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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歷 史 物

海美 (邑城)

(海美邑城)

 

 

이 城 은 高麗末 부터 많은 被害를 준 倭寇를 效果的으로 防禦어하기 위하여 德山에 있던 忠淸兵馬節度使營을 海美로 옮기기로 하면서 1417년 (朝鮮太宗 17)부터 1421년 (世宗 3년)까지 築城, 忠淸道의 全軍을 指揮하던 兵馬節度使營城 이다. 1652년 (孝宗 3년)까지 230여년간 兵馬節度使營 의 技能을 하였으며 菁州로 옮겨간후 海美 縣監 이 이 城에 옮겨와 兼營將이 되면서 海美邑城이 되었다. 湖西左營으로 1895년 行政區域 改編때까지 243 年間 내포地方 12개 郡縣의 軍權을 指揮했던 곳이다. 낮은산과 平地를 移用하여 쌓은 平山城으로 城郭의 下段은 큰돌로 쌓고 위로 오를수록 작은돌을 使用하였는데 안쪽은 흙으로 채웠다.

 

 

 

진남문

(鎭南門)

 

海美邑城의 正門으로 花崗巖 虹霓門 正面 3칸 側面 3 칸의 팔작지붕 段層門樓  城門 內側의 인방석에는 皇明弘治四年辛亥造 라는 刻字가 크게 새겨져 있어 成宗 22 년 (1491)에 大大的으로 增修가 있었던것을 알수있다.

 

 

皇明弘治四年辛亥造

 

 

회화나무

 

1790 ~ 1880 年代에 이곳 獄舍에 收監된 天主敎 神者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東쪽으로 뻗어있던 가지에 鐵絲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拷問하였으며 鐵絲줄이 박혀있던 痕跡이 現在까지도 희미하게 남아있고 東쪽으로 뻗은 가지는 1940 年代에 가운데 줄기는 1969 年 6 月 26 日에 暴風으로 부러져 外科手術을 施行하였으나 再次 부폐되어 2004年 4 月에 外科 手術 및 土壤開放등을 거쳐 保護管理 되고있으며 記念物 제 172 號로 指定되었음.

 

 

내 아

(內衙)

 

官理와 家族들이 生活하던 官舍 建物로 東軒이 고을의 公務를 遂行하는 곳인데 반해 內衙는 살림집이다. 海美邑城內衙는 發掘調査와 考證을 거쳐 2000년 11월 現在의 모습으로 復原 하였다.

 

 

동헌

(東軒)

 

東軒은 兵馬節度使를 비롯한 縣監兼營將의 執務室로서 管轄地域의 一般 行政業務와 裁判등이 行 하여지던 建物이다. 海美 兼營將은 인근 12개 郡,縣의 兵務行政과 討捕使를 겸한 地位였다. 

 

 

민속가옥

(民俗家屋)

 

朝鮮時代 民家로 商人의 집을 再現하였다. 대들보 아래의 방을 일렬로 配置한 흩집 즉 단일형 家屋으로 우리나라 西部와 南部에 널리 分布되어 있는 朝鮮後期 民家의 普遍的 形態 이다. 이 地域 民家들은 一般的으로 몸채를 - 字形으로 하고 광,외양간,측간 등을 하나로 묶어 副屬채를 構成한다. 이 家屋 역시 부엌 1칸 방 2 칸으로 이루어진 典型的인 3 칸 草家이며 副束채가 딸려 있다. 장사가 主業이지만 텃밭 耕作을 위한 基本的인 農機具를 갖추었다.

 

 

청허정

(淸虛亭)

 

英祖代에 刊行된 勵志圖書에서는 淸虛亭을  在城內主山 이라하여 建物이 存在하고 있는것을  알수있으며 新增東國輿地勝覽 記錄에 의하면 兵馬節度使  曺淑沂가 세웠다고 한다. 

 

 

(輦)

 

朝鮮時代의 가마는 타는사람의 身分과 用度에 따라서 區分 되었다. 從一品 以上과  耆老所의 당산관 以上은 평교사 2 品 以上은 초헌 觀察使 와 從二品 以上은  쌍마교를 타게 하였다.  또한 朝鮮王室의 가마는 國家儀禮를 치르기 위한 御駕行列 속에서 核心的 位値를  次知했던 王室의 表象이기도 하였는데 輦은 王과 王妃및 王世子가 使用하였고 公主와 翁主가 타던 가마는 당 이라고 한다. 公主가 타고다닌 당은 8 名 世子가타고 다니던 輦은 14 名 王 이타는 輦은 20 名 가까운 人員이 메었다고 한다. 

 

 

객사

(客舍)

 

客舍는 建物의 中央 政廳에 闕 자가 새겨진 位牌를 모시고 朔望 (每月初하루,보름)에 官衙의 大小 官員들이 國王에 대한 禮를 올렸으며 양편 翼室은 조정이나 上部에서 派遣된 官員 및 貴賓들의 宿所로도 使用했던 곳이다. 海美邑城 客舍는 發掘調査와 考證을 거쳐 1999년 7월 現在의 모습으로 復原 하였다.

 

 

천자총통

(天字銃筒)

 

天字文의 天.地.현.黃 의 글자를 딴 火砲중 가장 規模가 큰 朝鮮時代의 化學武機로 太宗때부터 製作 使用되었다. 大仗軍戰을 裝着하여 쏘아 壬辰倭亂때 敵艦隊 이나 敵의 陣地를 부수는데 戰果를 거둔 威力的인 武機이다.

 

 

옥사

(獄舍)

 

海美邑城은 우리나라의 天主敎와 깊은 聯關이 있던곳이다. 敎道들을 鬪獄하고 問招하였던 歷史的 事實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 있던 獄舍를 發掘 作業뒤 復元 再現 하였다. 1935 年에 慣行된 海美 殉敎者 略史의 記錄을 土臺로 復元하였으며 內獄과 外獄이 있고 各各 正面 3칸 建物로 神者들을 國事犯으로 規定하여 이곳에서 鬪獄및 處刑을 하였는데 金大建 神父의 增祖夫도 이곳에서 獄苦를 치르고 殉敎했다고 傳해지고 있다. 

 

 

민속가옥

(民俗家屋)

 

朝鮮時代 民家로 末短官理人 서리의 집이다. 부엌 1칸 방 2칸으로 이루어진 典型的인 서산地域의 3칸 草家집이다. - 字形의 平面構成은 우리나라 農村民家의 가장一般的인 形式이 되는 空間配置로 부엌과 房들이 일렬로 連續 配置되어 있다. 모든房이 南쪽으로 出入口를 두어 괘적한 生活空間이 되도록 하고있다. 房에 갖춘 간단한 文具類가 집主人의 職業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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