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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3/歷史&文學館

朴寅煥文學館

(朴寅煥文學館)

 

 

西歐的 感受性과 雰圍氣를 强하게 風氣면서 어두운 現實을 敍情的으로 읊은 後期 모더니즘의 기수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광선(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 사이에서 長男으로 태어나 1939년 서울 德修初等學校를 마쳤다. 이어 京畿中學校에 入學했다가 1941년 自退하고 漢城學校를 거쳐 1944년 黃海道 載寧의 名臣中學校를 卒業했다. 같은 해 平壤醫學專門學校에 入學했으나 解放이 되자 學業을 中斷했다. 서울로 와서 '마리서사'라는 書店을 經營하면서 여러 詩人들과 사귀었고, 書店을 그만두고는 〈自由新聞〉·〈京鄕新聞〉 記者로 勤務했다. 6·25戰爭이 일어나자 陸軍 所屬 從軍作家團에 參與하고 避難地 釜山에서 김규동·이봉래 등과 '後半期' 東人으로 活動했다. 1955년 大韓海運公社에서 일하면서 美國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心臟마비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박인환

(朴寅煥)

 

박인환(朴寅煥, 1926년 8월 15일 ~ 1956년 3월 20일)은 韓國 1950년대의 代表的인 모더니즘 詩人이다. 生涯 1926년 江原道 麟蹄에서 出生하였고 京城第一高報를 거쳐 平壤醫專을 中退하였다. 1946년 〈거리〉를 發表하여 登壇하였다. 光復 後 서울에서 書店을 經營하였고, 1947년부터 京鄕新聞 記者로 美國을 視察하였다. 1949년 東人그룹 '後半期'를 發足하여 活動하였다. 1949년 5인 合同詩集 《새로운 都市와 市民들의 合唱》을 發刊하여 本格的인 모더니즘의 기수로 注目받았다

  

 

  

 

세월이가면

                                                 

                                               朴寅煥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 세월이 가면 -

 

 

마리서사

 

解放後 平壤醫學 專門大大學을 中退하고 서울로 돌아온 朴寅煥은 父親과 異母로부터 빌린돈 5만원으로 鍾路3가 樂園洞 入口에 詩人 오장환이 運營하던 스므평 남짓한 書店을 引受하여 茉莉書舍를 열었읍니다.

 

 

봉선화다방

 

鳳仙花茶房은 古典音樂 專門店으로 8.15解放이 되자 明洞附近에 맨처음으로 開業을한 茶房 입니다. 文人들이나 藝術人들이 그져 모여 茶를 마시거나 서로 連絡하는 것에 그치지않고 많은 文化行事를 이곳 茶房에서 열었읍니다.

 

 

포엠

 

이곳은 위스키 試飮場으로 門을연뒤 값싼 洋酒를 供給해 明洞 藝術人들의 사랑을 받았던 포엠술집 입니다. 50 여年前 文學을 論했던 明洞 佰爵 들에겐 종이,술병이 明洞 必需品이었으며 作家 이봉구는 自身의 작은 明洞과 明洞白瓷에서 明洞이 있고 文學이 있고 술이있었기에 幸福했었다고 그 時節을 回告하고 있읍니다 저녁이 오면 하루의 日課를 마친 文人과 藝術人들이 便安한 雰圍氣 그리고 싼 술값과 人心德에 이곳 포엠을 자주 찾았으며 집안은 家難했지만 恒常 말쑥하게 차려입고 포엠을 드라들었던 멋쟁이 新人 朴寅煥도 언제나 함께 있었읍니다.

 

 

유명옥

 

당시 김수영의 母親은 忠武路 4가에서 유명옥이라는 빈대떡집을 運營하였다. 이곳은 現代 모터니즘 詩運動이 始作된곳으로 김수영,박인환,김경린,김병옥,임호권,양병식등이 모여 韓國現代詩의 새로운 出發과 後期 모터니즘의 發展에 대해 서로의 意見을 나눴던 곳입니다. 또한 同人誌 新詩論 제1집 發刊의 밑거름이 된 歷史的인 곳입니다.

 

 

동방싸롱

 

1955년 겨울에 明洞 大韓重石 옆 三層建物에 東方쌀롱이 門을 열었읍니다. 東方쌀롱으 事業家 김동근씨가 藝術人들을 위해 지어준 3층 콘크리트 建物로서 당시로선 最新式 建物이었읍니다. 1층은 茶와 簡單한 술과 안주를 파는 싸롱 2층은 執筆室 3층은 會議室로 構成된 綜合文化 會館 이었읍니다.

 

 

종로뒤골목

 

50 ~ 60년대 鍾路 뒤골목에 선술집,茶房,빠,등 여러種類의 가게들이 있어 藝術人들이나 文學을 사랑하는사람들이 가난한 주머니를 갖고 모임과 對話를 나누던 場所이다.  당대에 내노라 하는 詩人들도 이곳을 사랑하게 되었고 韓國文學의 基礎를 다지던 場所 이기도 하다,

 

 

은성

(대폿집)

 

탤런트 최불암(崔英漢)씨의 어머니(이명숙여사)는 1950년 ~ 60년대 明洞時節에 文人들이 自主 利用하였던 술집 은성을 運營 하였읍니다. 최불암(崔英漢)씨의 아버지는 仁川에서 活動하던 映畵製作者였는데 過勞로 일찍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 뒤에 최불암(崔英漢)씨의 어머니는 외동 아들을 데리고 은성을 차리게 되었다. 金洙暎,朴寅煥,卞榮魯,田惠麟,이봉구,吳相淳,千祥炳등 文化藝術人들이 막걸리 잔 너머로 文學과 藝術의 꽃으 피웠던 은성이란 술집은 50 ~ 60년대 藝術의 中心地인 明洞에서 家難한시대 藝術家들의 사랑방 役割을 톡톡히 해오곳 입니다. 明洞佰爵으로 불렸던 小說家 김봉구씨가 은성의 단골이기도 했으며 朴寅煥이 죽기 얼마전에 歲月이가면 이라는 作品을 이곳에서 남기고 죽었읍니다.

 

 

목마와숙녀

 

한잔의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울프의 生涯와 木馬를타고 떠난 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木馬는 主人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별은 내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내가 잠시 알던少女는 庭園의 草木옆에서 자라고

文學이죽고 人生이 죽고 사랑의 眞理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때

木馬를 탄 사람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歲月은가고 오는것 한때는 孤立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 등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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