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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外國博物館

外國博物館/ Dresden 博物館 聯合

獨逸博物館

 

사랑 寶物

 

드레스덴은 정말 사랑스런 도시이다그리고 한 마디 덧붙일수 있다면,

결코 떠나고 싶지 않은 곳이다.”

 _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 ~ 1832) -

  Dresden is a delightful city and with permission, may I add that it is a place which

I would nenr want to leave.”

 Johann Woifgang von Goethe (1749 = 1832) _

 

 

國立中央博物館은  獨逸 드레스덴博物館 聯合과 함께 王이 사랑한 寶物 獨逸  드레스덴博物館 聯合名品展 을 開催 합니다. 이번 展示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博物館 聯合締인 드레스덴博物館 聯合이 所場한 18 世紀 바로크 王室 藝術品 130건을 國內 最初로 紹介 합니다. 展示의 主人公은 작센의 선제후이자 폴란드의 王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1670 _ 1733) 입니다. 그는 바로크 藝術로 王의 위엄과 權威를 드러내고자 하였읍니다. 그가 당대 最高의 장인을 動員하여 製作한 貴金屬工藝品과 함께 유럽 最初로 製作한 마이셍 자기 ,그리고 中國, 日本의 輸出 자기를 한 자리에서 感想할수 있읍니다.  (博物館 안내문 발췌)

 

 

태양가면

(太陽假面)

 

이 太陽 假面은 1709년 强健王 아우구스루스키 폴란드 王 으로 復位 한것을 記念하기 위해 덴마크 國王 프레데라크 4세를 招請하여 벌이 神들의 行列 行事에서 着用한 것입니다. 밤에 펼쳐진 이 延禧는 프랑스 國王 루이 14세(재위 1643 ~ 1715년)가 太陽神 아폴론 으로 扮裝한 밤에 발레를 모델로 삼았읍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는 작센의 先帝后 家門 最初로 1697년 폴란드의 王이 되었읍니다.

 

 

사냥도구

 아우구스투스 가 쓰던 사냥道具

 

楕圓形의뚜껑이있는盞

 

아프로디테와에로스

(Statucttc of Vcnus with Amor)

 

象牙는 古代부터 貴重한 材料로 여겨졌읍니다. 특히 小形 彫刻像을 만드는 材料로 人氣가 많았읍니다. 사랑과 美의 女神 아프로디태와 아들 에로스를 表現한 이 作品은 매끄러운 光澤을 내는 象牙의 特性을 잘 살렸읍니다.

 

 

맥주잔

 

騎兵들의 戰鬪 場面이 彫刻된 뚜껑이 있는 맥주잔

 

타원형함

(Oval Box)

 

퍼레이드장식함

(Parade Canlcet)

 

16 ~ 17세기 유럽에서는 인도 구자리트에서 收入한 자개 裝飾品이 큰 人氣를 끌었읍니다. 뉘른베르크의 金細工事 니콜라우스 슈미트는 인도에서 가져온 귀한 자개로 이 裝飾函을 製作했읍니다. 나무함에 防牌 模樣으로 자른 자개판을 하나하나 작은 핀으로 固定시킨 다음 테두리에 鍍金된 銀으로 만든 裝飾들을 둘렀읍니다.

 

 

아테나

 

銀 의 房에 展示되었던 作品中에 지금까지 傳해지는  단 세점중 하나 입니다. 이러한 大形 彫刻像은 材料 自體가 高價였을 뿐만 아니라 製作하는데도 高難度의 技術이 必要해서 매우 貴重하게 여겼읍니다.  

 

 

삼각형술잔

 

17세기 初 最高의 金細工事로 꼽혔던 엘리아스 가이어의 獨創性을 잘 보여주는 作品 입니다. 三角形의 形態가 독특한 이 盞은 얇게 細工한 石材를 組立하여 만들었읍니다.  가이어는 石材의 連結 부위를 鍍金된 銀으로 만든 틀로 덮어 이음새가  단단할 뿐 아니라 粧飾的으로도 豐富하게 했읍니다. 또한 손잡이와 잔 사이에는 세 점의 두루마리 模樣 粧飾 사이로 樂工들을 彫刻하여 얇게 細工된 石材 잔의 가벼움과 정교함을 效果的으로 傳達 했읍니다.

 

 

코뿔소의뿔로만든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棲息하는 動物인 코뿔소의 뿔은 바로크時代  君主 蒐集家들이  매우 貴重하게 여긴 材料였읍니다. 코뿔소의 뿔은 天然材料 중에서도 단단한 편이어서 細工하기 까다로윘읍니다.  잔의 表面을 가득채운 粧飾은 材料의 異國的 性格을 잘 드러냅니다. 손잡이에는 아메리카 原住民 한쌍을 몸통에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아메리카 네 大陸을 擬人化한 人物을 彫刻하였읍니다. 받침대에서는 코뿔소와 코끼리,악어와 같은 유럽에서 보기 힘든 猛獸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읍니다. 한편,잔의 뚜껑에는 바로크 藝術의 典型的인 모티프인 에로스가 粧飾 되었읍니다.

 

 

뚜껑이있는 맥주잔

(Ncphrite Tankard with Lid)

 

이 맥주잔은 진한 녹색빛의 煉獄으로 몸체를 만들고 鍍金된 銀으로 製作한 粧飾들을 더해 마무리 했읍니다. 이 잔을  製作한 엘리아스 가이어는 17세기 初 가장 뛰어난 金細工事 중 한명으로 작센의 先宰后들은 貴重한 自然物을 活用에 獨創的인 金細工品을 製作하는 이 장인의 作品을 사랑했읍니다. 대비대는 두 材料를 調和롭게 構成한 이 잔은 强健王 아우구스투스의 할아버지인 요한 게오르크 2세 (Jonann Georgll 재위 1656 ~ 1680)가 購入한 것입니다. 당시 드레스덴 好奇心의 房에는 가이어가 만든 煉獄 잔이 이미 여러 점 所藏되어 있었읍니다.

 

 

우물모양이작은세공품

 

바로크 時代에는 귀한 손님에 대한 歡迎의 뜻으로 빌콤 (willkomm)이라고 불리는 歡迎酒를  큰 잔에 건네는 風習이 있었읍니다. 이러한 잔은 貴重한 材料로 製作했으며, 製品의 形態는 대개 使用될 場所와 關聯이 있었읍니다. 우물 模樣을 한 이 특이한 形態의 作品도 이러한 用途의 술잔으로 使用되었을 可能性이 있읍니다. 우물 밑바닥에는 所有者를 나타내는 작센 先宰后의 文章이 찍혀 있읍니다.

 

 

황제,황후 흉상

(皇帝,皇后,胸像)

(Bust of an Emperor and Bust of an Empress)

 

18세기 초 유럽의 君主들은 로마 皇帝와 皇后를 描寫한 작은 胸像을 많이 收集했읍니다. 이 두점의 胸像은 붉은 점이 있는 암녹색의 石材인 헬리오트로프로 만들었읍니다. 카메오와 루비로 粧飾된 받침대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여러 作品을 製作한 요한 멜히오르 딩글링거의 솜씨로 推定됩니다.

 

 

오벨리스크

(Obelisks)

 

凱旋門 形態의 裝飾 彫刻과 오벨리스크 드레스덴 궁정 寶石 細工事 요한 하인리히 쾨흘러는 강건왕 아우구스루스를 위해 寶石 裝飾品을 여럿 製作했읍니다. 凱旋門과 오벨리스크는 君主의 榮光을 象徵하는 所材로 유럽의 궁정에서 人氣가 많았읍니다. 쾨흘러는 金,寶石,작은 카메오 등으로 凱旋門과 오벨리스크를 華櫚하게 裝飾하여 크기는 작지만 위엄이 느껴지도록 했읍니다. 이 作品에는 眞珠 王冠을  쓴 人物을 비롯하여 아프리카인을 表現한 彫刻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읍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異國的인 所材를 좋아해서 이를 主題로 한 裝飾品들을 많이 收集하였고 주로 金.銀 寶石의 房 에 展示하였읍니다.

 

 

바다방석고등술잔

(Turban - snail Goblct)

 

요한 하인리히 쾨흘러는 바다와 관련된 神話 속 主人公들은 描寫한 손잡이 위해 아기 天使가 새겨진 고동을 올려 잔으로 製作 하였읍니다. 잔을 들어올리고 있는 人物은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으로, 上半身은 人間, 下半身은 물고기인 人魚의 모습을 하고 있읍니다. 그 아래로는 海馬와 돌고래, 거북이가 粧飾 되었습니다. 本來 잔의 입 部分에는 三枝槍을 든 포세이돈 粧飾이 함께 있었지만, 現在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배형상의탁자장식

(Table Decoration in the Form of a Ship)

 

배 形象의 卓子 粧飾은 君主가 使用할 작은 食器類를 담는 容器로 중세시대 때부터 流行했습니다. 15世紀부터는 貴族들의 延禧用 술잔으로 使用되었다. 특히 뉘른베르크의  金細工事들은 배 形常의 술잔을 잘만들기로 有名했습니다. 이 作品은 앵무조개로 船體를 표현하고 그 周邊을 鍍金된 銀 粧飾들로 감쌌습니다, 바닥에는 바퀴가 있어 탁자 위에서 굴릴수 있었읍니다 술잔과 分理되는 甲板 부분에는 武器를 들고 戰鬪를 準備하는 軍人들의 모습이 纖細하게 表現 되어 있읍니다. 

 

  

앵무새형상의음료용기

(Drinking Vcsscl in the Shapc of a Parrot)

 

16 ~ 17세기 뉘른베르크의 金細工事들은 인도에서 收入한 作品의 影響을 받아 자개로 粧飾品 만들었읍니다. 이 作品에서 보이는 것처럼 앵무새의 깃털을 작은 자개판으로 表現하고 細部를 陰刻으로 纖細하게 描寫하였읍니다. 앵무새의 머리 部分을 열어 飮料를 담을수 있었습니다. 자개가 損傷되기 쉬어서 아주 重要한 손님을 맞이할 때만 使用되었읍니다.

 

 

캘하임산석재로만든장식화병

(Omatc Vasc Madc of Kchlbcim Stonc)

 

강건왕 이우구스투스를 위해 수많은 粧飾品 을 製作했던 요한멜허오르딩글링거의 作品입니다. 鍍金된 銀 으로 만든 精巧한 粧飾천이나,카메오,에메랄드 등을 더해 華櫚하게 粧飾된 윗부분과는 달리 받침대 部分은 形態가 다소 單純 합니다. 花甁의 表面과 카메오, 그리고 받침대 부분에는 사냥의 女神 아르테미스와 木神板을 描寫하였읍니다. 뚜껑의 가장 위해있는 손잡이 粧飾과 목 部分에는 아우구스투스 王 을 意味 하는 모노그램 AR(Augustus Rex)을 새겨 넣었읍니다.

 

 

(劍)

 

로즈컷 다이어몬드 粧飾 세트 911점으로 만든 작은 劍과 칼집 입니다. 武器가 아니라 王 으로서이 權威를 나타내는 儀裝用  劍이기 때문에 매우 華櫚하게 粧飾 했습니다. 어떤 寶石을 使用하였는가에 따라 君主의 地位가 드러나므로 이러한 粧飾 세트에는 最上級의 寶石이 使用되었다.  

 

 

철로만든물병

(Ewcr Cut Iron)

 

단단한 鐵을 뛰어난 솜씨로 加工해 만든 물병 입니다. 폴란드 王室을 意味하는 독수리와 技兵등 네가지의 象徵을 볼수 있읍니다.

 

도자기궁전 미완의 

(Porcelain Palacei The Unfinished Drcam)

 

당시 유럽에서 햐얀 金 으로 불리던 자기는 단단하면서도 아름다워 매우 貴하고 인기있는 物件 이었읍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東亞細亞의 자기製作 秘法을 알아내지 못해 中國과 日本의 收出자기에 依存하고 있었읍니다.

 

 

마이센자기,중국자기도전하다

(Chinese Original and Meissen Copy)

 

 

아우구스가 陶瓷器 宮殿을 完成하기 위해서는 水量이 不足했던 中國,日本 陶瓷器를 대신할 瓷器가 필요했읍니다. 그는 여러단계의 實驗을 거쳐 아시아의 瓷器와 恰似한 마이센 複製本을 만들어 내는데 成功 했읍니다. 오로지 마이센 瓷器임을 나타내는 雙劍 表式으로만 中國자기와 마이센 瓷器를 區別할수 있을 程度였읍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렇게 瓷器를 만들수 있는 技術力이 中國 皇帝에게 挑戰할수 있는 힘이 된다고 自身 했읍니다. 그는 中國皇帝를 自身의 陶瓷器 宮殿에 直接 招請하여 마이센 瓷器를 자랑하는 모습을 꿈꾸었지만  實現되지는 못했읍니다.

 

 

유럽최초자기,마이센

(Meissen, the First Hard Porcelain in Europe)

 

 

獨逸의 마이센 자기는 오늘날 유럽을 代表하는 陶瓷器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읍니다. 직센을 象徵하는 마이센 자기의 雙劍表式은  마이센 자기가 歷史的으로 드레스덴 王室과 密接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마이센 瓷器는 처음에는 中國과 日本 陶瓷器 를 模倣하는데서 時作했읍니다. 그러나 以後 유럽에서 자주 쓰이는 文樣으로 表面을 粧飾 하고 정교한 彫刻으로 誕生시키는 科程을 거치면서 單純한 實容器가 아닌 하나의 藝術 作品으로서 加値를 因定받게 되었읍니다. 드렌스덴博物館聯合의 陶瓷器博物館은 世界에서 가장 많은 아시아 收出 자기와 마이센 瓷器를 所場하고 있으며  18  ~  19 세기 유럽에서 陶瓷器를 室內粧飾 으로 陳列한 方式을 살려 所場品을 展示하고 있읍니다.  강건왕 아우구투스가 異國的인 動物들을 만들어 展示한 陶瓷器 動物園은 18세기 마이센 瓷器의 놀라운 技術力을 보여줍니다.

 

 

도금의방

(Gilded Silver Room)

 

鍍金銀의 房은 16세기 後半까지 記念行事를 위한 空間으로 使用되다가 17세기 後半부터는 王室 所有의 寶物을 보고나하는 場所가 되었읍니다. 이 房의 壁面에는 1723년 그린볼트가 처음 建築될 때부터 거울과 녹색 패널이 粧飾되어 있었읍니다. 18 世紀 鍍金銀의 房에 展示된 作品은 1733년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指示로 作成된 所場品 目錄으로 알수있읍니다, 後記 바로크 樣式의彫刻像 50여점을 包含하여 金屬細工 張人이 만든 약 300여점의 作品이 250여개의 콘숍위에 展示되어 있읍니다. 이중 3분의2 以上은7년 戰爭으로 인한 財政難 때문에 녹여졌읍니다. 오늘날 展示된 作品들은 1772년 당시 破壞를 면한 作品뿐 아니라 그 뒤에 收集한 後期 바로크 樣式의 作品들이 包含되어 있읍니다.  

 

 

타조형상의타조알술잔

(Ostrich Egg Goblct in the Form of an Ostrich)

 

16세기 初 뛰어난 金細工事였던 엘리어스가이어는 이 作品으로 마미암아 작센 先帝侯들이 사랑하는 丈人이 되었읍니다. 드레스덴 궁정은 타조알에 金細工 粧飾을 더해 타조 模樣으로 만든 이 독특한 슬잔을 매우높이 評可했읍니다. 타조는 여러 象徵的 意味를 가지고 이었읍니다, 당시 사람들은 消化를 위해돌을 삼키는 타조의 習性을 잘못 以海하여 鐵을 먹는다고 믿었고 이 때문에 타조를 告難속에서도 살아남는 東物로 여겼읍니다. 입에 물고있는 片者는 이러한 生覺에서 비롯된 表現 입니다. 또한 타조는 알을 모래에 묻어 햇빛으로 부하시키는 習性 때문에 原罪없는 孕胎를 하신 聖母를 象徵하기도 했읍니다. 

 

 

흙의알레고리와물의알레고리

(Allegory of larth and  Allegory  of water)

 

宇宙的 價値를 形常化한 알레고리는 그리스 神話와 더불어 靑銅의 房에 展示된 作品들의 核心 主題였읍니다. 특히 古代의 네가지 原素 물,불,공기,흙을 의인화한 彫刻은 王이 神으로 부터 權利를 委任받은 存在임을 效果的으로 드러내는 所材로 바로크 궁정에서 人氣가 많았읍니다. 城壁 模樣의 王冠을 쓰고 과일로 가득 찬 뿔을든 女人은 흙을 의인화한 人物입니다. 한편 물병을 든 수염 난 男性은 물을 象徵 합니다. 발치에 彫刻된 돌고래는 비늘이 있는 물고기처럼 樣式化된 모습으로 描寫되었읍니다.

 

 

주전자와수반

 

바로크시대에는 커다란 銀製 그릇이 流行 했읍니다. 貴重한 材料를 아낌없이 使用하여 만든 크고 훌륭한 銀製品은 自身의 職位와 富를 드러내는데 效果的 이었읍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華櫚하게 鍍金한 이 주전자와 수반셋트를 1719년에 열린 아들 아우구스투스 3세의 結婚式을 위해 求入 했읍니다. 이 때 收集된 鍍金된 用器들은 先帝后 家問에  전해지던 寶物들과 함께 展示되다가 1723년 새롭게 設置된 鍍金銀의房에 食技셋트 形式으로 陳列 되었습니다.

 

 

여성형상의술잔

(女性形象의술잔)

 

발크시대 宮殿에서 流行한 드레스를 입은 이 女人 머리위로 높이 盞을 들고 있읍니다. 이이러한 잔은 結婚式에서 술자리 놀이에 使用되었던 것으로 생각 됩니다. 걸쇠에 걸려있어 움직일수 있도록 할뿐 아니라 鐘 모양 치마 역시 잔으로 使用될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 입니다. 신랑은 치마에 달린 술을 新婦는 화려한 金細風 粧飾을 더한 바다방석고등으로, 잔을 비워야 햇읍니다.

 

 

용을무찌르는성게오르기우스형상의자동기계

 

中世 기가의 모습을 한 聖 게오르기우스가 龍 에게 最後의 一擊을 가하는 모습입니다. 祭物로 바쳐진 公主는 그의 도움으로 도망쳐 나오고 있읍니다. 惡으로부터의 勝理와 勇猛함을 象徵한 聖 게오르기우스는 유럽의 君主들에게 歸勘이 되는 人物 이었읍니다. 말의 머리 부분을 열면 술을 담을수 있는 盞이 되어 宴會때 使用되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바닥에는 胎葉裝置로 움직이는 바퀴가 있어서 卓子위에서 굴러다닐수 있었습니다. 

 

 

바다유니콘형상의술잔

(Cup in the Form of a Sea Unicorm)

 

엘리아스 가이어는 自然物을 使用하여 創意的인 作品을 잘 만들기로 有名했읍니다. 이 作品에서 가이어는 바다 유니콘의 꼬리를 바다방석고등으로 表現 했읍니다. 그 위로는 한손에 三枝槍을 든 포세이돈이 다른 손으로 고삐를 잡고 있읍니다. 自然物과 人工物을 混合한 作品으로 自然에 대한 人間의 挑戰을 象徵 합니다.

 

 

시간의알레고리

(Allegory of  Time)

 

제우스 아벼지이자 時間의 神인 크로노스는 바로크 藝術에서 자주 描寫 되었읍니다. 그는 흔히 날개가 있는 늙은 男性의 모습으로 表現 되었읍니다. 크로노스를  象徵 하는 物建 가운데 하나인 낫이 손에 쥐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구체 위에서 中心을 잡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자연스러운 옷주름과 근육의 表現이 띠어납니다.

 

 

에우로페와황소

(Europa and the Bull)

 

아우구스투스가 求入한 靑銅像 중에는 그리스 神話를 主材로한 作品이 많았읍니다. 이 彫刻像도 제우스의 有名한 神話를 描寫했읍니다. 제우스는 패니키아의 公主 에로로패의 美貌에 반해 새하얀 황소로 變身하여 接近한뒤 그녀를 태우고 바다를 건너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바람곁에 날리는 옷자락과 황소의 온순한 모습은 극적이지는 않지만 神話속 두 主人公을 떠올리기에 充分합니다. 예욿패의 오른손에는 꽃다발이 쥐어져 있었을것으로 推定됩니다.

 

 

루이14세의기마상

(Equcstian  Statuse of Louis XIV)

 

말 위에 올라탄 루이14세는 바로크 樣式의 가발을 쓰고 古代 로마 皇帝를 聯想시키는 複式을 갖추고 있읍니다. 凱旋將軍과도 같은 당당한 모습은 바로크 시대의 王을 로마의 皇帝에 投影하려는 것입니다. 藝術品울 活用하여 君主의 絶對的 權位를 效果的으로 내보인 루이 14세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간절히 憧憬한 代相이었읍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 作品과 같은 자세를 취한 自身의 技馬像을 新市街地  한가운데에 設置하여 强力한 王 으로서의 威嚴을 보이고자 했읍니다.

 

 

데이아네이라를납치하는네소스

(Nessus and Deiancira)

 

켄타우로스족 네소스는 헤라크레스의 아내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하려다 헤라클레스의 손에 죽음을 맞습니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 높이 치켜든 네소스의 앞발과 이에 놀라 한껏 젖혀진 데이아네이라의 몸은 마치 이 神話의 클라이막스를 지켜보는듯 생생 합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 彫刻像을 비롯하여 靑銅의 房 에 展示할 여러 作品을 藝術品들을 藝術品 仲介人을 통해 파리에서 求入 하였읍니다.

 

 

 

18세기 유럽은 强力한 君主들이 이끄는 時期였읍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유럽의 다른 왕과 帝后들이 그러했드시 自身의 權威를 世上에 널리 過時하고자 했읍니다.  그는 宮井文化의 雄壯함과 華櫚함이야말로 王으로서의 威嚴을 가장 잘 對辯하는 手段이라고 믿었읍니다. 그는 當代 最高의  建築家와 彫刻家를 動員하여 드레스덴에 大規模 宮殿을 造成 하였읍니다. 또한 珍貴한 藝術品을 熱情的으로 收集 하였고 이것들을 宮殿안에서 아름답게 展示하는데도 많은 勞力을 기울였읍니다.  宮井의 主要行事에서도 中心이되어 모든課程을 指揮하엿읍니다. 이러한점에서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바로크 藝術을 이끈 當代最高의 綜合藝術監督 이라 할만 합니다. 아우구투스가 熱情과 精誠을 기울여 收集하고 만든 寶物은 오늘날 드레스덴博物館聯合에 傳해져 獨逸을 비롯한 全 世界 사람들에게 새로운 靈感과 感動을 주고 있읍니다. 어쩌면 그토록 自身을 드러내고자 애썼던 그의 바람이 이제야 眞情한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런지도 모르겠읍니다. 이번 展示가 藝術과 文化의 힘을 믿고 熱情을 쏟은 한 왕을 만나는 機會가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