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 史 旅 行 3/文化&樹木園

德壽宮國立現代美術館

德壽宮

國立現代美術館

 

國立現代美術館 德壽宮은 서울의  5대 古宮중 韓國 近代史 歷史를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德壽宮의 石造殿 別館에 자리 잡고 있읍니다.  1938 년 日本人 建築家 나카무라 요시헤이의 設計로 竣工된 이 建築物은 처음에는  李王家 美術館으로 使用되기 위해 建立 되었읍니다.  解放後 多樣한 用途로 變更 使用 되다가 1998 년 부터 國立現代美術館 으로 活用 되고 있읍니다.

 

 

 

문신

宇宙하여

 

文信은 1922 년 日本 규슈(九州)의 炭鑛地帶에서 韓國人 移住勞動者와 日本人 女性 사이에서 태어났다.  運命이던 偶然이던 그의 異邦人으로서의 삶은 이렇게 始作 되었다. 다섯살에 아버지의 故鄕 馬山 땅을 밟은 그는 祖母 슬하에서 幼年期를 보내고 열여섯의 나이에 繪畵를 工夫 하기위해 다시  日本으로 떠났다. 解放과 함께 歸國한 그는 馬山과 서울을 오가며 畵家로서 活潑하게 活動 하던중 마흔 무렵 파리로 向 했고 프랑스에 둥지를 튼지 20년만에 故鄕으로 돌아왔다.  이때 그는 畵家가 아닌 彫刻家 文信으로 名聲을 떨치고 있었다.

 

 

자화상

 

도쿄 日本美術學校 에서 西洋畵를 工夫하던 時節 그린 自畵像 이다.

 

 

1. 파노라마 으로

 

1938 년 密航하여 日本으로 건너간 文信은 이듬해 日本 美術學校 洋畵科에 入學 했다.  그는 日本 各地에서 모인 靑年 藝術家들이 各者의 多樣한 正體性을 維持하며 交流하고 作業 했던 도쿄 이케부쿠로. 시나마치. 藝術人村에 居住 하면서 畵家로서 갖추어야할 基本的인 素養을 다졌다.  光復과 함께 歸國한 文信은  馬山 추산동 언덕에 터를 잡고 釜山, 大邱, 서울 등을 오가며 活潑하게 作品을  發表 했다.  畵面의 技巧를 위한 浪漫 보다 "現實 生活의 體驗"을 重視한 그는 溫和한 氣候에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馬山의 風景과 平凡한 周邊 사람들의  素朴하고 거친 삶, 그리고 鄕土性 짙은 靜物을 畵幅에 담았다.

 

 

군계

群 鷄

 

母子

 

 

日帝强占期 以後 많은 畵家들이 소를 主로 民族的, 鄕土的, 素材로서 다루었는데 文信은  여기서 脫皮하여 철저히 造型的인 觀點에서 對象에 接近 하고 있다. 褐色線은 어미소와 송아지의  密着한  物體를 가로지르며 그 骨格을 드러내는 輪郭線이 되기도하고 透視된 어미소의 갈비뼈가 되기도 한다.  對象의 單純化 또는 平面化, 복수의 時節, 한정된 色滯 通해서 立體主義에 대한 作家의 關心을 읽어 낼수 있다. 實際로 文信은 日本 留學 以前부터 Picasso, Pablo(피카소)를 즐겨 模寫 했다고 回顧한바 있다.

 

 

닭 장

鷄場

 

1948년 셔울에서의 첫 個人展 以後 文信은 現實에서 유리된 畵面의 技巧를 위한 浪漫 이 아닌 現實 生活의 體驗에서 우러나온 作品을 製作 하겠다고 決心했다. 그림의 제재이든 技法이든 觀念이 아닌 體驗을 重視한 그는 당시 周邊 人物들의  素朴한 삶을  率直하게 그렸다. , 畵面을 꽉채운 構成과 빼곡히 닭장에 같힌 닭의 모습이 답답한 現實 을 反映하는듯 하다. 깊게 눌러쓴 밀짚모자와 우산으로 겨우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가린채 닭장앞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 男子의 모습은 戰爭通에 無氣力하던 庶民의 삶과 다름이 없다.  그림에도  文信 特有의 南向的인 情熱이 느껴지는 따뜻한 색체가 돋보인다. 

 

 

고기잡이

 

日本 留學에서 돌아와 馬山에 定着한 文信은 山과 바다로 둘러싸인 馬山의 風景을 즐겨 그렸다.  김용준은 文信의 繪畵가  내나라의 現實과  自然에서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現象을 學習的인 觀照를 通해 具現 한다고 보았다.  畵幅은 平穩하고  아름답기만한 바다가  이나라 生計와 목숨을건  어려움의 거칠고 활기찬 삶으로 記錄하다. 

 

 

무제

 

1961 년 初  渡彿한 文信은 本格的으로 抽象作業을 始作 했다. 당시 파리 美術界는 復活한  20세기  初 modernism(모더니즘) 美術과 엥포르를, 그리고 새로이 登場한 누보 레알리즘, 新構想들이 共存하고 있었다.  시멘트가 두껍게 칠해진 터널에 숱가락 노끈등 日常의 오브제가 附着된 이 作品은 그가 이러한 革新 傾向에 關心을 가지면서 形式 材料 技法에 拘礙받지 않고 多樣한  造型的인 實驗을 試圖했음을 보여준다 이 作品은 Spain(스페인) 出身의 어느 女性畵家를 model(모델)로 製作한 肖像畵로 알려져있다. 

 

 

알타미라의 인상

弘益大學校博物館 所藏

 

 

 

2. 形態 生命리듬

 

1960 년대 後半부터 文信은 最小한의 造形 單位인 球 또는 半球를 多樣한 方式으로 結合. 構築한 彫刻을 製作하기 始作 했다. 文信은 彫刻을 製作 하기전에 무수히 많은 드로잉을 그렸다. 그는 圓과 線을 多樣한 方式으로 連結하는  過程 에서 만물이 圓과 線 으로 이루어진다는 事實을 새삼 깨달았고  反復을 通해 微妙한 差異를 지닌 形態가 創造 되는것에 魅了되었다. 

 

 

 

3. 생각하는 손 장인精神

 

文信은 하나의 作品을 始作하기 前부터 긴 準備 期間을 가졌는데 材料와 道具를 잡는 瞬間 計劃에 依存하지 않고 손의 物理的인 動作에 철저히 몰입했다. 反復을 通해 熟鍊된 技術과 觸覺的인 直感을 通해 손의 感覺이 向上 되면 動作은 卽興的으로 리듬을 타게되고 作家는 더 以上 技術에 陷沒 되지 않고 想像力을 媒介로 直觀的인 跳躍에 다다랐다.

 

 

 

 

4. 都市彫刻

 

韓國은 Asian game과 Olympic을 앞두고 都市 美觀과 環境에 대한 關心이 高調 되어 1950 ~ 60 년대 한창 製作 되던 啓蒙的이고 權威的인 記念銅像과 다른 種類의 野外 造形物이 活潑 하게 造成 되기 始作 했다.  作家는 永久 歸國後 愚公移山의 熱情으로 14 년간 直接 山을 깍고 돌을 쌓아 擁壁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들었으며 建物을 設計하고 施工했다.

 

 

 

'歷 史 旅 行 3 > 文化&樹木園' 카테고리의 다른 글

百濟歷史文化館  (0) 2013.04.05
아침古謠樹木園  (0) 2011.12.23
碧草池文化樹木園  (0) 2011.07.23
中南美文化院  (0) 2010.09.09
茶山文化館  (0) 2010.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