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 史 旅 行 2/歷 史 物

統營 (洗兵館)

(洗兵館)

 

 

閑山大捷을 이룩한 李忠武公護國聖地

 

이 곳은 朝鮮時代 三道水軍 壬辰倭亂營 本營의 자리로 宣祖 37 年 (1604)에 設置되어 高宗 32 年 (1895)廢營 될때까지 3 道 (慶尙,全羅,忠淸)의 水軍을 總指揮하던 官房 遺跡이다. 壬辰倭亂 당시 初代統制使로 제수된 全羅左水使 李舜臣 將軍의 漢山陣營이 最初의 統制營이 되었다. 丁酉再亂 以後 여러곳으로 옮겨 다니다가 마침내 天惠의 요항인 이곳 두룡포에 第 6 代 이경준 統制使(1604)가 本營을 創建하고부터 第 208 代 홍남주 統制使 在任시까지 무려 290 年間 倭敵을 再侵을 防備하는 朝鮮水軍의 總本營으로 오늘날 海軍本部와 같은곳이다.  

 

 

 

 

이순신

(李舜臣)

 

壬辰倭亂의 戰世를 바꾸게 한 1592 年 7 月 8 日의 閑山島  海戰은 世界 4 代  海戰으로 꼽힐 程度로 有明한 海戰 이다. 당시 70 여척의 敵船이 碇泊해 있던 見乃梁은 地形이 複雜하고 좁아서 我軍에게 불리한 場所였다. 將軍은 이 점을 看破하고 敵船을 閑山島의 넓은 바다로 誘引하여, 無防備 狀態의 敵을 "鶴翼陣法" 으로 集中 攻擊艦으로 大勝을 거둔다. 閑山島 海戰은 뛰어난 戰略家로써의 將軍의 面貌가 여실히 드러난 戰鬪였다. 將軍은 恒常 部下將帥들과 戰略과 戰術을 論意하고 硏究하였다. 東西洋의 海戰 硏究家들은 時代를 超越하여 이러한 李舜臣 將軍의 뛰어난 海戰術을 稱讚하며 硏究하고 있다.

 

 

통영세병관

國寶305號

 

洗兵館은 統制營의 客舍로 第 6 代  統制使 이경준이 이 곳에 統制營을 옮겨온 이듬해인 1605 年 처음 세웠고 第 35 代 統制使 김응해가 1646년에 規模를 크게하여 다시지었으며 第 193 代 統制使 채동건이 1872 年에 다시 고쳐 지은것이다. 正面 9칸 側面 5칸의 9량 構造 단층 팡작집으로 景福宮, 慶會樓,麗水鎭南館과 더불어 지금 남아있는 朝鮮時代 建築物 가운데 바닥面積이 가장 넓은 建物中 하나 이다. 長臺石 基壇 50 個의 민홀립 기둥, 2 역공 樣式에 壁體나 窓戶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져 있으며 質樸하면서도 雄將한 威容이 統制營의 常을 잘나타내고 있다.

 

 

세병

(洗兵)

 

洗兵이란 挽河洗兵에서 따온 말로 "銀河水를 끌어와 兵機를 씻는다"는 뜻이며 洗兵館이라 크게 써서 걸어놓은 懸板은 제 136 代 統制使인 徐有大가 쓴 글씨이다.

 

 

두룡포기사비

유형문화재 112호

(頭龍浦記事碑)

 

頭龍浦에 三道水軍統制營을 設置한 이경준 統制使의 治績을 記錄한 司直碑로 1625 年(仁祖 3 年)에  第 16 代  具仁厚 統制使가 세웠다. 頭龍浦는 元來 작은 浦口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경준이 이곳에 三道水軍統制營을 옮겨옴으로서 戰略的인 要衝地가 되었다. 이 碑石은 받침대 없이 碑身과 머릿돌로만 構成되어잇다. 碑文은 장천대都護府의 府使였던 박홍미가 지었다.

 

 

지과문

(止戈門)

 

기눌지(止) 창(戈)두자를 합치면 굳셀무(武)가 됩니다. 우리 祖上들은 門의 이름을 짓는데도 큰 뜻이 內在되어 있읍니다. 文化解說使 왈(曰) 戰爭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않되며 雪上 다시 일어나도 결코 勝利하겠다는 朝鮮水軍의 結義에 찬 門의 이름 입니다. 止戈門의 礎石은 해태로 火 으로부터 洗兵館을 保護하려는 뜻으로 基礎에 使用 되었다.

 

 

 

'歷 史 旅 行 2 > 歷 史 物' 카테고리의 다른 글

國立서울顯忠院  (0) 2012.06.26
禮山 (秋史金正喜故宅)  (0) 2012.03.28
統營 (忠烈祠)  (0) 2012.03.04
統營 (閑麗水道 CableCar)  (0) 2012.03.04
江陵 (統一公園)  (0) 2011.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