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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 (高麗佛敎文化)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고 려

 (高麗)

 

불교문화

(佛敎文化)

 

 

太祖는 子孫에게 남긴 訓要十條를 통해서 佛敎國家로서 나아갈 길을 提示 하였다. 開京에 法旺寺등 10대 寺刹이 세워지고 점차 全國에 걸쳐 寺刹이 만들어졌다. 佛敎에 대한 國家的 뒷받침을 바탕으로 막대한 經濟力을 行事하던 寺院은 免稅의 特權을 누리며 大地主로 行勢하였고 宿泊施設인 院 을 經營하거나 팔관보다 廣學寶를 通해 一種의 대부엄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光宗代부터 僧科 制度가 實施되였고 學識과 德望이 높은 高僧을 王師나 國師로 任名하여 國家的 通合을 圖謀하는 象徵的 存在로 삼았다. 然燈會와 八關會등의 國家的 行事를 通해 公同體的 認識을 擴大해 나갔다.  現在의 福을 祈源하는 것으로부터 內世에 西方淨土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高麗人의 佛敎에 대한 믿음은 身分과 階層을 막론하고 그들의 日常이 되었다.

 

청녕4년이 새겨진 종

(靑銅淸寧四年 銘鐘)

 

京畿道 驪州郡 금사면 상품리 發見

 

풍탁

(銅製風鐸)

 

風鐸은 寺刹의 팀이나 建物의 모서리에 달아 視覺과 聽覺的 效果를 내는 장엄구로 三國時代부터 製作되었다. 高麗 前期에는 統一新羅의 傳統을 繼承한 鐘 模樣의 風鐸이 主로 만들어졌고 後期에는 사다리꼴 模樣의 風鐸이 流行하였다. 鐘 模樣의 風鐸이 鐘의 要所를 가지는 반면, 사다리꼴 모양의 風鐸은 불보상을 비롯해 法知와 심업형 구멍등 多樣한 粧飾이 나타나는 것이 特徵이다.

 

운봉사출토품

(雲峯寺出土品)

 

開城 雲峯寺 터에서 함께 出土된 儀式具로 寺址珍甁香爐의 손잡이와 靑銅 香爐와 靑銅 항아리이다.

 

고려시대향완변화

(香垸變化)

 

高麗時代 香椀은 11세기 末이면 基形을 完成하는데 初期에는 統一新羅의  多足香爐의 傳統을 이어 香椀의 基形에서 洗髮의 박침이 附着되고 뚜껑이 있는 靑銅 三足香爐의 形態였다. 이 形態는 점차 다리가 사라지고 舊緣의 전이 넓어져 香椀의 形態를 完成하여 간다. 12세기 中半 以後에는 銀入絲 技法을 使用하게 華櫚하게 무늬를 粧飾 하였다. 展示된 銀入絲 香椀에는 梵字를 두른 如意頭 무늬가 나타나는데 形態나 무늬등을 通해 13세기 以後에 製作 된것으로 보인다.

 

비로자나불과조사상

(靑銅毘盧滋那佛坐像 靑銅租師坐像)

 

2008년 城南 板橋에서 出土된 靑銅像 세점이다.

 

관세음보살

(木製觀世音普薩坐像)

 

왼쪽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올린 유희좌를한 觀音普薩이다. 높은 寶冠과 華櫚한 永樂粧飾 尾閭한 얼굴表情은 華櫚하고 纖細한 高麗 佛敎의 特定的인 面을 잘보여준다. 머리위에 15개의 나무부채를 못으로 이어붙여 複葬物을 납인할수 있게 하였다. 實題 이 佛像의 머리 안에는 高麗時代 대수구다리니경과 五色실이 몸에는 씨앗을 담은 五寶甁이 들어있다.

 

보살

(金銅普薩坐像)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菩薩像이다. 통통하게 살이 붙은 둥근얼굴 깊은瞑想에 잠긴듯한 表情 道袍 形態로 걸친 천의 높이 올려 묶은 보계등 高麗後期 佛像의 特徵이 잘나타 있다. 영락 粧飾이 煩雜하게 늘어지고 가슴을 도드라지게 表現하는것은 14세기 말부터 나타나는 特徵이다. 西山大師가 菩薩은 오로지 衆生에 대한 生角뿐이다. 라고 말하였듯히 菩薩은 自身이 깨달음의 能力을 가지고 있음에도 不拘하고 一體의 衆生을 먼저 救濟하겠다는 書院을 세웠다.

 

아미타불

(金銅阿彌陀佛坐像)

 

高麗後期에 만들어진 阿彌陀佛 이다. 王室의 願刹이었던 開城의 旻天寺에 奉安되었던 金銅 阿彌陀佛 매우 類似힌 形態의 佛像이다. 旻天寺의 阿彌陀佛은 現在 寫眞으로만 傳 하기때문에 이 佛像을 通해 14세기 初 高麗의 首都 開京에서 流行하던 佛像의 모습을 엿볼수있다. 阿彌陀 信仰은 西方 極樂淨土의 主人인 阿彌陀佛을 念佛하면 누구나 極樂에 태어날수 있다는 믿음이다. 특히 이 佛像은 두 손을 포개고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려 엄지손가락의 끝과 맞댄 阿彌陀 淨人의 흔하지 않은 손갖춤을 하고 있다.

 

개인신앙과 호신불

 

高麗後期에는 現實에서의 幸福하고 風謠로운 삶을 祈願하는 傾向이 두드러지면서 小形의 護身佛 경상,불감등을 만들어 恒常 몸에지니고 다녔다.

 

삭도

(靑銅削刀)

 

僧侶의 머리털을 깍는 칼

 

경전함

(經典函)

 

經典을 保管하는 箱子

 

묘법연화경

(紺紙金泥妙法蓮華經)

 

다층소탑

(靑銅多層小塔)

 

高麗時代 小塔은 統一新羅時代 塔 안에 奉安되기 始作한 傳統을 이어 金屬으로도 製作되었다. 高麗時代 들어 小塔은 塔뿐만 아니라 全閣 內에도 奉安되기 始作하였으며 全閣內 에는 舍利奉安用 으로 製作하여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供養塔은 木塔을 模本으로 한 多層塔으로 製作하여 木塔의 建築 不在들이 表現 되어있고 部分 鑄造를 하여 組立할수 있도록 하였다.

 

국화무늬잔

(靑磁象嵌金彩菊花文盞)

 

金으로 무늬를 粧飾한 靑瓷 菊花무늬 盞

 

경전함

(螺鈿經函)

 

螺鈿으로 만든 大藏經을 담는 箱子이다.

 

넝쿨무늬장구

(靑磁鐵畵唐草文長鼓)

 

音樂에서 리듬의 구실을 맡아 보는 重要한 打樂器의 하나인 靑瓷鐵畵長鼓 이다.

 

정병

(靑磁瓜形淨甁)

 

길고 가는 목에 참외 模樣의 몸체를 가진 淨甁 이다.

 

화장대

 

아름다움을 가꾸고 드러내는 일은 時代에 따른 美意識이 反映되어 表現하는 方法과 그 基準에 차이가 있을뿐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女性들의 日常 이 되었다.

 

장신구

 

高麗王室을 포함한 上流層은 自身들만의 存在를 浮角시키기 위해 金,銀 등의 金屬과 玉,琉璃,寶石등의 多樣한 才質을 利用하여 華櫚한 무늬와 技法으로 만든 裝身具를 使用 하였다.

 

도장

 

開城에서 出土된 靑瓷와 靑銅으로 만든 圖章들로 官僚層에서 使用 한것으로 推定된다. 손잡이는 師子나 원숭이,물고기,새 등의 動物 模樣을 하고 있다. 高麗時代에는 靑銅 圖章을 模倣하여 妻子 圖章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바둑판,바둑알

(靑磁樭盤樭石)

 

靑瓷로 만든 바둑판과 靑瓷 白瓷로 만든 바둑알 이다.

 

(靑磁陽刻蓮唐草文瓢形甁)

 

몸체 兩面에 詩를 黑象嵌한 조롱박 模樣의 靑瓷 甁이다. 詩에는 봄날 주흥(酒興)에 겨운 하지장(賀知章)의 술병을 언급한 句節이 있다.

 

와당

(瓦堂)

 

滿月臺에서 出土된 막새 이다.

 

아미타불

(鐵造阿彌陀佛坐像)

 

江原道 原州地域에서 發見된 鐵로만든 阿彌陀佛 이다. 이 佛像은 얼굴 表定과 法衣의 表現樣式을 볼때 江原道 原州 地域에서 出土된 다른 佛像보다 조금 늦은 時期에 製作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