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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B 旅 行/國 外

중국 (China Hangzhou )

(China)

(杭州)

 

 

西湖는 三面이 山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湖水에는 소영주, 湖心亭, 完工墩 등 3개의 섬이 떠있다. 總 面積은 60.8㎢이며, 그 중 水域의 面積은 5.66㎢이다. 西湖는 안개가 끼었을 때나, 달 밝은 밤 또는 日出 때 가장 아름다운 姿態를 보여준다. 西湖 10 경중에 가장 代表的인 것은 단교잔설(斷橋殘雪), 평호추월(平湖秋月), 소제춘요(蘇堤春曜), 곡원풍하(曲院風荷), 화항관어(花港觀魚)다. 斷橋殘雪은 民畵 백사전 속에서 백소정과 허선이 만난 舞臺가 된 곳이다. 平湖秋月은 넓이 400평방미터의 展望臺며, 蘇堤春曜는 蘇東坡가 쌓은 둑인 昭帝는 철따라 아름다움이 變한다. 曲院風荷는 蘇堤의 北西에 펼쳐진 風景으로 여름에 특히 아름답다. 또 花港觀魚는 봄에 모란꽃을 보며 龍井茶를 마실 수 있는 韻致있는 곳이다.

 

 

 

소제춘요

(蘇堤春曜)

 

蘇堤는 蘇東坡가 쌓은 뚝이다 季節에 따라 그 아름다움도 變하는데 봄날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고 수양버들이 희미하게 떠오를 때에 꾀꼬리가 울면 最高로 멋진 光景이 演出된다. 맹호연(孟浩然)이 춘면불각요(春眠不覺曉)라 읊은것은 너무나도 有名하다.

 

 

소동파

(蘇東坡)

 

蘇東坡는 북송 인종(仁宗) 때 메이산[眉山:지금의 쓰촨 성(四川省)에 있음]에서 태어났다. 8세 때부터 메이산의 도인(道人)이라 불리던 장역간(張易簡)의 門下에서 工夫를 始作했는데, 그 影響을 받아 도가(道家), 특히 장자(莊子)의 제물철학(齊物哲學)을 접하게 되었다. 1056년 그의 아버지 소순은 두 兄弟를 데리고 上京하여 이들의 시를 구양수(歐陽修)에게 보여주고 激讚을 받았다. 이들 兄弟는 그해 가을 진사(進士)가 되었고 이듬해 예부(禮部)에서 主觀하는 試驗에 나란히 及第했지만 母親喪을 당하여 故鄕으로 돌아갔다.

 

 

서호십경

(西湖十景)

 

三國志를 通해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오(吳)나라의 王 孫權이 이 山에 진을 쳤었다 하여 오나라 오(吳)에 뫼 산(山)을 붙여 오산(吳山)으로 이름 붙여진 山으로 杭州의 가장 繁華한 商業距離인 연안로(延安路) 南쪽에 位置하며 市內까지 山줄기가 뻗어있다. 名香樓, 聖皇閣 등의 有名한 建築物 뿐아니라 오래된 古木과 奇巖怪石들, 寺院과 神廟, 蘇東坡 같은 有名人들의 痕跡이 남아 있는 遺物들이 많이있다. 산위의 聖皇閣에서는 杭州의 景致를 眺望할 수 있고 左側으로는 西湖, 右側으로는 錢唐江도 함께 感想할 수 있다. 볼거리도 많고 景致도 뛰어나 外國 觀光客은 물론, 杭州 市民들에게도 人氣있는 곳이다.

 

 

서 호

(西湖)

 

西湖는 杭州 西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有名한 미인 서시(西施)를 記念하는 意味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린다. 序詩에 대해서는 實題 人物 인지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월나라 王인 구천(勾踐)이 오나라의 王 부차(夫差)에게 바쳤던 人物로, 結局은 구천의 計略대로 오나라王 부차가 서시의 美貌에 빠져 나라일을 돌보지 않게 되었고, 오나라가 滅亡에 이르게 되었다. 中國의 歷史上 楊貴妃 등과 함께 中國을 代表하는 美人으로 꼽힌다.

 

 

육화탑

(六和塔)

 

北宋 개보(開寶) 3년(970년)에 지어진 것으로, 전당강(錢塘江) 북쪽 沿岸에 位置해 있으며 錢塘江의 大逆流를 막고자 하는 企圖를 反映하여 세운 塔이다. 이 塔의 이름인 육화(六和)라는 意味는 原來 佛敎에서의 規約인 '육합(六合)' 즉, '천지사방(天地四方)'의 意味다. 당시 建築계의 거장인 유호(喩皓)가 ≪목경삼수(木經三首)≫를 根據로 하여 設計하여 外觀은 13층이며, 內部는 7층으로 螺旋形 階段을 利用하여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全體 높이는 59.89m이며, 中國 木造 建築 分野의 傑作으로 評價되어 全國重点文物保護單位 중 하나로 指定되어 있다. 지금은 杭州에서 꼭 들러가는 有名 觀光地로 塔에 올라 全景을 感想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지장보살

(地藏菩薩)

 

그는 抑壓받는 자, 죽어가는 자, 나쁜 꿈에 시달리는 자 등의 救援者로서, 地獄으로 떨어지는 벌을 받게 된 모든 사자(死者)의 靈魂을 救濟할 때까지 自身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書院을 세웠다고 한다.

 

미륵보살

(彌勒菩薩)

 

彌勒菩薩은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나 釋迦牟尼의 弟子가 되었으나 釋迦牟尼보다 먼저 죽었으며, 現在는 菩薩의 몸으로 도솔천(兜率天)에 머무르면서 天上의 사람들에게 說法하고 있다. 또한 說話에 따르면 菩薩은 初發心 때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자씨보살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약사보살

(藥師菩薩)

 

모든 疾病뿐만아니라 無智의 病까지도 고쳐준다는 부처인 藥師佛 입니다.

 

보현보살

(普賢菩薩)

 

釋迦如來를 양쪽에서 補筆하는 菩薩, 즉 협시보살(脇侍菩薩)로서 알려져 있다. 普賢菩薩은 하얀 코끼리를 타고 부처의 오른쪽에서 補筆하는 모습으로 表現된다. 또 이 두 菩薩은 모든 菩薩들의 우두머리로서 恒常 부처가 衆生을 救濟하는 일을 造成하고 宣揚한다. 普賢菩薩은 또 衆生의 목숨을 길게 하는 德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문수보살

(文殊菩薩)

 

文殊菩薩 信仰이 三國時代부터 流行했는데 新羅의 高僧 煮醬은 그 遊布에 큰 役割을 했다. 韓國의 五臺山은 中國의 우타이 山과 마찬가지로 文殊菩薩의 상주처(常住處)로서 重視되어 왔는데, 643년(善德女王 12)에 中國으로부터 歸國한 煮醬은 五臺山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을 建立함으로써 五臺山의 重要性을 널리 浮刻시켰다. 皇龍寺의 9층탑도 文殊菩薩 信仰을 굳건히 하고자 한 煮醬의 勞力에 의해 세워졌다. 그뒤 文殊菩薩 信仰은 계속 流行되어 오늘날에도 많은 寺刹의 大雄殿에 釋迦牟尼佛을 中心으로 左側에는 文殊菩薩이 奉安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황묘

(城隍廟)

 

죽은 사람의 魂靈은 그의 判決에 따라 神에게 自身의 善行과 惡行을 報告해야 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믿음이 깊은 사람들은 성황묘(城隍廟)에 祭物을 바치면 후히 보답받는다고 믿었다. 城隍崇拜 意識이 一般에 널리 퍼진 理由는 나라에서 그것을 奬勵했기 때문이며 1382년에 나라는 城隍墓의 管理를 맡으면서 守護神에게 祭物을 바치라고 命令했다. 傳統的으로 地方官理들은 赴任하러 갈 때 城隍墓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그의 引渡를 求했다. 또한 어려운 法律上의 問題가 發生했을 때에도 城隍이 꿈에 나타나 解決策을 주리라고 期待하며 이곳에서 밤을 지냈다. 사람이 죽었을 때에는 親戚이나 親舊가 城隍墓에 찾아가 그 事實이 제 날짜에 記錄되도록 城隍子에게 報告했다. 또한 1년에 1~2번 신상(神像)을 밖으로 내어와 城隍이 마을을 監視할 수 있도록 巨履를 巡禮하게 했다. 이때 그의 補佐官들이 앞에 서게 되는데 밤과 낮으로 마을을 守護하는 키 큰 흑노야(黑老爺)와 키 작은 백노야(白老爺)도 그중에 있었다.

 

 

항주송성

(杭州宋城)

 

남송(南宋) 時代의 城郭을 그대로 再現해 놓은 곳으로 貯藏性 항저우의 새로운 名物 테마파크이다. 中國의 成功的인 觀光地 開發의 모델로 評價되며, 단지 建物만 復原한데 그치지 않고, 南宋 때의 各種 文化, 服飾이나 衣裳 등과 風習 등을 再現한 杭州의 代表的인 테마파크라고 할 수 있다. 判官 捕廳天, 방랍의 亂이 背景이 되는 水滸傳 등 낮에도 프로그램이 잘 構成되어 있고, 밤에도 頌聲歌舞쇼로 알려진 頌聲千年의 정을 公演하여 여러가지 테마 構成을 調和롭게 해두었다.

 

 

육화탑

(六和塔)

 

六和塔은 서호(西湖)文化景觀에서 代表的인 佛敎文化 遺跡地로 現在 中國에서 가장完璧히 保存된 벽돌과 木造로된 고탑(古塔)으로 10 ~ 13세기 항주(杭州)도시 佛敎文化의 興盛을 再現하고 있다. 이는 西湖 文化景觀은 豊富한 宗敎文化 內容을 갖고 있다는 重要한 證據이기도 하다. 六和塔은 북송개보(北宋開寶) 3년 (970)에 建築하였고 그 後 여러차례 의 毁損과 再建을 거쳤다. 現在의 탑신(塔身)은 南宋時期의 遺物이고 바깥쪽 木造로된 처마(처마)와 회랑은 靑나라 時期에 수건 (修建)한것이다. 塔 높이는 59.89 m 이고 雙套管式 벽돌과 목조(木造)로된 樓閣式 塔으로 八角形으로 되었고 外觀으로는 13층이다.

 

 

남송항성풍정도

(南宋杭城風情圖)

 

杭州市 工藝硏究所 硏究員을 비롯한 丈人등 萬여명이 參與하여 2년만에 만든 作品으로 立體的 조소가 南宋 時期의 生活風俗을 鮮明하게 描寫하고 있다. 巨大한 凝灰巖에 西湖의 傳說과 십대 民間古事등을 담은 이 彫刻刀는 길이 31.5미터에 높이만 3.65미터로 1000여채의 家屋과 3000여명이 넘는 人物들이 登場하고 있어 그 時代의 中國의 生活相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성황각

(城隍閣)

 

높이 41.6미터, 7층짜리 古建築物로 吳山의 꼭대기에 位置하고 있다. 樓閣의 모든 造型이 南宋과 遠代의 建築風格을 따랐으며 黃鶴樓,등왕각,岳陽樓와 함께 中國의 江南 4대 樓閣으로 꼽힌다. 2층에는 蘇東坡,백거이등 杭州 歷史에서 意味있는 人物 28명의 人物 彫刻像과 杭州의 重要한 歷史的 瞬間들을 描寫한 11개의 彫刻像이 展示되어 있고, 3층에는 찻집이 4층에서는 杭州 市內와 西湖, 전당강등의 景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오산천풍

(吳山天風)

 

오나라 손권이 이곳 山 에다가 진을 쳤다고 하여 오나라 (吳)와 뫼산(山)이 합쳐저 吳山이 되었다고 합니다.

 

 

中國旅行을 마치고 上海푸동 空港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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