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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檀園金弘道時代를 그리다.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金弘道 美術

檀園 金弘道 時代 그리다.

 

세월을 품은 매화

(老梅圖)

 

金弘道가 예순살 되던해 겨울에 그린作品으로 그의 藝術世界가 무르익은 老年期의 技倆을 잘보여준다. 오랜歲月을 견뎌온 梅花 등걸에서 새순이 돋아나 꽃망울을 터트리는 瞬間을 捕捉했다. 거침없는 붓질로 힘차게 梅花 등걸의 形態를 잡고 짙은 먹이 번지는 效果를 活用해 歲月 을 견딘 나무의 질감을 表現했다.  무심한듯 그려넣은 꽃망울과 部分的으로  더해진 노란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은은한 梅花香氣를 느끼게 한다,  甲子年 (1804) 겨울 丹邱( 金弘道의 號)

 

총석정

(叢石亭)

 

金弘道가 51세 되던 해에 그린 乙卯年 畵帖의 한 그림이다. 本來 여덟 面이었던  이 畵帖은 現在 叢石亭을 비롯해 海巖豪鷲, 松下幼鹿, 세면만 傳해온다. 關東八景의 하나인 통천의 叢石亭을 描寫한 이 作品은 먹의 농담을 調節하여 안개에 싸인 叢石亭 周邊 돌기둥을 表現 하였다 바위에 부딪치는 波濤에 놀라 날아오르는 두 마리 새가 畵面에 시원한 氣運을 더한다.

 

하지장도

(賀知章圖)

 

唐나라 詩人  賀知章이 술에 취해 나귀 위에서 졸고있다. 賀知章은 世上 第一에 얽매이지 않고 風流를 즐겨 詩人 杜甫가 꼽은 술취한 여덟 神仙중 첫번째 人物이다. 金弘道는 물기 없는 붓질로 人物을 表現 하고 畵面 위쪽에 杜甫의 詩中  賀知章 部分을 行草書로 썼다.

 

나그네가마주친세상

(行旅風俗圖)

 

나그네가 遊覽하며 마주친 여덟가지 場面을 그렸다.  거리의 判決, 길가 대장간, 나루터, 魚物장수, 놀란 나그네, 打作, 길 위의 風景, 훔쳐보기로 構成 되었다.  金弘道는 人物의 表情과 옷차림은 물론 말과 나귀의 微細한 身體的 特徵까지 區分될 程度로 纖細하게 表現 하였다.  각 폭에는 스승 姜世晃이 적은 鑑賞評이 있는데 제 1폭에는 술에 취한채 判決을 내리는 郡守의 모습을 걱정하고, 제 5폭 에는 물새와 나귀, 사람이 連續的으로 놀라는 場面을  神品의 境地라 極讚 하였다.

 

발래터

(漂母)

 

냇가에서 빨래하는 女人들의 日常을 捕捉한 作品이다. 바위뒤에 숨어 부채로 얼굴을 슬며시 가린채 女人들을 훔쳐보는 선비의 모습이 興味롭다. 이 처럼 男女사이의 은밀한 視線을 다룬 設定은 金弘道의 다른 風俗畵에서는 좀처럼 찿아보기 힘든 異例的인 모습이다. 

 

나 비

(蝶圖)

 

金弘道는 山水畵와 人物畵뿐만 아니라. 動, 植物을 로 한 그림 에서도 뛰어난 技倆을 선보였다. . 부채 위에 그려진 이 作品은 오른쪽 아래에 흰 찔레꽃을 配置하고, 왼쪽 위에 나비 세 마리를 그린뒤 그사이에 鑑賞評을 적은 構圖이다. 對象을 精密하게 觀察하여 表現한 寫實的인 筆致가 돋보이는 이 作品은 纖細한 봇질로 호랑나비, 왕오색나비, 작은멋쟁이나비를 表現하여 금방이라도 畵面 밖으로 날아가듯 生生하다. 스승 姜世晃은 나비의 가루가 손에 묻을 듯하다며 金弘道의 表現力을 높이 評價 했다.

 

길 위에서 마주치다

(路上過顔)

 

어린 두 아들과 旅程에 오른 부부곁 으로 나귀를 탄 선비가 스쳐 지나간다. 부채로 슬며시 얼굴을 가린채 장옷을 쓴 夫人을 넌지시 훔쳐보는 선비의 視線이 興味롭다. 단란한 家族과 모습과 이를 向한 他人의 好奇心이 交叉하는 瞬間을 잘 捕捉했다.

 

윳놀이

 

땔감을 구하러 나온 아이들이 길가에 모여앉아 윳놀이를 한다. 땅바닥에 그린 윳판 위로 밤윳 네개가 흩어져 있는것으로 보아 방금 누군가 윳을 던진 상황임을 알수있다. 높게 쌓은 땔나무 지게를 곁에 두고 잠시 놀이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무술菊秋下澣 金弘道

(戊戌年 九月下衛金弘道)

 

지금 士陵(金弘道)의 이 그림을 感想하니, 筆勢가 秀麗하면서 高尙하고 配置가 適切하여 人物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元章이 絶壁에 글씨쓰고 佰詩(李公麟)가 그림을 그리고 子瞻(蘇軾)이 글씨 쓰는 모습에서는 그 참된 精神을 터득하여 그 人物과 符合하지 않음이 없다.  이는 必是 精神으로 깨우치거나 하늘이 부여 해준 能力 이어서 구십주의 纖弱함과 比較하면 그보나 나을뿐 아니라 장차 곧장 이백시의 原本과 優劣을 다룰만 하다.  우리나라 지금時代에 이러한 神筆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그림은 原本보다 못하지는 않으나 나의 筆法이 졸렬하여 미원장에 비할바가 못되는것이 부끄럽다. 그저 훌륭한 그림을 더럽히게 되었으니 어찌 感想하는  사람의 非難을 免할수 있겠는가.    戊戌年 12월에 豹菴 (姜世晃)이 쓰다.

 

연광정에서 열린잔치

(練光亭宴會圖)

 

大同江街 練光亭에서 벌린 잔치를 그렸다. 練光亭은 鑑査가 赴任할때 가장먼저 들렀던 곳이다. 새로 赴任한 鑑査는 누정안에서 妓生의 춤과 獅子춤을 즐기고 있다. 누정 아래에는 머리를 조아린 衙前들과 구경꾼들을 配置했으며 練光亭 周邊民家와 一般百姓들의 日常도 함께 담았다. 술에 취해 바닥에 앉아 있거나 三三五五 모여 이야기 나누는 모습등 거리의 多樣한 風俗을 生生하게 表現 했다.

 

자화상

(自畵像)

 

朝鮮後期 代表的인 知識人 이자 藝術家인 姜世晃이 일흔살에 직접 그린 自身의 모습이다.

 

姜世晃

自畵像 自讚詩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수염과 눈썹이 햐얗구나

烏紗帽를 쓰고 野服을 걸쳤으니

마음은 산림에 있으면서 조정에 이름이 올랐음을 알겠다.

가슴에는 萬卷의 冊을 간직하였고

筆力은 五岳을 흔드니

世上사람이야 어찌알리, 나혼자 즐기노라

老人의 나이 일흔이요, 號는 노죽이라

초산을 스스로 그리고, 화찬도 손수 쓰네

때는 壬寅年(1782) 이다.

 

꽃과 새

(花鳥圖)

 

그림 위쪽 바위에 뿌리를 둔 나무가 아래를 向해 자라고 있다. 이 나무에서는 木蓮, 梅花등  現實에서 함께 피는것이 不可能한 꽃들이 뒤섞여 피어 있다. 곳곳에는 金鷄와 鸚鵡, 참새를 비롯한 여러마리의 새가 앉아 있어 상서로운 雰圍氣를 감돌게 한다. 景福宮 交泰殿에 粧飾했던 이 作品은 오른쪽에 展示된(神仙世界의 복숭아와 원숭이) 그림과 한 雙으로 附着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신비로운 사자등의 놀이

(獅子遊戱圖)

 

하늘에서 내려오는 두마리의 獅子와 바닥에서 공을 갖고 노는 새끼 獅子다섯 마리를 그렸다. 붉은 주먹코와 녹색 갈기를 지니고 어깨에서 火焰이 뻗어 나오는 獅子는 想像의 動物이다.  푸른색 물감을 넓게 흩뿌린 技法이나 金箔과 銀箔을 붙인 구름 表現에서 日本 裝飾畵의 影響이 보인다.  景福宮 交泰殿 大廳 上部에 붙어있던 그림이라는 記錄이 傳한다. 

 

신건세계의 복숭아와 원숭이

 

畵面 오른쪽 瀑布가 쏟아지는 바위를 背景으로 소나무 두 구루가 구불거리며 얽혀 있다. 왼쪽 앞으로 뻗어 나온 가지마다 神仙世界의 복숭아인 반도가 탐스럽게 열렸다. 三千年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이 복숭아를  먹으면 늙지 않고 오래 살수 있다고 여겨졌는데 아홉마리 원숭이들은  이 복숭아를 따기위해 모인 것으로 보인다. 1888 년 前後製作된 이 作品은 왼쪽에 展示된 "꽃과새"와 한쌍으로  景福宮 交泰殿 附着 되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사녀도

(仕女圖)

 

머리에 꽃을 꽃은 女人이 먼곳을 凝視하고 있다. 망설임 없이 단숨에 그 은선으로 形態를 잡고 그위에 엷은 靑色과 褐色을 더했다.  얼굴은 纖細한 붓질로 耳目口鼻를 表現 했으며, 특히 뺨에 붉은 紅潮가 감돈다.  애써 表情을 감춘듯 神祕로운 女人의 얼굴은 金弘道의 神仙 그림에서도 자주 볼수있는 모습이다.

辛丑年 4월 士能이 연파관 主人을 위해 그리다.

辛丑年(1781)士能爲煙波觀主人作.

 

피리부는어린신선

(仙童吹笛圖)

 

머리를 양 갈래로 묶어 올린 어린 神仙이 피리를 불고 있다. 등에 맨 붉은 호리병과 바구니에 가득담긴 不老草와 솔잎은 그가 방금 깊은산에서 내려왔음을 보여준다. 어딘가를 멍하니 凝視하는 눈빛과 自然스럽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에서 神仙 특유의 自由롭고 神祕로운 雰圍氣를 느낄수 있다.  風俗畵뿐만 아니라 多樣한 素材에 能했던 金弘道는 神仙그림 에서도 獨步的인 實力을 發揮했다.

 

제갈량

(諸葛亮)

 

中國 三國時代 蜀漢의 丞相 諸葛亮(181 ~ 234)을 그렸다. 머리에 쓴 綸巾과 몸에 걸친 鶴氅衣, 손에든 깃털 부채는 諸葛亮을  象徵하는 典型的인 차림세다. 肖像畵 가까운 纖細한 얼굴 描寫 흐트러짐 없는 筆線과 彩色이 돋보이는 이 作品은 宮中畵院畵家가 그린 것으로 推定된다. 畵面 위에는 南宋의 性理學者 張栻 (1133 ~ 1180)이 지은 諸葛武侯 畵像讚이 적혀 있다.

 

제갈량

(諸葛亮)

 

中國 三國時代  유비 (161 ~ 234)를 도와 蜀漢을 세우는데 힘썼던 諸葛亮 (181 ~ 234)을 그렸다. 諸葛亮은 바위에 걸터 앉아 있고 그옆에는 그를 象徵하는 깃털부채를 든 아이가 서 있다. 위쪽에는 肅宗(재위 1674 ~ 1720)이 諸葛亮에 대한 尊敬을 담아 지은 詩가 적혀 있는데 肅宗 은 함께 世上을 다스려 보지 못함이 안타깝다고 告白하며 諸葛亮같은 忠臣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表現하였다. 

 

이순신이쓴편지

(李舜臣筆簡札)

 

李舜臣將軍군이 露梁海戰을  4 個月 가량 앞둔 1598년 7월 8일 物品支援을 擔當하던 韓孝純(1543 ~ 1621)에게 感謝의 뜻을 담아보낸 것으로 推定되는 親筆 便紙이다.  丁酉再亂 勃發以後 明은 本格的으로 水軍을 派遣하였고 朝鮮 水軍 은 이들과 聯合해 反擊에 나서게 된다. 便紙 李舜臣  水軍의 접대및 聯合作戰을 構想하고 있었던 狀況을 담고있다. 便紙에 受信人이 明確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의 접대와 湖南 各邑의 物品 支援을 擔當했던 총사관 韓孝純에게 보낸 便紙일 可能性이 크다.  水軍과의 염聯合을 위해 李舜臣이 綿密하게 準備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戰爭中의 緊迫한 狀況에서도 行草書로 차분하게 써 내려간 그의 글씨에서 細心하면서도 예리했던 그의 性品이 드러나는 듯 하다.

 

마패

(馬牌)

出張가는 官員에게 준 驛馬 使用 許可證

 

官員이 出張中 驛站에서 말을 갈아탈때 提示하는 表式이다. 尙瑞院에서 發給하여 高麗時代에는 나무號牌였으나 破損이 심해 世宗때 부터 金屬 으로 만들기 始作했다. 앞면에는 字號와 製作年月 尙瑞院印을 새겼고 뒷면에는 官員의 等級에 따라 利用할수 있는 말의 數를 그림으로 標示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