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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 憶 時 節/撮 映 地

李舜臣(扶安撮影場)

(不滅의李舜臣)

 

 

21世紀 왜 이순신(李舜臣)인가? 21世紀의 새로운 指導者 상이 必要한 時點이다. 우리는 지금 낡은 政治를 淸算하고 分列된 國論을 統一시켜 새로운 韓國을 建設해야 할 벅찬 課題를 안고 있다. 이러한 歷史的 轉換點에서 時代를 리드해 나갈 指導者는 과연 어떠해야 할까? 危機를 機會로 轉換해 勝利를 이끌었던 李舜臣이야 말로 21세기 , 새로운 指導者 상이 아닐까? 國子存亡의 危機 속에서 指導層이 中心을 잃고 漂流 할 때 흔들림 없는 愛國心과 勇氣, 그리고 不屈의 信念으로 나라를 求 하신 李舜臣 學緣이나 地緣,血緣에 九涯받지 않고 原理原則에 따라 일을 처리하여 舊習을 過感히 他派하여 徹底한 準備와 改革意志로 部下들을 이끌던 李舜臣이야 말로 이 時代가 要求하는 眞情한 指導者상인 것이다.

 

 

 

전라좌수영

(全羅左水營)

 

全羅左水營은 成宗 10년(1479) 順川 內來浦에 水軍絶度營을 設置하고 水軍節度使를 둔 이래 高宗 32년(1895)에 革罷될때까지 400여년간 朝鮮水軍의 主鎭으로서 南海岸 防禦를 위한 戰略的 要衝의 水軍營 이었다 . 全羅左水營은 成宗 10년(1479) 全羅道水軍節度使營이 全羅左水營과 全羅右水營으로 分利되면서 약 84년간 내려오던 내례 만호진이 革罷되고 그 곳에 全羅左水營이 자리잡아 全羅道全羅道左側의 海上防禦를 擔當하게 되었다. 특히 이곳은 壬辰倭亂時에는 朝鮮水軍의 主力이었던 全羅左手軍의 本營으로서 海上義兵의 根據地였으며, 高宗 32년(1895)에 革罷될 때까지 400여년간 朝鮮水軍의 主鎭으로서 南海岸 防禦를 위한 戰略的 要衝地였다

 

 

이순신

(李舜臣)

 

壬辰倭亂의 戰勢를 바꾸게 한 1592년 7월 8일의 閑山島 海戰은 世界 4대 海戰으로 꼽힐 程度로 有名한 海戰이다. 당시 70여척의 敵船이 碇泊해 있던 견내량은 地形이 複雜하고 좁아서 我軍에게 불리한 場所였다. 將軍은 이 점을 看破하고 敵船을 閑山島의 넓은 바다로 誘因하여, 無防備狀態의 敵을 "鶴翼陣法"으로 集中 攻擊함으로 大勝을 거둔다. 閑山島 海戰은 뛰어난 戰略家로써의 將軍의 面貌가 如實히 드러난 戰鬪였다. 將軍은 恒常 部下將帥들과 戰略과 戰術을 論意하고 硏究하였다. 東西洋의 海戰 硏究家들은 時代를 超越하여 이러한 李舜臣 將軍의 뛰어난 海戰술을 稱讚하며 硏究하고 있다.

 

 

이순신

(李舜臣)

 

이순신(李舜臣) 朝鮮 中期의 武官이다. 本官은 德壽 자는 여해(汝諧), 諡號는 충무(忠武)이다. 本人 스스로에게 嚴格한 生活을 行하고 孝心을 가진 선비의 模範으로 評價된다. 將帥로서는 壬辰倭亂 때 朝鮮의 三道水軍統制使가 되어 部下들을 잘 統率하는 指導力과 能手能爛한 戰術로 日本水軍과의 海戰에서 連戰連勝하여 나라를 求한 성웅(聖雄)으로 推仰받고 있다. 高麗王祖 때 중랑장(中郞將) 이돈수(李敦守)의 12대손 이며, 朝鮮 초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변(李邊)의 後孫이다.

 

 

상유십이순신불사

(尙有十二舜臣不死)

 

李舜臣이 白衣從軍에서 復權되 다시 3 軍帥郡統帝師가 되었을때 宣祖는 "現地狀況을 보아 水軍에 可望性이 없으면 水軍을 포기하고 權慄 都元帥가 이끄는 陸軍에 合流하라"는교지 (敎旨)를 내렸다. 李舜臣은 이에대해 宣祖임금에게 상유십이순신불사 (尙有十二舜臣不死) 아직배가 12척이 남아있고 李舜臣이 죽지않았다 水軍을 일의켜 반드시 勝利 하겠다는 뜻의 長計를 올렸다.

 

 

거북선

( - 船)

 

거북선( - 船)은 高麗 朝鮮 時代의 軍艦이다. 朝鮮 水軍의 指揮官 李舜臣이 壬辰倭亂 直前에 建造하여 壬辰倭亂 중 泗川海戰에서 첫 出戰한 이래 日本 水軍에게는 恐怖의 代名詞가 되었다. 朝鮮王朝實錄등의 記錄에는 거북을 漢字로 옮긴 귀선(龜船)으로 적혀 있다.

 

 

필사즉생필생즉사

(必死卽生必生卽死)

 

李舜臣은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필사즉생필생즉사 (必死卽生必生卽死) 는 말로 自身은 물론 部下에게 必勝에대한 信念13척대 133척 兵法의 天才라 할수있는 孫子와 諸葛亮 조차도 두손들고 포기했을 衆寡不敵의 狀況을 必勝의 信念으로 突破해냈다. 한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天命을 두렵게 할수있다.(一夫當逕足千夫)는 것과 죽음을 무릅쓰고 最前線에서 앞서 싸우는 솔선수범(率先垂範)하는 리더쉽을 보여 주었다.

 

 

거북선

( - 船)

 

거북선( - 船)은 高麗 朝鮮 時代의 軍艦이다. 朝鮮 水軍의 指揮官 李舜臣이 壬辰倭亂 直前에 建造하여 壬辰倭亂 중 泗川海戰에서 첫 出戰한 이래 日本 水軍에게는 恐怖의 代名詞가 되었다. 朝鮮王朝實錄등의 記錄에는 거북을 漢字로 옮긴 귀선(龜船)으로 적혀 있다.

 

 

閑山島歌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伽)는

남의 애를 끓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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