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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 (中國法帖)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서예 의 길잡이

 

중국 법첩

(中國法帖)

 

 

國立中央博物館은 歷代 中國 書藝家들의 글씨를 담은 法帖을 嚴選하여 테마전 "書藝의 길잡이" 中國 법첩(法帖)을 磨鍊 합니다. 法帖은 模範이 되는 글씨의 模寫本이나 塔本등을 옮겨 사람들이 便利하게 使用할수 있도록 冊 模樣으로 章程 한것을 말합니다. 이번에 紹介하는 法帖은 中國 歷代 名筆을 담은 것이며 우리 祖上이 書藝를 工夫하는대 있어 늘 가까이 한것들 입니다. 法帖은 現在에도 書藝 學習敎材로 使用되며 感想의 對象으로서 守藏과 保存의 價値를 지닙니다. 先代의 名筆은 法帖을 通하여 後代로 傳承되며 原本이 없어지게 되더라도  法帖으로 옛 글씨의 모습을 살펴볼수 있읍니다. 親筆을 대하듯 우리宣祖가 아끼고 사랑하며 連馬했던 中國 法帖을 通해 書藝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發見하는 機會가 되길 期待 합니다.

 

완화유수첩

(浣花流水帖)

 

이 法帖은 옆의 塔模 法帖과 다른 模刻方式으로 製作한 法帖이다. 模刻은 글씨를 나무판에 새겨 塔本하는 方法으로 製作이 쉽고 많이 만들어 낼수 있는 長點 이 있다.

 

임서난정서

(臨書蘭亭敍)

 

蘭亭敍를 臨書한 朝鮮時代의 作品이다. 文人들은 (蘭亭敍)가 지닌 靑塔 이미지를 憧憬하여 이를 즐겨 臨書하였다. 임모는 글씨를 옆에 놓고 觀察하고 이를 正確히 再現하는 臨書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므로 서해 實力이 뛰어난 사람들이 주로 하였다.

 

태산금강경

(泰山金剛經)

 

산동성(山東省) 泰山 경석욕(經石浴)에 새겨져 있는 金剛經은 총 1040여 자인데 그 중 12자의 塔本이 國立中央博物館에 있다. 수많은 書藝家들은 이 巨大한 너럭바위의 金剛經 글씨로부터 靈感을 얻었다. 塔本은 주로 먹물로 하지만 이렇게 주묵(朱墨)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自然에 새겨진 마애각석 (磨崖刻石)및 碑石 글씨를 담은 비첩(碑帖)도 넓은 帆柱에서 法帖과 같은 意味로 여겨졌다.

 

전통서에의 재조명

 

靑代에서는 書藝의 過去 傳統을 繼承하는 가운데 이를 繼承하는 多樣한 樣相을 보여주었다. 帖學은 王羲之 書藝 中心의 保守的 傳統을 追求하였고 碑學은 考證學과 金石學을 基盤으로한 古代 碑石 中心의 書藝를 硏究 하였다. 靑代에는 名筆이었던 皇系 乾陵帝를 비롯하여 碑學과 帖하 두 靈域을 아우른 옹방강 碑學의 理論的 根據를 提示한 王月 및 禮書의 大家 燈夕이등 수많은 書藝家들이 活動하였다. 한편 模刻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原型에서 믿어진 法帖에 대한 評價는 相對的으로 낮아졌지만 碑石을 塔本한 碑帖에 대한 關心은 높아졌다. 

 

난정계회도

( 蘭亭溪會圖)

 

자서첩

(自敍帖)

 

예술의경지를이룬名筆서예가

 

예서(隸書) 에서 한층 더 變化하여 오늘날 우리가 쓰는 표준 書體인 해서(蟹書)가 誕生하였다. 행서(行書)와 草書는 부드러운 붓(毛筆)으로 흘려 쓴 書體로 글씨의 아름다움을 더욱 다채롭게 表現하였다. 書體가 整理하고 體系化되면서 書藝家의 時代가 到來하여 명필(名筆)들이 登場하였다. 여기 紹介하는 法帖에는 장지(張芝),종요(鐘謠)와 같은 草書와 楷書의 大家들과 書藝의 藝術 境地를 開拓한 왕희지(王晞之)의 글씨가 담겨 있다.

 

자서첩

(自敍帖)

 

法帖은 書藝 作品을 帽紗하여 만든다, 특히 塔本 法帖은 글씨가 흰색으로 보이는 反轉 效果로 인해 一般 書藝 作品과 다른 印象을 준다. 이것은 稀少의 自書帖을 塔本하여 法帖으로 만든것이다.

 

다보탑비

(多寶塔碑)

 

長安 傳福寺에 建立된 碑石으로 안진경이 44세때 쓴 글씨다. 안진경 특유의 굵은 필회와 터질듯한 書風이 보이기 前意 初期 글씨로 丹頂한 字型에 精密하고 變化가 큰 필회를 보여주고 있다.

 

쟁좌위고

(爭坐位稿)

 

취옹정기

(醉翁亭記)

 

醉翁亭記는 醉翁亭의 由來와 景致 및 삶의 爭取를 담은 글로 北送의 文章家 歐陽脩가 지었다. 이는 消息이 중대자의 行枷가 넘치는 楷書로 迫力있게 썼는데 그는 왕희자의 書法을 追究하면서 안진경의 글씨를 바탕으로 自身만의 글씨를 創出 해냈다.

 

적벽부

(赤壁簿)

 

석가여래성도기

(釋伽如來成道記)

 

진사명

(晉祠銘)

 

太宗의 代表的인 글씨로 定款 22년에 새겨졌다. 筆致는 담담하면서도 武人의 豁達함이 있는데 變化가 크지 않은 均一하고 定制된 맛을 보여준다, 初唐代의 一般的인 書風 傾向과  견주어 볼때 改姓이 强하다.

 

구성궁예천명

(九成宮醴泉銘)

 

歐陽詢이 唐 太宗의 命을 받아 쓴 碑文이다. 定款 6년 太宗이 龜城宮으로 避暑를 왔을때 매마른 別宮 안에서 샘물이 솟아 이를 記念한 內容을 담았다. 唐의 楷書를 代表하는 글씨로 매우 丹頂하고 絶才된 筆法을 보이며 글자의 짜임새가 緊密하다.

 

난정서

(蘭亭敍)

 

회계현 蘭亭에 모여 名士들이 지은 詩集의 序文으로 王羲之가 쓴 글이다. 唐 太宗의 指示로 만들어진 唐 書藝家들의 임모본이 傳하며 이 塔本 法帖은 그 임모본을 바탕으로 後代에 模刻된 글씨다.

 

대당삼장성교서

(大唐三藏聖敎序)

 

王羲之 行書를 集字한 비로 多樣한 홀립채의 變化를 볼수 있다. 現場의 佛頂 飜譯後 太宗이 賀使한 大唐三藏聖敎序 太子 吏治의 大唐三藏聖敎序 그리고 現場 飜譯의 般若心經 으로 構成되어 있다.

 

석고문

(石鼓文)

 

북 模樣의 새겨진 글씨이다. 現存하는 가장 오래된 中國 石刻文字로 사냥에 대한 內容을 담았다. 周나라 때 製作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現在는 戰國時代 眞 대의 것으로 보고 있다.

 

권량명

(權量銘)

 

무계와 부피를 재는 저울인 권량에 새겨진 글씨이다. 中國 統一後 秦始皇은 나라마다 서로 달랐던 複雜한 大典을 整理하였는데 이것이 소진이다.  소진의 書體는 碑石뿐 아니라 이와 같은 權量을 通해서도 確認 할수 있다.

 

노나라효왕의각석

(魯孝王刻石)

 

魯孝王刻石은 전한 선재 오봉 2년에 魯나라 孝王이 榮光殿의 完城을 記念하여 建物 壁에 붙였던 定礎石 이다. 여기에 새겨진 것은 고예로 형태는 隸書이나 畢劃은 全書에 가깝다.

 

사신비

(史晨碑)

 

이진재법첩

(貽唇裁法帖)

 

고금영련휘각

(古今寧聯徽刻)

 

개성있는서예표현과法帖의제작

 

송(宋) 書藝는 自由롭고 淡白하게 個性을 表現하였고 詩文學과 結合되어 높은 格調를 지녔다. 소식(蘇軾),황정견(黃庭堅),미불(米茀)등 個性있는 書藝家들이 活動하였다. 또한 (淳化閣帖)과 같은 法帖이 刊行됨으로써 書藝는 보다 飛躍的으로 發展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