도 傳해져 天文 觀測 地圖製作등에 적극 利用 되었다.

 

 

치력연기

(治曆緣起)

 

서광계 (徐光啓)가 지은 冊으로 시헌역법서 (時憲曆法書)인 서양신법역서 (西洋新法曆書)의 編纂科程을 담고 있다. 이 冊은 朝鮮에 傳해져 朝鮮의 첨눈학 및 曆法發達에 큰 影響을 주었다.

 

 

지봉유설

(芝峯類說)

 

이수광(李粹光)이 지은 유서(類書)이다. 수차례 使臣으로 中國에 오가면서 얻은 外國 文物에 대한 情報를 담고 있다. 특히 天主室의 에서 本  世界地圖를 구라파국여지도(救羅巴國與地圖)로 紹介하고 있다. 지봉 濡泄의 體制와 內用은 後代 實學者 이익의 성호사설 (星湖僿說) 유희(柳僖)의 물명고 (物名考)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篆散稿)등에 影響을 주었다.

 

조천기지도

(朝天記地圖)

 

정두원(鄭斗源)이 쓴 中國 使行 見聞錄이다. 해로를 通한 使行의 路程을 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정두원은 이 使行을 通해 朝鮮人 最初로 西洋人 과의 公式的인 만남을 가졌으며 朝鮮으로 돌아오면서 홍이포,천리경,자명종과 함께 천문서 (天文書) 직장외기 (職方外記) 서양국풍속기 (西洋國風俗記) 천문도 (天文圖) 홍이포제본 (紅夷砲題本)등 서양 文物과 書籍들을 들여왔다.

 

 

조선통신사행렬도

(朝鮮通信使行列圖)

 

朝鮮은 壬辰倭亂 以後 새롭게 莫府를 樹立한 日本과 斷切되었던 國交를 回復시켜 1607년부터 1811년 까지 선린우호(善隣友好)를 標榜하여 12茶禮의 通信使絶斷을 日本에 派遣 하였다. 이 그림은 使節團 行列의 順序와 儀仗의 規模 形態등을 充實하게 傳達하고 있다. 人物마다 通信使行에서 맡은 各各의 職責을 적어놓아 그 役割을 밝힌것이 特徵이다.

 

 

포저선생유서

(浦渚先生遺書)

 

조익 (趙翼) 1579 ~ 1655은 朝鮮中期의 大學者로 잠곡 金堉과 함께 對等法 施行에도 적극 參與한 人物이다. 이 冊은 조익의 경학(經學) 硏究의 結果物로 그는 經學 硏究에서 傳統的 思考를 벗어나 朱子의 學說을 受容하면서도 自身만의 陽明學的 見解를 밝혀 놓았다.

 

 

호서대동사목

(湖西大同事目)

 

忠淸道 地域의 大同法 施行에 따른 諸般原則등 記錄한 冊이다. 一名 충청도대동사목 (忠淸道大同事目)이라고도 한다. 1654년 (孝宗5)에 金堉이 編纂하였다. 忠淸.江原.京畿 神惠廳을 합하여 삼도선혜청(三道宣惠廳)으로 命名한다는 규정과 인신(印信)및 서리(書吏)들의 任務에 관한 規定 대동세(大同稅)의 副果및 徵收問題.상납미(上納米)와 유치미(留置米)의 用度등이 敍述되어 있다.

 

 

조총

(大火遭銃)

 

日本 遭銃의 初期모델이다. 全國時代에서 에도시대 前期에 活躍했던 모우리 다카마사라는 將帥가 朝鮮 出兵과 오사카성의 防禦를 위하여 製作하여 使用했다고 傳한다. 城을 防禦하기위해 城郭에 固定시켜 使用한것이다.

 

 

자명종

(自鳴鐘)

 

英國 時計製造業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마스 톰피언(1639 ~ 1713)이 製作한 時計이다. 이 時計는 旅行用으로 製作되어 運搬과 携帶가 便利하고 바다 航海 때에도 使用할수 있도록 胎葉方式으로 製作되었다. 自鳴鐘은 1631년 (仁祖9)에 정두원(鄭斗源)(1581 ~ 1642)에 의해 처음 朝鮮에 傳해졌다.

 

 

천리경

(千里鏡)

 

英國에서 製作된 屈折망원경(茫遠鏡)으로 日本 테지마항을 通해 1700년대에 收入된것중 하나이다. 1803년경 英國船舶 內港시 마츠우라 家門에 傳達된 것으로 傳한다. 明나라로 使臣갔던 정두원이 中國 등주에서 西洋宣敎師 로드리게스 로부터 千里鏡을 처음 收入하였다.

 

 

김홍도

(金弘道)

 

朝鮮英祖때의 畵家 (1745 ~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 (檀園),단구 (丹邱),서호 (西湖),고면거사 (高眠居士), 剛烈한 個性으로 山水畵와 風俗畵의 새로운 境地 를 開拓하였다. 특히 風俗畵에서는 解學과 風姿를  섞어 庶民 社會의 生活情書를 描寫하였다. 作品에 소림명월도 (梳林明月圖) 신선도병풍 (神仙圖屛風) 선동취적도 (仙童吹笛圖) 따위가 있다.

 

 

송도사개치부

(松道四介治簿)

 

大韓千日銀行의 1899년부터 1906년까지의 去來內譯을 바탕으로 作成된 簿記이다. 주는사람.받는사람.주어지는것 받아지는 것등 네가지로 構成되어 있다. 開城商人들을 中心으로 發展된 簿記 形態이다.

 

 

수표

(手標)

 

朝鮮後期에 使用된 手標이다. 商品貨幣經濟의 發達과 함께 먼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送金할때나 商人간 商去來에 有用하게 活用되었다. 18세기 後半에 大都市를 中心으로 많이 使用되었고 19세기에 오면서 全國的으로 通用되었다.

 

 

보부상인장

(褓負商印章)

 

補負商 組織인 商務社에서 使用하던 印章이다. 補負商은 一種의 行商人으로 交換經濟를 媒介로 生産者와 消費者 사이를 連結하던 專門 商人이다. 이 資料는 禮山.德山을 中心으로 唐津,免賤地域까지 活動하던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의 遺品이다. 朝鮮時代 活潑한 庶民經濟 活動을 보여주는 資料이다.

 

 

시폐

(市弊)

 

서울의 각 시전(市癲)이 올린 上消와 그에 대한 措處를 記錄한 冊이다. 主要內容은 각 시전들의 過重한 賦役.家格의 不安定.官衙의 納品 貸金 遲延 難田 商人의 侵害등에 대한上消와 그에대한 措置로 이루어져 있다.

 

 

여객주인권매매문기

(旅客主人權賣買文記)

 

客主 運營과 關聯한 經濟的 利權을 매매한 文書. 乾隆 39년 12월 閑良 身分의 旅客主人 이태성이 忠淸道雇馬戍營 所屬 保寧의 主人權을 김택우의 四寸 김종하에게 客主의 權利를 銀子 500량을 받고 판다는 內容이다.

 

 

여객주인권매매문기

(旅客主人權賣買文記)

 

旅閣客主의 經濟的 權利를 매매한 記錄文件 商品流通의 바전과정에서 旅閣客主는 商人들의 物件을 委託販賣하거나 宿泊提供및 金融業등을 擔當하였다. 本 展示物은 1688년(肅宗14년)은 仁川,安山,江華의 旅客 主人權을 강우문 으로부터 買收하였다가 債權者의 債務督促 理由로 禁衛 人 양시흥 에게 客主의 權利를 販賣한다는 內容을 담고있다. 

 

 

조선상인과뱃사람

(朝鮮商人興漁民)

 

獨逸 出身의 醫師 폰 시볼트(1776 ~ 1866)가 風浪으로 日本에 漂着한 朝鮮商人들과 江津 漁民들을 만나 담소하는 모습을 그린것이다. 시볼트는 江津사람들을 만나며 빌레베뉴베 라는 네덜란드인 화공을 大同해 朝鮮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시볼트는 김치윤이란 사람과 허사침,商人,船長,船員,見習船員등 6명과 對話를 나누는데 그림속의 사람숫자가 正確히 여섯명이다.

 

 

색경

(穡經)

 

서계 박세당이 1676년에지은 農協에 관한 著述이다. 歷代 農書를 두루 參考하고 自身의 農事經驗을 바탕으로 우리農業 環境에 맞추어 果樹,園藝,수리등 農事에 必要한 必修 知識이나 常式을 技術하고 있다. 穡經은 農事에 관한 經書라는 뜻이다. 그의 農學思想의 實踐地였던 中部以北의 風土에 적하한 閑田農法을 찿아 補給하려는 趣旨를 담고 있다.

 

 

동국지리지

(東國地理志)

 

1615년 (光海君7)에 한백겸이 朝鮮의 歷史와 領土에 대한 知識을 綜合하여 硏究한 最初의 歷史 地理書다. 朝鮮의 文化와 國土에 대한 關心이 대두되고 있던 17세기의 새로운 學風을 反影하고 있어 朝鮮後期에 實理學績 地理學이 하나의 맥을 形成하는데 重要한 寄與를 하였다.

 

 

우서

(郵書)

 

농암 유수원의 改革 思想을 엿볼수 있는 著述이다. 朝鮮의官制 科擧制度 學校 奴婢制度 租稅制度 및 군데등 多樣한 分野에 대한 改革方向을 提示했다 商業振興策의 一環으로서 中國의 制度인 합과 商業制度의 導入을 積極的으로 主張하였다는 점에서 柳壽垣의 寓書는 18세기 後半의 利用厚生學과 展開의 先柩로서 注目된다.

 

 

반계수록

(磻溪隨錄)

 

實學의 비조로 評價받는 磻溪 유계원이 晩年의 19년에 걸쳐 心血을 기우려 著述한 名著이다. 1가구당 1경을 耕作하는 自作農 體制를 基本으로 하는 土地制度 老婢制度의 廢止 商業의 振興등 國家 財政과 人民生活의 安定을 圖謀하는 改革案이 提示되어 있다.

 

 

기전고

(箕甸攷)

 

한백겸은 士大夫들의 道德的 學問的 覺性을 提起하면서 國家制度를 整備하여 三大의 理想的 政治를 具現하고자 한 學者로서 1607년에 소문으로만 存在하던 平壤城 밖의 箕子井田 遺跡地를 答辭하여 그 實體를 確認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기전도와 기전유제설을 지어다. 朝鮮後期에 實學者들은 代土地 兼倂의 弊害를 克服하고 社會를 改革하고자 土地 公槪念의 井田制를 注目하였는데 이 때 한백겸의 箕甸유제설 箕甸도는 重要한 論據로 活用되었다.

 

 

대곡역학도해

(大谷易學圖解)

 

대곡 김석문이 易學圖를 通하여 東洋 傳統的인 역의 理論에서 地球의 自轉을 演繹하여 地球의 自轉說을 定立한 著述이다. 이때는 17세기말 뉴턴과 호이겐스가 重力에 관한 硏究에서 始作하여 地球가 楕圓體라고 主張하였던 때와 거의 같은 時期이다. 홍대용과 박지원의 地轉說에 影響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호집

(星湖集)

 

朝鮮의 最高의 경세가 이익의 詩文集 1774년 조카인 이병휴 등이 編輯 整理하고 舊韓末에 이명익 이남규 등이 算定한것으로 성호의 종 7대손 이덕구의 집에 保管해 오던것을 1917년 密陽의 퇴로의 이병희가 사림의 힘을 閨閤하여 퇴로서숙에서 木板으로 가행하였다. 성호집은 부,시,악부.서.잡서.기.발.논.명.잠.찬.송.축문.제문.비.묘표.묘갈.묘지명.행장.행록.유사.전 등으로 構成되었다. 文章家로서 이익의 風貌와 學問交遊,經世致用學의 具體的인 內容을 確認 할수 있다.

 

 

천일록

(千一錄)

 

水原유생 우하영이 自己의 農業經營體驗과 農村生活을 通하여 얻은 知識을 바탕으로 農業經營의 改善方響을 提示한 冊이다. 그는 당시의 農業經營 方向으로서 集約經營을 强調하면서 粗放的 經營을 志向하는 廣作을 크게 境界하였다. 그는 그의 著書에서의 一部를 農書를 求하는 王의 윤음에 따라 응지진농서로서 올리기도 하였는데 自己가 올린 1천가지의 改革案 중에서 한가지는 쓸만한 것이라는 뜻으로 書名을 천일록 이라했다. 이 冊은 自己의 農業經營 經驗을 바탕으로 著述되었다는 점에서 特別한 意味를 가진다.

 

 

목민심서

(牧民心書)

 

茶山 丁若鏞이 著述한 정법삼집 중의 하나이다. 수령의 行政指針書로서 現行法을 前提로 行政의 改選方向을 提示한 冊이다. 그러므로 이冊은 任官精要 牧民帶方및 致君要結과 같은 牧民書중의 하나이나 牧民心書가 一般의 牧民書와 다른점은 전자가 守令七事 즉 守令이 修行하여야 할 重要業務를 中心으로 간단히 敍述되어있는데 대하여 牧民心書 는 六官體制를 中心으로 赴任해서 解任에 이르기까지 守令이 修行 해야할일을 敍述하는데 있다. 東아시아의 牧民書로서는 最高峯이 아닌가 한다. 

 

 

천구의

(天球儀)

 

魂箱은 하늘의 별을 별자리로 묶어서 둥근 球面에 그려놓은 기기로서 天球의라고도 부른다. 하루밤의 時間과 1년의 季節을 測定하는 機器이다. 魂箱을 처음 만든나라는 中國으로 後漢때 杖刑이 수운魂箱을 만든것이 처음이라 傳한다. 韓國은 世宗 19년 (1437)에 製作했다는 記錄이 있으며 宇宙의 救助와 5行星의 運動 時間 測定의 原理를 說明하는 敎育용 資料로 活用하였다. 地面에서 바라본 별이 아니라 하늘 바깥쪽에서 바라본것을 基準으로 했기 때문에 별자리의 模樣은 實際로 보는것과 달리 左右가 뒤바뀌어 있다.

 

 

지구전후도

(地球前後圖)

 

地球前後圖는 1834년 純祖에 實學者인 혜강 최한기가 製作한 地圖로 그의 벗인 古山子 金正浩가 板刻했다. 이 世界地圖는 韓國사람이 刊行한 近代式 木板 地圖로 19세기 初盤부터 朝鮮 知識人들의 世界觀을 劃期的으로 바꾸는데 影向을 주었다. 작은 크기의 原本을 擴大하여 屛風으로 製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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