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우리들의 밥상
소 찬
박 목 월
오늘 나의 밥상에는
냉이국 한 그릇
풋나물 무침에 新苔(햇김)
미나리 김치
偸薄(투박)한 보시기에는 끓는 장찌개


신줏단지
(神主甕器)


우리들의밥상


청화백자.합.접시
(白瓷靑華壽福文字文盒.楪匙)
長壽와 福을 祈願하는 壽福 글자무늬를 새겨 넣은 靑華白瓷 이다. 盒의 몸체는 壽와 福 글자를 번갈아 配置치하고, 뚜껑의 四方에는 篆書體로 壽福康寧을 써 넣었다. 楪匙 안쪽 바닥에는 壽와 또는 福 글자를 單獨으로 쓰거나 두 겸의 원안에 써 넣었다. 楪匙는 글 周邊에 무신슈강진고간디등쇼 이라는 한글이 새겨져 있는데 1848년 (戊申年) 壽康齋에서 使用 하기위해 만든 中楪匙와 小楪匙 40개중 하나이다. 1848년은 大王大妃인 純元王后( 1789 ~ 1857)의 60세 生日을 記念한 잔치가 열린 해이며 壽康齋는 이 무렵 純元王后의 居處로 고쳐지은 建物이다.


소반
(小盤)
朝鮮時代에는 오늘날과 달리 儒敎的 禮法의 影響으로 身分, 性別, 年齡에 따라 따로 食事를 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이 하나의 床을 使用하였는데 이를 小盤이라고 한다. 小盤은 機能的 으로는 음식 그릇을 運搬하는 錚盤의 機能과 食事를 하기위한 床의 機能을 모두 갖추고 있다. 높이는 대체로 20 ~ 30 cm 내외로 방바닥에 앉아서 使用하는데 不便함이 없도록 만들었다.


나무절구
穀食을 빻거나 찧고 떡을 치기도 하는 道具다. 우리나라 全域에서 使用되었으며 地域에 따라 절고 절고방아 道具 道具通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나무절구는 무게를 줄이고 공이 닿는 면은 넓히기 위해 가운데 허리가 잘룩한것이 많다. 收穫한 벼를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으면 衝擊과 摩擦로 껍질이 벗겨진다. 나무절구와 공이로 벼 한말을 찧으려면 한 時間쯤 걸린다고 한다.

숨쉬는 그릇 옹기
(甕器)
甕器는 흙으로 빚어 잿물을 입혀 구워낸 질그릇이다. 微細한 알갱이가 섞인 粘土로 만들기 때문에 그 안팎에는 보이지 않은 숨구멍이 생긴다. 이 微細한 구멍을 通해 空氣가 循環하며, 그 속에 담긴 김치나 장과 같은 飮食이 알맞게 醱酵 되도록 돕는다. 우리나라 地域마다 自然環境이 다른만큼, 甕器의 模樣 또한 氣候에 맞게 多樣하게 發達했다. 이러한 差異는 집집마다 固有한 장맛과 김치맛을 빚어내는데 한몫했다.



흑칠나전사각반
(黑漆螺鈿四角盤)
검은 옻칠을 한뒤 螺鈿으로 粧飾한 長方形 四角盤 이다. 王室에서는 飮食과 狀況에 따라 둥근圓盤, 작은결반, 四角盤 등 여러 形態의 床을 使用하였다. 大韓帝國 마지막 皇帝 純宗을 모셨던 尙宮인 한희순에 따르면 水剌床은 큰 圓盤과 작은圓盤, 冊床盤이라 부르는 四角盤등 세개의 床으로 차렸다. 이 四角盤도 책상반 계열의 床으로 따뜻하게 먹어야하는 飮食이나 別途로 準備한 찬을 올리는 補助盤으로 쓰였을 可能性이 있다. 中央에는 두마리의 龍을 모서리에는 鶴과 연꽃을 螺鈿으로 粧飾하여 王室 器物의 品格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마
밥상으로 보기에는 칼자국이 많고
작업대로 보기에는 작습니다.
삼국시대 부산 기장에서 살았던
누군가가 사용한 도마 입니다.
누구의 손으로 무엇을 다듬고 있었는지는
알수없읍니다.
다만 천칠백 여년 전의 도마는
수많은 칼자국으로 조용히 말해붑니다.
그날도 누군가의 밥상을
정상껏 차리고 있었다는 것을요.

꿩뼈가 담긴굽다리접시



분청사기철화연꽃물고기무늬병
(粉靑沙器鐵畵蓮魚文甁)
鷄龍山 鶴峰里 가마에서 만든 粉靑沙器에는 독특한 물고기 무늬가 많다. 지느러미를 한껏 펼친 얼룩무늬 물고기는 쏘가리로 推測 된다. 쏘가리는 漢字로 闕魚라 하는데 宮闕의 闕과 音이 같아서 貴하게 여겨졌고 詩文과 繪畵등에도 자주 登場했다.

분청사기조화물고기무늬편병
(粉靑沙器彫花魚文扁甁)
白土를 발라 粧飾한 扁甁에 陰刻線으로 물고기 한쌍을 그려 넣었다. 물고기 무늬는 富貴, 多産, 繁榮을 象徵하며 工藝品에 널리 쓰였다. 주로 扁甁, 甁, 장군, 항아리에 登場 한다.

수저가 닿고
사람들이 모이는 밥상풍경
달그락달그락
수저나 그릇같은 단단한 물건이
자꾸 맞닿는소리
왁자지껄
여럿이 정신이 어지럽도록
시끄럽게 떠들고 지껄이는 소리
속살속살
남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자질구레하게 이야기하는 소리
옹기종기
크기가 다른작은 것들이 고르지않게
많이 모여있는 모양
오손도손
여럿이 정답고 화목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는 모양
티격태격
서로뜻이 맞지않아 시비를 따지며
가리는모양

청화백자모란무늬양념단지
(靑華白瓷牡丹文四付小壺)
朝鮮後期에 양념의 가짓수가 많아짐에 따라 작은 항아리 여러개를 붙여 만든 양념단지가 登場했다. 양념을 간편하게 옮길수 있도록 하나의 큰 손잡이를 달기도 했다. 大部分 偸薄한 甕器로 만들었으며 朝鮮後期 靑華白瓷로 만든 양념 단지는 兩班家에거 使用했던 高級 物品으로 보인다.


머그컵을 닮은잔
따뜻한 커피 한잔이 담긴 머그컵을 떠올리셨나요?
아니면 밥상옆을 지키던 물이나 술이 담긴 잔을 떠올리셨나요?
손잡이가 달린 익숙한 形態의 잔은 三國時代에도 많이 發見됩니다.
손에 쥐기 편하고 뜨거운것을 담아도 데지 않도록 千五百年前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 봅니다.
形態는 必要에서 만들어지고 좋은 形態는 時間을 넘어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오래된 잔들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게 다가옵니다.


곽주가부인하씨에게쓴한글편지
(玄風郭氏諺簡)
곽주가 夫人하씨 에게 祭祀에 쓸 꿀을 求하지 못했으니, 조꿀을 좋게 고아 準備해 달라고 當付하며 이웃에게 그 方法을 배워 直接 고아보라고 이른다. 조꿀은 穀食을 고아 만든 造淸으로 貴해서 求하기 어려웠던 꿀을 代身해 단맛을 내는 材料로 쓰였다.


자산어보
(玆山魚譜)
김려와 마찬가지로 丁若銓도 辛酉迫害에 連累되어 流配 되었다. 絶望的인 孤立束 에서도 그는 百姓을 위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丁若銓 은 黑山島 인근바다 生物의 이름이 地域마다 제 각각인점을 안탑깝게 여겨 이를 體系的으로 整理 하고자 했다. 바다 生物을 實證的으로 調査하여 226 種으로 分類 하였고 이름과 俗稱은 물론 크기, 形態, 色, 生態, 맛, 漁獲時期, 및 方法까지 詳細히 收錄 하였다. 百姓의 삶을 豊饒롭고 潤澤하게 하려했던 그의 努力이 담긴 記錄이다.


요록
(要錄)
17 世紀 飮食의 調理法, 손질법, 貯藏法에 대해 쓴 冊이다. 특히 첫면에 다석가지 맛이 身體에 미치는 影響과 病의 症狀에 대해 說明 하였다. 다섯가지 맛이란 신맛, 짠맛, 매운맛, 쓴맛, 단맛이다. 한 맛에 치우쳐 먹으면 몸을 傷하게 하여 病이 생긴다 하였다. 즉 한가지 맛만 좋아하지 말고 다섯가지 맛을 調和롭게 섭취 할것을 强調한다. 料理法이 잘 알려지지 않은 17 世紀 飮食과 關聯한 用語, 材料名, 調理法, 貯藏法을 살펴 볼수 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宣和奉使高麗圖經)


나물캐기
(挾籠採春)
종일 굽힘 허리가 아파져 온것일까? 女人은 일어서서 먼곳을 凝視한다. 옹여맨 두건 움켜진 호미, 걷어붙인 치마 아래로 드러난 종아리가 단단하다. 어김없이 올 봄에도 糧食이 다 했으니 쑥과 냉이, 달래를 캐어 食口 虛飢를 달래는 수밖에 없겠다. 山과 들이 내어주는 봄나물은 보릿고개를 넘게해준 生命의 먹거리였다. 봄날의 情趣와 삶의 孤單함을 담담이 담아낸 그림이다.


봄
한 女人이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봄나물을 뜯는다. 곁에는 어린딸이 조용히 앉아 있다. 오늘도 女人은 이 언덕에서 하루의 끼니를 찿아낼 것이다. 등에 업힌 아이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진 그녀의 손끝이 묵묵하고 따뜻하다.


고기굽기
(野宴)


논갈이
(耕沓)
陰曆 2월 소가 쟁기로 논을 갈아엎으며 한 해 農事가 始作된다. 사람의 힘으로는 堪當하기 어려운 깊은 논갈이에는 소는 必須였다. 소 없는 農事는 想像하기 어려웠고 貧農들은 소를 빌려서라도 논갈이를 마쳐야 했다. 우리나라 固有의 소 種類로는 黃褐色 韓牛와 더불어 검줄무늬가 있는 칡소, 몸이 검은 黑牛가 있는데 現在 칡소와 黑牛는 그 수가 크게줄어 찿아보기 어려울 程度이다.


국수먹는모습
(麵食)

국수장사
(麵商)
지금처럼 국수 만드는 機械가 없던 時節에는 작은 구멍을 뚫은 틀에 반죽을 넣고 강한 힘으로 눌러 국수를 뽑아 냈다. 그림에는 成人男性이 지렛대 위에 올라가 온몸의 무게를 실어 국수를 뽑아내고 있다. 그 動作은 기이하나 表情은 자못 진지하다. 국수를 틀에서 뽑힌 국수는 바로 아래놓인 솥에 들어가 삻긴다.


혜경궁홍씨의회갑연
(惠慶宮洪氏回甲宴)
本官은 豊山.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로 알려져 있다. 領議政 홍봉한(洪鳳漢)의 딸이며, 正祖의 어머니이다. 1744년(英祖 20) 世子嬪에 冊封되었으나, 시파(時派)와 벽파(僻派)의 黨爭에 휘말려 1762년 남편 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혀 죽는 悲運을 겪었다. 思悼世子가 죽은 뒤 둘째 아들이 王世孫에 冊封되어 혜빈(惠嬪)의 호를 받았다. 1776년 正祖가 卽位하자 궁호(宮號)가 惠慶으로 올랐다. 還甲을 맞은 해(1795년)에 閑中錄을 썼는데, 이 作品은 男便의 慘事를 中心으로 自身의 한 많은 一生을 回顧하며, 自敍傳的인 사소설체(私小說體)로 記錄한 것이다. 文章이 纖細하고 雅談하여 〈仁顯王后傳〉과 아울러 宮中文學의 雙璧으로 評價되고 있다. 1899년(光武 3) 男便이 장조(莊祖)로 推尊됨에 따라 敬懿王后에 推尊되었다.

正祖의 아침 水剌床
1795년 윤 2월 13일 아침수라상
1. 쌀밥 2. 꿩두부국 3. 전복만두탕 4. 꿩찜 5. 세갈비,숭어꼬치구이
6. 말린민어,전복, 꿩육포,새우알, 대구다식 7. 오이김치.
A. 간장 B. 초간장 C. 고추장

正祖의어머니 惠慶宮
1795년 윤 2월 13일 아침수라상
1. 쌀밥 2. 꿩두부국 3. 전복만두탕 4. 수육조림 5. 굴,잡육구이 6. 웅어회
7. 계란전 8. 미나리나물 9. 말린민어,전복, 꿩육포,새우알, 대구다식 10. 참조기젖, 굴젖
11. 오이김치 12. 꿩김치 13. 낙지탕 14. 세갈비, 숭어꼬치구이 15. 꿩찜
A. 간장 B. 초간장 C. 고추장.
먼곳에서 珍奇한 材料를 求 하지말고 사치스러운 맛을 내지말라.
잔치상( 回甲宴)은 飮食을 두텁게 담고 豊盛히 하되 내 水剌床은 10여 그릇을 넘지 않토록 하라,


무신년(1848)에열린궁중잔치를그린병풍
1848년 3월 憲宗(1834 ~ 1849)이 할머니인 大王大妃 (純元王后)의 60세 生日을 記念하여 昌德宮 仁政殿과 昌慶宮 通明殿에서 올린 儀禮와 잔치 場面을 그린 그림이다. 主人公인 大王大妃를 위해 갖자기 飮食을 높이 쌓고 꽃으로 粧飾한 饌案이 차려졌다. 饌案 외에도 안주상, 탕, 만두, 차, 다과등이 차례로 올랐다. 精誠껏 마련한 飮食은 參席한 손님뿐 아니라 準備를 맡은 官員, 宮人, 樂工, 軍事들에게도 고루 나누어졌다.




신사임당
(申師任堂)
申師任堂은 江原道 江陵 胎生으로 그의 生家 烏竹軒은 지금도 保存되고 있다. 本名은 신인선이었다. 아버지는 신명화(申命和)라는 이름의 선비였고, 어머니는 龍仁 李氏 집안의 선비인 李思溫의 딸이었다. 스스로 사임당(師任堂)이라는 號를 지었는데, 周나라의 기틀을 닦은 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에서 따왔다고 傳한다.그 외에 인임당(姻姙堂) 또는 임사제(姙師齊)라는 號도 가졌다고 한다. 1522년 德修 李氏의 이원수(李元秀)와 結婚하여 江陵에서 서울로 移徙했으며 4남 3녀를 두었다. 栗谷 李珥는 申師任堂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뛰어난 畵家로서 7살 때 世宗 時代의 畵家 安堅의 그림을 본따서 그림을 그렸고, 肅宗, 宋時烈 등 여러 知識人들이 그가 그린 그림에 跋文을 쓸 程度였다. 書藝家이자 詩人이기도 한 그는 '어머니가 그리워'(思親)등의 한시(漢詩)를 여러 편 지었다. 別世 당시 그녀의 나이는 48세였다. 詩·글씨·그림에 모두 뛰어났으며 이이(李珥)의 어머니로 士大夫 婦女에게 要求되는 德行과 才能을 兼備한 賢母良妻로 稱頌된다. 本官은 平山. 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인 명화(名和), 어머니는 龍仁李氏로 사온(思溫)의 딸이다. 李珥는 〈行狀記〉를 지어 師任堂의 藝術的 才能, 優雅한 天稟, 純孝한 性品 등을 記錄했다. 師任堂은 周나라 文王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本받는다는 뜻의 堂號이며, 이밖에 시임당(媤任堂)·임사재(妊思齊)라고도 했다. 江陵 外家에서 자랐으며, 19세에 德修李氏 원수(元秀)와 婚姻했다.

과일,채소와동물들 草蟲圖
과일과 채소가 어울어진 風景속에서 여러 動物이 뛰논다. 탐스럽게 익은 수박, 덩굴에 달린 큼지막한 오이. 보랏빛 가지와 흰색의 가지까지 먹음직스러운 과채류가 한가득이다. 우리 先祖들이 즐겨 먹었던 과일과 채소를 보여주는 同時에 吉祥의 意味를 담고 있다. 특히 그림속 수박이나 오이와 같은 植物들은 씨가 많고 四方으로 덩굴을 뻗으며 자라기 때문에 傳統的으로 子孫의 繁昌을 象徵한다.





강가에모여먹고마시다
(江上會飮)
무더운 여름 한낮, 사내들이 강가에 모여 앉았다. 강물에 들어가 보았어도 낚은 물고기는 고작 한마리뿐이다. 그런들 어떠하랴 시장이 반찬 인것을 모인김에 싸온 밥이며 술을 나눈다. 잔 가지꺽어 젓가락 삼고 버드나무 푸른 그늘에 앉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땅바닥에 차려낸 소박한 한끼이지만 함께여서 마음만은 넉넉한 한때이다.


조일통상장정 체결을 기념한 연회
(朝日通商章程紀念宴會圖)
1887년 7월 25일 朝鮮은 日本과 關稅를 비롯한 通商條件에 관한 協定을 맺고 이를 紀念하는 宴會를 열었다. 민영목과 다케조에신이치로등 兩國代表는 저마다 傳統服飾을 입고 西洋式 食卓에 마주 앉았다. 그림윗줄 왼쪽의 西洋人은 이 協定을 仲裁한 뭘렌도르프 다. 이그림은 朝鮮이 1876 년 開港한 이래 立式 床차림을 빠르게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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