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보리암
(南海菩提庵)
菩提庵은 누가 언제 세웠는지 알 수 없다. 朝鮮 肅宗 20년(1694)에 쓴 『菩提庵重修記』에 따르면 普照國師가 세운 뒤 丁酉再亂으로 불탄 것을 宣祖 40년(1607)에 僧侶 新撰이 고쳐 지었고, 孝宗 1년(1650) 스님들이 힘을 모아 다시 지었다고 한다. 菩提庵이라고도 하는 이 庵子는 1983년 住持 성묵스님이 現 法堂을 復元하였다. 法堂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粧飾하여 만든 공포는 새 부리 模樣으로 粧飾한 익공 樣式으로 꾸몄다. 이곳은 壬辰倭亂 때 充壯公 金德齡 將軍의 婦人 흥양 李氏가 殉節한 곳이기도 한데 壬辰倭亂 당시 흥양 李氏는 倭賊에게 쫓기자, 絶壁에서 몸을 던져 殉節하였다. 지금도 岩壁에는 憲宗 6년(1840)에 潭陽副使 조철영이 이 事實을 새겨 놓은 名文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