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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 族/家 族 (行事)

仲秋節(己亥年)

(仲秋節)

 

한가위 라고도 부르는 秋夕은 收穫의 季節을 맞이하여 豊年을 祝賀하고 感思하는 날 입니다. 햇 곡식으로 飮食을 만들고 송편을 빛어 어머니 산소에 省墓하였읍니다. 家族들이 모여 祖上의 恩惠로 豊盛한 가을을 맞이하는것 같아 感思를 드립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는 말과같이 귀 家庭에 모든 家族들이 즐겁고 豊要한 가을이었으면 합니다.

 

 

한가위가 되세요

農者天下大本

 

 

密城朴氏世系圖

密城朴氏忠憲公派直長公

宗中聃齡公下世葬墓域

 

 

宗中聃齡公下世葬墓域

 

密城朴氏忠憲公派大宗中永墓堂

 

사랑하는 어머님은 우리 곁을 떠났어도
그리움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엔 幸福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魂과 生命은 그리움입니다.

같이 있을 때보다 멀리 있거나 헤어져 있을 때
마음 깊이 느끼는 感情이 그리움입니다. 특히 나무마다
丹楓이 들고 落葉 지는 가을이면 헤어진 사람이 더욱
그립습니다. 누구보다도 死別한 父母

가 있으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父母님은 내 곁을 떠났어도
그리움은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馬場湖水)

 

이곳 地域名은 朝鮮時代  燕山君10年에  軍馬들의 訓練場으로 利用되던 馬場이라는 名稱에서 由來되었으며 인근에는 燕山君 사냥터를 표시하는 燕山君 禁標碑가 있다. 

 

 

馬場湖水 둘레길

  

금표비

(禁標碑)

 

금표내범입자논기훼제서율처참

禁標內犯入者論棄毁制書律處斬

 

1504년 燕山君은 傳敎를 내려 "諺文을 쓰는 자는 기훼제서율로(諺文行用者 以棄毁制書律)알고도 告하지 않는 자는 제서유위율로 論斷하고(知而不告者 以制書有違論斷)朝士의 집에 所長하고 있는 諺文(한글)으로 口訣을 단 冊은 모두 불사르되(朝士家所藏諺文口訣書冊皆焚之)漢字를 諺文으로 飜譯한 冊은 禁止하지 말라(如飜譯漢語諺文之類勿禁)" 고 命令하였습니다.

 

(權慄將軍墓)

 

이곳은 忠壯公 朝鮮中期의 文臣이며 名將인 權慄將軍의 墓所 이다. 將軍의號는 晩翠堂 本貫은 安東이며 朝鮮中宗 32年 領議政 權轍의 아들로 出生 하였다. 軍墓은 宣祖 15年 文科에 及第하여 禮曹正郞,戶曹正郞등을 거쳐 55세때는 義州 牧使로 赴任하여 北方의 女眞族을 防禦 하였다. 壬辰倭亂 중에는 全羅左道 都節制使로 任命되어 1 千名의 軍事를 募集하여 忠淸道 錦山의 이치(베티고개)에서 全州로 進擊하는 1 萬여 倭軍을 大破하고 그 功勞로 全羅道 巡察使로 昇進 하였다.  이어 軍事 萬名을 引率하여 水源 獨山城에 陣을 치고 倭軍이 西쪽으로 進出하는것을 막았다. 이듬해 1593 年 2 月에는 서울을 回復 하려고 幸州山城으로 陣을 옮겨 軍官民이 힘을 합하여 2,800 名의 軍事로 3萬의 倭軍을 물리치는 大捷을 올렸다. 이것이 壬辰倭亂 3 대 大捷(晉州,閑山島,幸州)중 하나인 幸州大捷이다. 大捷後 將軍은 全軍을 指揮하는 都元帥가 되었으며 壬辰倭亂이 끝나자 官職에서 물러났으며 그해 世上을 떠났다. 이에 나라에서는 그의 功勞를 기리기 위해 領議政으로 官職을 높혔고 宣祖 37年 (1604)에는 宣武功臣 1등에 永嘉府院君으로 奉하고 忠壯의 諡號를 내렸다. 現在 墓域에는 將軍의 墓를 中心으로 左,右에 前婦人 昌寧曺氏와  後 婦人竹山朴氏가 安葬되었으며 墓앞에는 墓碑,象石,香爐石,童子石 1雙이 있고 左右에  望柱石괴 文人石 1 雙이 있다. 墓域 入口에 있는  神道碑는 旣存의 神道碑 碑文이 磨耗되어 哲宗 12년 에 將軍의 後孫들이 새로 세운 것이다. (案內文)

 

 

秋夕日이라 門을 開放하지않아 담장밖에서 본 墓

 

모든家庭이 康建하기를 祈禱합니다

다음에 만날때까지 建康하고 幸福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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