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聖雄 李舜臣
寢不能寐 憂國之念 未嘗小弛
자려해도 잠들 수 없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난중일기 1593 년 7 월 1 일

죽기를 覺悟하고 싸우면 살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必死則生 必生則死


선유호상교서
(宣諭犒賞敎書)
1596 년 宣祖가 兵曹佐郞을 보내 李舜臣과 軍事들에게 飮食을 베풀며 賞을주고 잔치를 베풀며 勞苦를 위로하는 文書이다. 이 敎書에서 宣祖는 邊方을 든든히하고 나라안을 便安하게 한것은 李舜臣과 水軍이 勇猛하게 지켰기 때문이라고 칭찬하면서 그에 걸맞은 處遇를 해주지 못하고 있는 狀況에 부끄러움을 표했다. 이 敎書가 내려질 무렵 明과 日本이 强化 協商이 決裂되었다. 戰爭의 休止기가 끝나가던 時點에서 李舜臣과 水軍의 役割이 다시한번 注目받을 때였다.


무과급제교시
(武科及第敎旨)
1576 년 (宣祖 9) 3 월에 보인 李舜臣이 武科 丙科 4인 으로 及第했음을 證明하는 文書서 이다. 保人은 朝鮮時代 軍役의 한 種類로 軍隊간 사람들의 費用과 그 家族들의 生活을 돌보는 사람을 말한다. 이를 通해 科擧及第 당시에 李舜臣이 特別한 職業없이 武科 修鍊中이었음을 알수 있다. 丙科 4 人은 李舜臣의 合格成績 이다. 이때의 武科에서는 甲科 3명 乙科 5명 丙科 21 명중에 12 번째 였음을 알수있다.


좌의정증직교지
(左議政贈職敎旨)
1604 년(宣祖 37) 李舜臣을 宣武一等功臣에 錄勳할때 左議政으로 追贈 하면서 내린 敎旨이다. 李舜臣은 戰死한 直後인 1598 년 (宣祖 31) 12 월 右議政에 追贈 되었는데 이때 다시 左議政으로 贈職 되었고 正1品 功臣에 내려지는 府院君 稱號도 함께받았다. 府院君 봉호는 덕수 이씨의 관할 京畿道 개풍군 덕수리를 따라 덕풍으로 定했다.




우의정증직교지
(右議政贈職敎旨)
1793 년(正祖 17) 7월에 李舜臣을 領議政에 追贈하며 내린 敎旨 이다. 正祖는 忠武公처럼 忠誠心이 뛰어나고 혁혁한 武功을 세웠음에도 그 "死後에 아직 領議政으로 追贈하지 못한것은 실로 잘못된일" 아라며 李舜臣에게 領議政 벼슬을 내렸다. 李舜臣에 대한 追慕事業은 正祖대에 絶頂을 이루었다.


기복수직교서
(起複授職敎旨)
칠천량 海戰後 李舜臣을 다시 三道水軍統制使에 任命하며 내린 文書이다. 起復이란 起復出仕의 준말로 나라에 必要에 의하여 父母喪을 당하여 休職中인 官僚에게 喪服을 벗고 벼슬자리에 나오게 하는일을 뜻한다. 당시 李舜臣은 母親喪중 이었다. 宣祖 이 敎書에서 壬辰年 부터 큰 功을 세운 李舜臣을 罷職하고 白衣從軍하게 한것은 自身의 잘못임을 認定하고 다시 忠淸, 全羅, 慶尙 三道水軍統制使로 任命 하면서 또 한번 나라를 구해 주기를 當付했다. 國王이 臣下에게 自身의 잘못을 認定하는 內容의 敎書는 매우 드문데 그만큼 당시의 戰況이 다급했음을 짐작할수 있다.


사부유서
(賜符誘書)
李舜臣을 全羅左水使로 任命 하면서 密符 와 함께 내린 文書


도독인
(都督印)
三道水軍統制使 八賜品 李舜臣의 戰功이 明나라에 까지 알려져 明나라 조정으로 부터 받았다고 傳해지는 여덟가지 儀仗物중 하나이다. 都督印, 令牌, 귀도, 참도, 곡나팔, 홍소령기, 남소령기로 構成 되어 있다. 朝鮮後期 내내 三道水軍統制使의 象徵物이자 李舜臣을 기리는 記念物로 認識되었다.


장검에 새겨진 명문
長劍名門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석자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들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투구
(簷胄)
차양이 있는 簷胄로 世宗實錄 兵器의 첨주와 매우 類似하다. 簷胄 안쪽에 東萊鎭上 이라는 名門이 새겨져 있다.


복원한찰갑
(復元札甲)
釜山 수안동에서 出土된 鐵甲片 이다. 2005 년 부터 朝鮮時代 東來邑城 垓字發掘이 始作되어 鐵甲上衣 1 벌과 목을 감싸는 脛甲 札甲片, 첨주 2편 등이 出土 되었다. 出土된 札甲의 模樣과 札甲片의 模樣과 札甲片을 活用하여 鐵로 미늘을 만들고 사슴 가죽끈으로 마늘을 連結하여 札甲을 復元 하였다. 出土된 札甲 1편은 미늘이 붙어서 解體가 不可能 하지만 原形의 모습은 어느程度 維持하고 있었다. 發掘된 갑옷은 앞트임이 보이지 않아 옆트임을 주어 만들었다.


류성룡투구
(柳成龍 簷胄)
柳成龍 이 입었던 갑옷의 잔편과 簷胄이다. 돼지가죽 미늘에 사슴가죽끈을 엮어 만들었다. 가죽을 直四角形으로 자르고 가장자리를 둥굴린후 바깥쪽에서 흑칠을 하였다. 簷胄는 챙이 붙은 원뿔 模樣의 모자 테두리에 쇠비늘을 엮어 만든 볼가리개와 뒷가리개로 構成되어 있다. 李舜臣도 이와같은 形態의 갑옷과 簷胄를 입었을 可能性이 있다. 柳成龍은 壬辰倭亂때 領議政과 도체찰사로서 內政과 軍事業務를 總括하였다. 특히 壬辰倭亂이 일어나기 1년전 1591 년 李舜臣을 조정에 推薦하여 全羅左水使에 任命되도록 한것이 그의 功이었다.


부산진순절도
(釜山鎭旬節圖)
壬辰倭亂의 첫 戰鬪인 釜山鎭 戰鬪 場面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의 왼쪽에는 釜山 앞바다에 碇泊한 日本軍隊 유기나카가 이끄는 日本軍 이 上陸하여 釜山鎭을 向해 進擊하는 場面을 그렸고 오른쪽에는 城壁 위에서 갑옷 차림의 釜山鎭 僉節制使 정발을 中心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對抗하는 朝鮮軍의 모습을 表現했다. 빽빽하게 그린 日本軍의 배, 鳥銃과 칼로 武裝한 日本軍의 壓倒的인 솟자가 당시 戰力의 隔差가 심했음을 實感하게 한다. 釜山鎭은 慶尙道 海岸에 設置된 水軍僉節制使 4개 陣營 가운데 제1의 海上 關門이었다. 1592 년(宣祖 25) 4월 14일 벌어진 이 戰鬪에서 정발 將軍과 釜山鎭의 軍事와 百姓들이 殉節 하였다. 1709 년 最初로 그려진 <釜山鎭旬節圖>는 現在 傳하지 않는다. 이 그림은 1760 년( 英祖 36) 東來府使 홍명한이 畵家 변박에게 당시의 原本을 模寫하게 한 그림이다. 이러한 旬節圖는 歷代대 東來府使들이 壬辰倭亂을 記憶하고 日本에 대한 警戒心을 깨우치며 旬節者들을 기리기 위해 製作 되었다.


거북선
(거북船)
거북선의 起源을 倭寇의 侵害가 가장 심했던 高麗 末期로 보는 見解도 있다. 이와 같이 거북선은 高麗末, 또는 朝鮮 初期에 이미製造조·使用되었으며, 1592 年(宣祖 25) 壬辰倭亂 당시에는 李舜臣에 의하여 創製된 鐵甲船으로서의 거북선이 實用화되었다. 鐵甲船으로서 世界的 先驅인 李舜臣의 거북선은 壬辰倭亂 初般의 잇따른 海戰에서 艦隊의 先鋒이 되어 突擊船의 威力을 남김없이 發揮하였다. 그러나 李舜臣의 投獄과 더불어, 또는 그의 戰歿 以後에는 거북선의 實用이 底下되고 만다. 壬辰倭亂 後 거북선은 時代에 따라 當初의 制度를 喪失하고 變貌하면서 朝鮮 末期까지 각 水營에 存在 하였다. 따라서 가장 큰 觀心의 對象이 된 거북선은 壬辰倭亂 당시 李舜臣에 의하여 創作, 구사된 거북선이다.


戰方急愼勿言我死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조선시대작전신호
朝鮮時代作戰信號
朝鮮時代 戰爭은 多樣한 信號로 展開 되었다. 信號는 크게 聽覺을 利用한것과 視角을 利用한 것으로 區分된다. 聽覺 信號에는 포, 북, 징, 꽹과리 등이 利用 되었고 視角 信號에는 煙氣와 불을 利用한 봉수와 戰爭터에서 命令을 내리고 받는 깃발등이 利用 되었다.


조선시대작전신호
朝鮮時代作戰信號
李舜臣 將軍은 周邊 狀況에 따라 制約이 있는 聽覺 信號와 多樣한 議事 表現이 어려운 視角 信號와 短點을 補完한 作戰信號를 使用 하였다. 朝鮮 水軍들에게 익숙한 陰陽五行論에 바탕을 두어 靑色은 東쪽 赤色은 南쪽 白色은 西쪽 黑色은 北쪽 黃色은 가운데를 意味하는 깃발을 使用했다. 進法 뿐만이 아니라 作戰 信號에서도 그의 뛰어난 創意力이 發揮 되었음을 알수 있다.



장검
長劍
李舜臣 將軍이 閑山島에 있을때 製作한 것으로 恒常 壁에 걸어두고 보면서 精神을 가다듬던 칼



이순신
(李舜臣)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내며 壬辰倭亂으로 나라가 存亡의 危機에 處했을 때 바다를 制覇함으로써 戰亂의 歷史에 決定的인 傳奇를 이룩한 名將이며, 謀陷과 迫害의 온갖 逆境 속에서 일관된 그의 憂國知性과 高潔廉直한 人格은 온 겨레가 推仰하는 의범(儀範)이 되어 우리 民族의 사표(師表)가 되고 있다. 本官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歷 史 旅 行 2 > 中央博物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國立中央博物館/Islam宗敎美術 (0) | 2025.12.15 |
|---|---|
| 國立中央博物館/두발로世界를制覇하다. (0) | 2025.12.15 |
| 國立中央博物/빛의여정 (0) | 2025.12.12 |
| 國立中央博物館/舊石.新石器.鐵器.靑銅器 (0) | 2025.06.27 |
| 國立中央博物館/日本彩色磁器 (2) | 2025.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