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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 憶 時 節/撮 映 地

野人時代(富川撮影場)

(野人時代)

 

 

(野人時代)는 金斗漢의 一代記를 그린 大河드라마이다. 放送은 SBS에서 放映하였고 , 日帝强占期 ~ 大韓民國 1972년까지, 放送期間은 2002년 7월 29일 ~ 2003년 9월 30 일 까지 총 124회 放送되었다. 劇本은 이환경 작가 , 演出은 장형일 監督이다. 57.1%라는 最高 視聽率, 平均 30%대 등 드라마로서 異例的으로 맞이방 에서 市廳 風景, 放映時間에 距離에 사람이 없다 하여 귀가 時計로 불리는 등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放映 동안 放映 後에도 富川 野人時代세트場은 觀光地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2004년 몽골에서도 放送되어 공전의 히트를 記錄하여 金斗漢 役을 演技했던 俳優 안재모는 몽골 나차긴 바가반디 大統領으로부터 國賓招請 받기도 했다

 

 

 

화신백화점

(和信百貨店)

 

1890년대에 신태화(申泰和)에 의해 設立된 和信商會를 1931년 선일지물(鮮一紙物) 社長 박흥식(朴興植)이 36만 원에 買收해 資本金 100만 원의 和信商會를 設立하고, 以前의 木造 2층 建物을 3층 콘크리트 建物로 贈·改築하였다.

 

 

부산국제시장

(釜山國際市場)

 

6·25戰爭과 더불어 全國 各地의 避難民이 모여들고, 美國의 救護品과 軍用品이 流通되면서 國際市場은 隣近 光復洞·南浦洞의 道心商街와 더불어 釜山뿐만 아니라 全國 商業技能의 重推 役割을 했다. 俗稱 '케네디 市場'이라고도 부르는 槍船洞1·2 가의 衣類都買 및 덤핑 市場은 6·25戰爭 당시 救護物資로 들어온 옷가지들이 많이 去來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保稅 衣類品 등이 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또한 富平洞의 '깡통市場'은 外製物品市場으로 有名하다.

 

 

전차

(電車)

 

電車는 1960년대 서울市內의 交通手段으로 東大門을 電車基地로 미아리, 永川,西大門, 永登浦,鷺梁津등의 路線으로 運行하던 電氣의 힘으로 가는 車이다.

 

 

거지왕김춘삼

 

視野를 넓히려는 그는 서울 鹽泉橋로 部下들과 進出하고, 열 한살에 鹽泉橋의 頭目이었던 '김빠'를 部下로 삼는다. 已後 春衫은 南大門 一隊를 占領하며, 金斗漢을 만나 同生으로 삼고 함께 日人의 惡行에 맞서 定義를 行하게 된다. 이때, 그의 첫사랑인 荀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家族이 모두 日人에게 죽고 거지 巢窟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春衫을 지극히 看護하며 지켜주다가 以後 娼女가 되어 春衫과 離別한다. 점차 서울에서 領域을 넓히던 春衫은 解放 後 고아들이 넘쳐나자 孤兒院을 設立하고, 南大門과 大田에 '合心員'이라는 孤兒院을 設立하여 거지와 고아들을 敎育시키며 善導한다. 하지만 곧 이은 韓國戰爭에 春衫은 參戰하게 되고, 죽을 苦悲를 넘긴다.

 

 

종로경찰서

(鐘路京察署)

 

鍾路警察署는 2층 組積建物로 전면폭(前面幅)이 약 12간(間), 측면이 약 8간으로 全體 面積은 198평(坪) 정도였다. 建物의 型式은 벽돌에 石材를 섞어서 使用한 것으로 玄關部分의 포오치와 2층 발코니 部分 등에는 모두 석조(石造)로서 構成하였는데 발코니 部分은 아이오닉 오오더(Ionic-order)로 粧飾되었고 그 위에 다시 圓筒形의 드럼으로 된 時計塔을 만들고 돔을 얹었다. 鍾路警察署는 北部警察署 鍾路巡査派出所가 1915년 6월에 昇格된 것으로 1923년 1월 김상옥(金相玉) 의사(義士)의 투탄(投彈)으로 建物의 一部가 破損되었으나 곧 保守되었다. 동서(同署)는 場所와 警察事務의 保安官係 등을 理由로 하여 1929년 8월 구(舊) 漢城裁判所 廳舍로 以前하였다.

 

 

보신각

(普信閣)

 

보신각(普信閣)은 서울特別市 鍾路區에 있는 傳統 韓屋 樓閣이다. 普信閣鐘을 걸어 놓기 위해 만든 것으로 正面 5칸, 側面 4칸의 構造로 되어 있다

 

 

우미관

(優美館)

 

우미관(優美館)은 1910년에 세워진 韓國 最初의 尙設 映畵管이다. 1910년에 한 日本人이 서울 鍾路區 貫鐵洞에 "高等演藝館"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고, 1915년에 優美館으로 改稱되었다. 開館當時 劇場은 2층 벽돌 建物에 1,000명 佳良이 觀覽할 수 있는 긴 나무의자가 마련되어 있었으나, 恒常 2000명이 넘는 觀覽客으로 들어차 "優美館 구경 안하고 서울 다녀왔다는 말은 거짓말" 이라는 말이 생길 程度로 有名했다고 한다. 無聲映畵와 活動事 등 上映하여 8.15 光復 때까지 團成社,朝鮮劇場 등과 더불어 一流 開封劇場이었으나 1959년에 火災 때문에 花信百貨店 옆으로 자리를 옮겼고 1960년대부터는 二流 再開封劇場으로 命脈만 維持되다가 여러번 營業停止 등으로 赤字運營에 시달려1982년 11월말에 閉業하였다.

 

 

김두한

(金斗漢)

 

金斗漢은 大韓民國 政治人·大韓 學徒義勇軍 參謀長· 靑年運動家· 社會運動家· 勞動運動家이다.日帝强占期 弱冠 나이로 주먹 皇帝로 君臨하여 日本式 姓名强要,皇國新民 序詞 등 民族抹殺政策에 拒否하는 등 日帝에 抵抗하였다. 解放 期에서는 잠시동안 朝鮮共産黨의 傘下인 朝鮮靑年前衛隊 大將으로 있었으나 父親(金左鎭)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후 脫退 및 轉向하여 右翼의 先鋒將으로서 反託運動 등 左右對立에서 鬪爭하였다. 美軍政서 逮捕되어 死刑宣告를 받기도 했으며 李承晩 政府에서도 金九의 暗殺 時期에 國家保安法 등으로 獄苦를 치르기도 하였다.韓國戰爭에는 大韓 學徒義勇軍 등 戰線에 參戰하였고 勞動運動에도 投信하여 勞動運動家로서도 活動하였으며 大韓民國 제3대 國會 大韓民國 제6대 國會등 國會議員을 지내면서 李承晩 政權,朴正熙 政權의 獨裁에 批判하며 反獨制등 民主化 運動에도 鬪爭하였다. 6대 國會議員에 當先 直後 韓國獨立黨 內亂陰謀事件으로 獄苦를 치렀고, 韓國 肥料 株式會社가 사카린을 密輸하여 國會에서 三星 李秉哲 朴正熙 政權을 批判하며 國務委員등에게 汚物을 投擲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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