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 史 旅 行 2/歷 史 物

統營 (閑麗水道 CableCar)

(統營)

 

 

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 統營으로 宣祖 37 年 (1604) 統制使 이경준이 頭龍浦(지금의 統營市)로 統制營을 옮기면서 統營의 名稱이 여기에서 始作되었다. 또한 忠武市의 本 地名은 統營郡이고, 統營郡에서 市로 昇格되면서 忠武公의 諡號를 따서 忠武市라 하였으며, 統制이나 忠武市의 誕生은 三道水軍統制營과 忠武公에 緣由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통영항

(統營港)

 

1996 年 統營港으로 開稱 되었다. 港灣法上 貿易港으로 地定되어 있으며, 天然의 良港을 이룬다. 1906 年에 9,256.24㎡의 海岸을 民間事業으로 埋立하여 統營港으로 築港했으나 1940 年부터 日本軍港으로 使用 되었다. 1955 年 統營邑이 忠武市로 昇格되는 行政區域改便에 따라 忠武港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거북선

(거북船)

 

거북선에 관한 記錄은 朝鮮 初期의 太宗實錄에 처음 보이기 始作 한다. 1413 年(太宗 13)에 "王이 臨津江 나루를 지나다가 龜船과 倭船으로 꾸민 배가 海戰練習을 하는 模樣을 보았다"라는 句節이 있고, 또 1415 年 (太宗 15)에는 左代言  卓愼 이 "龜船의 戰法은 많은 敵과 衝突하더라도 敵이 해칠 수가 없으니 決勝의 良策이라 할 수 있으며, 더욱 堅固하고 精巧하게 만들게 하여 戰勝의 道具로 갖추어야 한다"는 뜻을 上訴하고 있다. 이러한 記錄 內用으로 보아 거북선은 倭寇의 擊退를 위하여 突擊船으로 特殊하게 製作된 裝甲船 이었음을 알 수 있다.

 

 

거북선

(거북船)

 

거북선의 起源을 倭寇의 侵害가 가장 심했던 高麗 末期로 보는 見解도 있다. 이와 같이 거북선은 高麗末, 또는 朝鮮 初期에 이미製造조·使用되었으며, 1592 年(宣祖 25) 壬辰倭亂 당시에는 李舜臣에 의하여 創製된 鐵甲船으로서의 거북선이 實用화되었다. 鐵甲船으로서 世界的 先驅인 李舜臣의 거북선은 壬辰倭亂 初般의 잇따른 海戰에서 艦隊의 先鋒이 되어 突擊船의 威力을 남김없이 發揮하였다. 그러나 李舜臣의 投獄과 더불어, 또는 그의 戰歿 以後에는 거북선의 實用이 底下되고 만다. 壬辰倭亂 후 거북선은 時代에 따라 당초의 制度를 喪失하고 變貌하면서 朝鮮 末期까지 각 水營에 存재하였다. 따라서 가장 큰 觀心의 對象이 된 거북선은 壬辰倭亂 당시 李舜臣에 의하여 創作, 구사된 거북선이다

 

 

판옥선

(板屋船)

 

거북선은 어떤 奇跡같은 것에 의한 것이 아니고 神話도 아니며, 당시 朝鮮 水軍의 主力戰艦의 하나이던 板屋船을 改造한 戰艦으로 板屋船과는 兄第之間과 같은 배이다. 거북선은 純粹한 우리固有의 朝鮮方式에 의해 建造된 國産戰艦이다.

 

 

충무김밥

(忠武--)

 

忠武김밥은 忠武(現 統營市)에서 由來한 鄕土飮食이다. 밥만 넣어 말은 김밥에 꼴뚜기 볶은 것을 따로 내와 먹는 것으로, 여름에 김밥속이 쉽게 쉬어서 飯饌을 따로 싸서 漁夫들이 고기잡이 나갈때 도시락 代用으로 使用하던 飮食이다.  먹어보니 별맛은 없는것 같다.

 

(達牙公園)

 

 

達牙 展望臺 이곳 地形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아 由來 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달 구경 하기 좋은 場所라는 뜻으로 쓰인다. 壬辰倭亂 당시 牙旗를 꽃은 戰船이 당표에 着達하였다. 牙旗의 뜻은 將軍의 威勢를 誇示하기 위하여 깃대 끝을 象牙로 粧飾하는 豪華스런 깃발

 

 

달아전망대

(達牙展望臺)

 

관해정

(觀海亭)

 

閑山大捷과 唐浦勝捷을 이룩한 遺書깊은 歷史의 現場을 左右에 두고 눈길 주는데 마다 閑麗水道의 크고 작은 섬들이 調和롭다. 淸淨海域을 스치는 바람도 싱그럽지만 落照나 달밤의 銀波를 보면 더욱 壯觀이다. 먼데 景致도 불러모으고 雨露도 피하고자 여기 亭子 하나를 세운다.

 

 

(閑麗水道 CableCar)

 

道南 觀光地 下流 停留場에서 始作하여 彌勒山 8 부 稜線에 위치한 上部 停留場 까지 8 人昇 캐빈 47 대가 循環하며 觀光客을 輸送하는 閑麗水道의 새로운 名物인 閑麗水道 眺望CableCar에 오르면 閑山大捷 의 歷史的인 現場과 閑麗水道의 秘境이 한눈에 들어온다.

 

 

(正塘泉)

 

이 우물은 1670 年 第 51 代 金鏡統制使 때 팠다고 傳한다. 당시에는 周邊에 民家가 없어 이 샘물을 忠烈祠에 專用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하나를 파고보니 물이 濁하고 곧 말라서 두개의 우물을 同時에 팠더니 비로서 물이 맑고 水量이 많아졌다고 한다.

 

 

명정

(明井)

 

위의 泉을 井 아래샘을 月井 이라고 했는데 日井물은 李 忠武公 享祀에 使用하고 月井물은 民家에서 使用했다. 이 우물(日,月井)을 합하여 明井이라 부르는데 死體나 喪與가 이 우물 위를 지나면 물이 흐려지는 異變이 생긴다. 하여 지금도 이를 禁하고 있다. 한때 日,月井을 합하여 八角亭으로 改築 하였더니 돌림병이 發生하는 異變이 생겨 八角亭을 허물고 明井을 復元 하였다.

 

 

(統營市鄕土歷史館)

 

 

(海底 Tunnel)

 

1932 年 完成된 東洋 最初의 海底 Tunnel 이다. 近代文化 遺産登錄文化財 201號로 指定 되어잇으며 總 길이 484 m 폭 5m 높이 3.5 m 이며 龍門達陽 이란 글귀는 龍宮의 門으로 들어가면 빛고을  彌勒도 山陽 에 이른다는 뜻이며 龍門達陽이란 懸板은 施工 당시 統營郡守인 야마쿠지 아키라의 筆跡 이다.

 

 

허공의중심

(The Central Point in the Air)

 

삶과 죽음,靈魂과 肉體,精神과 物體,意識과 無意識등 二元論的 思考가 地配하는 이 世上의 對立과 分裂을 克服하고자 하는 人間의 高貴한 念願을 나타낸 人體彫刻 이다. 극히 寫實的인 人體描寫를 通해 自然 그대로의 人間의 모습이 純粹한 生命의 energy를 갖고 있다는 점을 强하게 보여주는 作品 이다.

 

 

(南望山彫刻公園)

 

南望山 彫刻公園에 오르니 朝鮮의 Napoli 라는 말이 實感나는듯 확트인 統營港과 中央市場이 아득히 보이고 바다를 끼고 바다 바람을 맞으며 散策길을 걸으면서 彫刻作品들을 鑑賞하며 느끼는곳 바로 이곳 南望山 彫刻公園 이다.

 

 

신공

(李舜臣公園)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伽)는
남의 애를 끓나니

 

림미

(全革林美術館)

 

展示室은 80평 規模. 1층 展示室에 들어서니 開館 準備中 이란다. 立場 不可 日程이 바빠서 대충 돌아보고 아깝다. 다음을 期約하고, 統營이 낳은 全革林은 慶南 忠武에서 出生하여 統營普通學敎(1929)와 統營 水産專文學敎(1933)를 卒業하였다. 독특한 色感으로 構想과 抽象을 넘나들었던 西洋畵의 大家로 불린다. ‘色彩의 魔術師’ 또는 ‘바다의 畵家’로 불리는 全革林 畵伯은 韓國的 色面 抽象의 先驅者로 構想과 抽象을 넘나드는 造形意識을 土臺로 獨自的인 領域을 構築해왔다.

 

 

 

'歷 史 旅 行 2 > 歷 史 物' 카테고리의 다른 글

統營 (洗兵館)  (0) 2012.03.05
統營 (忠烈祠)  (0) 2012.03.04
江陵 (統一公園)  (0) 2011.09.04
江陵 (臨瀛館三門)  (0) 2011.09.03
江陵 (鏡浦臺)  (0) 2011.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