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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地圖禮讚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地讚)

 

國土 에대한 自負心을 힘주어 말하는 地圖

 

대동여지전도

(大東與地全圖)

 

收錄한 內容과 表現方式등을 볼때 (大東與地圖)를  만든 金正浩의 作品으로 보입니다. 한눈에 國土 全體를 빠르게 把握하기 위해 만든 地圖 입니다. 白頭라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山 頂上部를 희게 表現한 白頭山이 獨特합니다.  오늘날 天池로 불리는 大地와 定界碑도 標示해 놓았읍니다. 山줄기와 江줄기,각고을 地名 등은 細密한 여러 記號로 나타내어 알아보기 便利 합니다. 지도 오른쪽에 실은 글귀에는 나라의 이름인 朝鮮의 由來를 먼저 說明하고 이어서 白頭山의 威容과 그 基準을 받은 天惠의 땅, 漢陽이 永遠토록 繁榮할 것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읍니다.

 

천하대총일람지도

(天下大摠一覽之圖)

 

中國과 朝鮮, 그리고 琉球등 東 Asia의 主要地域을 中心으로 그린 地圖 입니다. 이 地圖는 明代의 地圖에 韓半島와 琉球를 追加하여 그린것 입니다. 朝鮮을 實際보다 크게 表現했으며, 日本을 제외하고 Tsushima만 收錄록해 놓았읍니다. 琉球를 極端的으로 誇張하여 크게 그린점이 눈에 뜁니다. 朝鮮에서 바라보는 觀點에서 琉球를 表現하여 南北의 方向이 바뀐점도 興味 롭습니다.

 

일본여도

(日本與圖)

 

 1710年代 文人畵家로 잘 알려진 恭齋 尹斗緖가 그린 日本 地圖 입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天象列次分野之圖)

 

天象列次分野之圖는 하늘의 形體를 본떠 黃道 부근을 12 地域으로 나눈 12차次와 이에 對應하는 地上의 地域인 分野에 맞추어 별자리의 位置와 크기를 寫實的으로 그린 天文圖이다  앞면은 太祖 4年 (1395년)에 뒷면은 世宗 15年(1433年)에 製作되었으며 검은색 돌(鳥石)양면에 새겨져있다. 天文圖의 맨 윗부분에는 해와 달에 대한 記錄이 있고 가운데에는 1.467개의 별이 커다란 圓 안에 標示되어 있으며, 아래 部分에는 (天象列次分野之圖)라는 天文圖의  이름과 天文圖 作成의 歷史的 背景,製作者,製作年月日이 記錄 되어있다.

 

하늘을 담은지도

 

東 Asia에서는 하늘과 人間 世界의 秩序가 서로 連結되어 있다는 믿음이 있었읍니다. 이는 窮極的으로 하늘을 받드는 政治를 實現하고자 하는것이었고 具體的으로 보면 하늘의 때를 받들어 아래로 百姓을 잘다스리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朝鮮王祖를 開創한 太祖가 卽位 3年 만에 天象列次分野之圖 라는 天文圖를 돌에 새겨 만든것은 새로운 오아조가 天名을 받아 誕生햇으며 하늘의 理致에 따라 나라를 다스릴것임을  널리 보여주려는 行爲였읍니다. 

 

천하도

(天下圖)

 

朝鮮後記에 流行한 地圖冊의 첫머리에 실린 世界地圖

 

지구전후도

(地球前後圖)

 

朝鮮後期  實學者로 잘 알려진 崔漢綺가 中國  장정부의 地球도 를 木版으로 다시 製作한 것입니다.  地球前圖와 地球後圖라는 이름으로 各各 半球를 싣고 있습니다. 이 地圖를 木版에 彫刻한 사람은 바로 金正浩 입니다. 이 地圖는 西洋의 地理 知識이 中國을 거쳐 朝鮮으로 流入되는 科程을 잘보여 줍니다.

 

사해화이총도

(四海華異總圖)

 

地圖의 現在 名稱은  南贍部洲圖 입니다. 南贍部洲는 佛敎의 須彌山 世界中 에서 南쪽에 位置한 人間의 現實世界를 가리킵니다.  西洋에서 만든 世界地圖가 들어오던 時期에 傳統的인 世界觀을 基盤으로 多樣한 世界觀에 關心을 기울였던 朝鮮 知識人들의 모습을 엿볼수 있었읍니다.

 

수선전도

(首善全圖)

 

세로 83 cm, 가로 65 cm .上.中.下로 이루어진 地圖의 版木이 高麗大學敎 博物館에 所長되어있고, 이 版木에서 찍은 木版本 地圖는 國立中央圖書館 등 여러곳에 所長되어 있다. 首善이란 漢書 儒林傳에 으뜸 가는 善을 세움은 서울에서 비롯한다. 는 뜻으로 쓰인 낱말로서 서울을 指稱하는 別號로 쓰였다. 1824년에 建立된 景祐宮이 그려져 있고 彰義門밖 摠戎廳(朝鮮時代1624年에 京機地域 經費 위해 設置 軍營)이 總新營으로 表記되어 있어 1830,1840年代에 만든 地圖로 推定되고 있다.

 

전라도오십칠관        경상도육십구관

(全羅道 五十七官)                 (慶尙道六十九官)

 

황주지도

(黃州地圖)

 

黃海道 地圖帖 속에 실린 黃州 地圖 입니다. 黃海道라는 道의 名稱이 黃州의 첫 글자와 海州의 첫글자를 만든것일 만큼, 正 3 品의 牧士가 다스리는 黃州는 監營이 있는 海州와 함께 黃海道에서 가장 큰 고을 이었읍니다. 詳細히 記錄된 行政,軍事,交通 情報는 이 地圖帖의 쓰임새가 統治와 國防을 위한 것이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조계산송광사지도

(曹溪山松廣寺地圖)

 

全羅道 順天의 名刹 松廣寺를 그린 地圖로 朝鮮後期 地圖의 多樣한 쓰임새를 보여 줍니다.

 

제주도

(濟州道地圖)

 

가장 오래된 濟州道 木版本 地圖 입니다. 地圖의 위 아래에는 濟州道의 地理紙를 收錄했읍니다. 서울에서 濟州道를 바라보는 視線으로 그렸기 때문에 지도의 上段을 南쪽으로 下段을 北쪽으로 두었읍니다. 漢拏山 周邊의 오름들과 숲의 모습을 姿勢하게 描寫 했으며 分布를 詳細히 表記 한점이 特徵입니다. 

 

을릉도도형

(鬱陵島圖形)

 

1693年 漁民 仁容福이 日本에 가서 鬱陵島와 于山島가 朝鮮의 땅임을 主張하고 온 일을 개기로 1694年 부터 朝鮮朝廷은 鬱陵島에 대한 調査를 3 年마다 定期的으로 實施했읍니다. 첫 調査에 나선  三陟 영장 장한상은 鬱陵島사적 이라는 調査報告書 와 地圖를 作成해 바쳤는데 그 內容中에는 鬱陵島에서 東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아득히 섬 하나가 보인다. 는 記錄이 있어 當時에도 獨島를 認知 하였음을 알수 있읍니다.  1711년 三陟 영장 박석형이 鬱陵島 現地調査를 施行하고 作成한 이 地圖도 이러한 延長線 위에 있읍니다. 現地調査에 參與한 管理가 製作한 現存하는 가장 오래된 地圖이며 備邊司에서 保管하던 것입니다.

 

동국지도

(東國地圖)

 

13 ~ 15世期에 널리 流行한 地圖冊의 基本틀 提示한 地圖冊 입니다.

 

환유첩

(宦遊帖)

 

高宗때에 여러고을의 守令이나 判官으로 勤務한 洪岐周(1829년~1898년)가 平生거친 열네 고을의 地圖를 묶어 만든 地圖冊 입니다. 宦遊는 外官으로 地方의 여러 고을에서 벼슬살이를 하면서 遊覽하는 것을 일컽는 말입니다. 그는 退職할때까지 열네곳의 官衙에서 郡守,縣監,判官으로 勤務 했는데 自身의 在任 順序대로 각 고을의 地圖를 실어 놓았습니다.

 

金正浩의 作品으로 보입니다

 

남한지도

(南漢地圖)

 

京畿道 楊州에 자리한 南漢山城은 서울을 防禦하기 위한 重要한 要塞로 그 만큼 南漢山城 地圖도 오랫동안 많이 製作 되었읍니다. 南漢山城의 全貌를 보여주는 이 地圖에는 城郭과 甕城 城門 巖門 將臺등 主要軍事 施設이 寫實的으로 描寫되어 있읍니다. 또한 國王의 臨時 宮闕인 行宮 防禦를 擔當한 守禦廳외 練兵館 光州留守府와  官衙 建物을 비롯하여 여러寺刹을 상세히 記錄했읍니다. 東門 바깥 나가는길 周邊에 있는 酒幕도 興味롭습니다. 다만 西將臺와 西門을 그린 부분은 缺失 되었읍니다.

 

강화지도

 (江華地圖)

 

을릉도도형

(鬱陵島圖形)

 

지도

(地圖)

 

한 地面에 여러개의 고을을 함께 실어 놓은 地圖帖 입니다. 道별로 묶은 고을地圖帖의 앞머리에는 道別道를 끼워 낳어 該當圖의 全體 모습을 알수 있도록 했읍니다. 신경준의 20리 半圓 地圖로서 使用者의 便意를 配慮한 帖이 돋보입니다.

 

택리지

(擇里志)

 

士大夫가 살기에 좋은곳을 찾기위한 指針書

 

패철

(佩鐵)

 

부채의 끝에 매달아 쓰던 一種의 노리개로 扇錘라고 불렀읍니다. 소나무 와 鶴 등 十長生의 文樣을 새긴 작은나무 곽에 携帶用 羅針盤 인 佩鐵을 만들어 넣었읍니다. 羅針盤의 크기는 비록 작지만 24 防衛가 標示되어 있읍니다. 一種의 裝飾品 속에 羅針盤을 함께 넣어 만든것은 防衛의 把握이 日常生活에서 緊要한 일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청구도

(靑邱圖)

 

金正浩는 1834년 靑邱圖를 처음 世上에 내놓은 뒤로는 持續的으로 채제를 改善하기 위해 努力 했읍니다. 朝鮮 地圖學의 特性중 하나인 歷史 地圖가 結合한 경우도 있었는데 崇實大學校  韓國基督敎博物館이 所藏한 靑邱圖는 그 代表的인 事例 입니다. 여기에는 古朝鮮 時期,三漢時期,三國時期,三國時代,高麗時代의 歷史가 次例로 실려 있읍니다. 또한 中國과의 關係를 重視하여 遼東과 滿洲地域을 包含한  本朝八道盛京合圖 와 함께 색인 地圖인 本朝八道州縣圖總目를 收錄 했읍니다. 이 色人地圖를 活用하면 갓 고을의 地圖가 있는 位置를 찾을수 있읍니다, 19 世紀 全般의 朝鮮 社會에 地圖 需要層의 記號가 多樣해지고 있었으며 金正浩등 地圖 製作者들이 이를 積極的으로 受容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김정호

(金正浩)

 

古山子 金正浩 (1804 ~ 1866)는 朝鮮後期의 代表的인 地理學者 입니다. 그는 1834년에 펴낸 대축적 全國地圖인 靑邱圖를 始作으로 平生 地圖의 正確性과 使用者의 便宜를 위해 地圖를 製作햇읍니다. 韓國傳通 地圖學의 決定版인 (大東輿地圖)는 代表的인 結果物 입니다. 金定浩는 地圖와 짝을 이루는 地理誌의 硏究에도 힘을 기울여 東與圖志 與圖備志, 大東地志 등의 全國 地理誌를 編纂 했읍니다. 實學者이자 親舊였던 최한기(1803 ~ 1877)는 金正浩를 일컬어 어려서 부터 地圖와 地理誌에 깊이 뜻을 두고 오랫동안 찾고 살펴 여러方法의 長短點을 把握 한다고 平했읍니다. 또한 能熟한 그림 솜씨와 彫刻 솜씨로 일찍이 西洋의 世界地圖인 地球圖를  彫刻 했고 大東輿地圖를 木版本으로 펴낼수 있었읍니다. 金正浩가 이러한 成就를 거둘수 있었던 것은 18世期에 飛躍的으로 發展한 朝鮮 地圖學의 成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西勢東漸의 긴박한 정세속에서 民生을 便安히 하고 國防을 튼튼히 하려는 申獻(1810 ~ 1888)등의 官僚와 崔漢綺등 여러 知識人들의 共感과 支援 德分에 그는 傳統 地圖學의 巨人이 되었읍니다. 

 

  高麗館에서 ....

 

사람오양주자

(靑磁人形注子)

 

道敎의 祭禮를 主觀하는 道士처럼 보이는 人物이 머리에는 높은 寶冠을 쓰고 두 손으로 仙桃를 받쳐든 모습으로 各 部分의 特定的 모습을 잘 表現 하였다. 寶冠 뒤에 注子의 뚜껑이 位置하고 복숭아가 담긴 광주리를 出水口로 만들었다.

 

청자병에새긴시

 

細鏤金花碧玉壺

豪家應是喜提壺

須和賀老乘淸興

抱向春深醉鏡湖

 

푸르고 아름다운 술병에 금꽃 아로새겼으니

호사로운 집안에서 이 술병을 사랑하였을 것이다.

옛날 하로(하지장)가 기분 좋을적

늦은 봄 강호에서 이 병을 안고 흠뻑 취했으리라.

 

 敬意롭고 아름답다.

 

 觀覽을 마치고

高麗館을 거쳐 歸京中에 ....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