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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歷 史 物

江陵 (臨瀛館三門)

(江陵臨瀛館三門)

 

 

江陵 臨瀛館址는 江陵府 客舍 建物인 臨瀛館의 터이며 客舍는 地方으로 出張은 中央官理의 宿所로 使用하던 곳이다. 江陵의 客舍는 "江陵副邑址" 건치 연혁에 따르면 高麗太祖 19 年인 936 年에 江陵을 銅圓鏡 이라 칭하고 臨瀛館을 創建 하였다고 記錄되어 있으며 創建당시의 規模등은 確認할수 없고 여러차례에 걸쳐 重創되어 왔으며 日帝時代 江陵 公立普通學敎가 세워지면서 撤去 되었다. 客舍館 客館이라고도 하며 高麗時代와 朝鮮時代에 各 고을에 두었던 官廳建物의 하나로 臨瀛館 三門은 客舍의 正門이다, 王이 派遣한 中央官理가 묵었던 場所로 朝鮮時代에는 客舍의 建物중 가장 重要한 位置에 자리한 전대청에 國王을 上場하는 殿牌를 모셔두고 每달 초하루와 보름에 宮闕을 向하여 절을 하던곳 이기도 하다.

 

 

 

임영관삼문

(臨瀛館三門)

 

臨瀛館三門은 高麗末에 지어진 것으로 現存하는 가장 오래된 門으로 江原道內  建築物중 唯一하게 國寶 제51號 로 指定한 文化財이며 慳結하고 박한 주심포계 樣式과 맞배지붕의 三門 이다 빼흘림 기둥은 現存하는 木造文化財중 가장 크며 기둥과 지붕이 만나는 곳의 洗練된 彫刻 솜씨는 高麗末 朝鮮初期 建築의 特徵을 잘나타내고 있다. 

 

 

강릉객사문

(江陵客舍門)

 

江陵 客舍의 正門으로 客舍 建物은 없어지고 이 門만 남아있다. 客舍는 高麗와 朝鮮時代에 各 고을에 두었던 地方館衙의 하나로 임금의 殿牌를 모신곳으로 中央官理나 使臣들이 묵기도 하였다. 高麗時代 後期에 만들어졌으며 以後 여러차례 保守가 이루어졌다. 지붕은 앞뒤로 경사면을 갖는 맞배지붕 이다.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粧飾하며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柱心包系 形式이며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 기둥이다. 慳結하고 素朴하지만 洗練된 彫刻 솜씨는 高麗時代 建築特徵을 잘보여주고 있다.    模型製作 :重要無形文化財 제74호 大木長 신응수

 

 

서헌

(西軒)

 

이 建物은 右側의 東大廳과 더불어 使臣등이 宿食을 하던곳으로 構造는 온돌방과 마루로 構成되어 있으며 東大廳보다 規模가 작다. 利用規定에 대한 明確한 記錄은 없지만 受敎緝錄에 의하면 使臣一行 중 正 3 品 官僚들이 西軒을 使用 했다고 한다.

 

 

임영관

(臨瀛館)

 

江陵部 客舍인 臨瀛館은 高麗太祖 19 年 936 에 創建 하였다고 하며 以後 朝鮮時代까지 여러차례 걸쳐 重創,重修되었던 것으로 發掘調査 結果 確認되었다.

 

 

임영관

(臨瀛館)

 

臨瀛館 懸板은 恭愍王의 親筆로 알려져 있다.

 

 

동대청

(東大廳)

 

이 建物은 左側의 西軒과 더불어 使臣및 中央官僚들의 宿食및 宴會 裁判 國家 慶事및 哀事期 忘曲등을 하던곳이다. 構造는 온돌방과 마루로 構成되어 있으며 西軒보다 奎模가 더 크다.  利用 規定에 대한 明確한 記錄은 없지만 受敎緝錄에 의하면 使臣一行 중 正 2 品 官僚들이 東大廳을 利用 했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西軒보다 위계가 높았음을 알수있다.

 

 

전대청

(殿大廳)

 

이 建物은 客舍의 正廳이자 中心公間이다. 殿大廳에는 王의 殿牌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守令이 大闕을 向해 절을하는 望闕禮를 行하였던 곳이며 邪心및 外冠이 王에게 글을 올리거나 王 이내리는 香을 맞이하는 意式,觀察使 巡幸時 地方官이 延命등을 行하던 곳으로서 右側의 東大廳과 西軒에 비해 지붕이 한단계 높게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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