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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歷 史 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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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華島/朝陽紡織café 조양방직 (朝陽紡織) 우리나라 最初의 紡織工場 朝陽紡織은 日帝强占期 중 1933 年에 江華 甲富 홍재묵이 세운 最初의 民族資本 工場 으로 全南 莞島 出生 崔士烈 이 滿洲(福),大日本,京城,木浦織物,조일,朝陽,고공,선일견직,공하연사등 16개 工場을 建設 江華島 볼거리중 하나 最近에 café로 remodeling 하여 盛業中
江華道(高麗宮址,支石墓) 江華道 고려궁지 (高麗宮址) 高麗는 高宗 19년 蒙古의 侵略에 對抗하기 위하여 崔後의 勸誘로 都邑을 松都에서 天惠의 要素인 江華島로 옮겼다. 이때 옮겨진 都邑터가 高麗宮址로 元宗 11년 開城으로 還都할때까지 38년간 使用되었다. 高麗宮址는 松都 宮闕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宮闕 뒷산 이름도 松嶽이라 하여 王道의 制度를 잊지 않으려 하였다고 한다. 1636년 丙子胡亂란 시 江華城이 靑나라 軍에게 陷落되는등 여러차례 戰亂을 겪으면서 宮闕과 城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 후 高麗宮址에는 朝鮮時代의 建物인 昇平門,江華留守府東軒,吏房廳,鐘閣등이 復原되었다. 외규장각 (外奎章閣) 朝鮮 貞祖때 王室 관련 書籍을 保管할 目的으로 江華島에 設治한 圖書館으로 王立圖書館인 奎章閣의 附屬圖書館 役割을 하였다. 設治 以後 王室이나 ..
坡州(馬場湖水) 마장호수 (馬場湖水) 2018년 6 월 26 일 이곳 地域名은 朝鮮時代 燕山君10年에 軍馬들의 訓練場으로 利用되던 馬場이라는 名稱에서 由來되었으며 인근에는 燕山君 사냥터를 표시하는 燕山君 禁標碑가 있다. 출렁다리 國內에서 最長 길이의 흔들다리 길이는 220m 마장호수 둘레길 금표비 禁標碑 금표내범입자논기훼제서율처참 禁標內犯入者論棄毁制書律處斬 1504년 燕山君은 傳敎를 내려 "諺文을 쓰는 者는 기훼제서율(諺文行用者 以 棄毁制書律)로 알고도 告하지 않는 者는 제서유위율로 論斷(知而不告者 以 制書有違論斷)하고 朝士의 집에 所藏하고 있는 諺文(한글)으로 口訣(朝士 家所藏諺文口訣 書冊皆焚之)을 단 冊은 모두 불사르되 漢字를 諺文으로 飜譯한 冊은 禁止하지 말라(如飜譯漢語諺文之類勿禁)고 命令하였습니다.
國立서울顯忠院(第63回顯忠日) 현충원 (顯忠院) 殉國先烈 護國英靈 "나라와 겨레위해 목숨을 받치니 그 精誠 永遠히 祖國을 지키네" 國立서울顯忠院은 祖國의 守護와 發展을 위하여 高貴한 生命을 받치신 殉國先烈 과 護國英靈이 잠들어 계신 國家의 聖域으로서 國難을 克服해온 우리 民族의 얼과 護國 意志가 가득히 서려있는 곳이다. "祖國의 山野여 勇士를 잠 제우소서 우리는 不滅하는 民族魂의 象徵 날이 갈수록 그 忠誠 세로워라" 祖國의 山野여 勇士를 잠 제우소서 碑 木 超然이 쓸고 간 깊은 溪谷 깊은 계곡 陽地 녘에 비바람 긴 歲月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碑木이여 먼 故鄕 초동親舊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寂寞感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碑木이여 그 옛날 天眞스런 追憶은..
喬桐島(大龍市場,邑城,鄕校,燕山君流配地) 교동도 (喬桐島) 60 ~70年代를 생각하게 하는 時間 멈춤의 場所 喬桐大橋 교동읍성 (喬桐邑城) 朝鮮 仁朝 7年 (1629) 喬桐에 京機水營을 設置할때 돌로 쌓은 邑城이다. 둘레 430 m 높이 6 m 規模로 세개의 門을 내고 門樓를 세웠는데 東門은 東深樓,南門은 儒林樓.北門은 孔墨樓라 하였다. 英朝 29年 (1763) 여장을 고쳐 쌓았고 高宗 21年 (1884)에는 南門을 다시 고쳤다. 東門과 北門이 언제 없어졌는지 알수없으며 南門은 1921년 暴風으로 무너지고 虹霓門만 남았다. 쌍화차 (雙和茶) 雙和茶의 材料는 대추 200g,白芍藥 200g,當歸 150g,천궁 150g,熟地黃 150g,黃芪 150g,桂皮 100g,甘草 100g,乾薑 100g,葛根 20g이 들어갑니다. 雙和茶는 疲勞回復,身體,精神 安..
群山(京岩洞철길마을) 마당으로 기차가 지나던 群山京岩洞철길마을 銃 길이 2.5 km인 이 철길은 1944 年 4 月 1 日 新聞用紙 製造業體인 paperKorea(株)가 生産品과 原料를 실러나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5 ~ 10량의 container와 box 車輛이 連結된 貨物列車가 午前 8시 30분 ~ 9시 30분 午前 10시 30 분 ~ 12시 사이에 마을을 지나갔고 마을 中間 遮斷機가 있는곳과 없는곳 모두 합쳐 건널목이 열한개나 되었고 사람사는 동네를 지나야 했기 때문에 速度가 느렸다. 汽車가 지나갈때 에는 驛務員 세명이 汽車앞에 타서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을 쳐 사람들의 通行을 막았으며 그 사이 住民들은 밖에 널어놓았던 고추등 세간을 들여놓고 강아지도 집으로 불러들였다. 時速 10km 정도의 느린 列車는 2008년 7월 ..
束草 (아바이마을) 속 초 (아바이마을) 本來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곳이었으나, 收復 以後 避難民들의 居住로 마을이 形成되어 束草里 5 구가 되었다가, 靑湖洞 으로 바뀜. 靑湖라는 이름은 靑草湖에서 온 것이 틀림 없다. 靑湖洞에는 咸鏡道에서 내려온 避難民들이 많이 居住하는 까닭으로, 咸鏡道 사투리 '아바이'를 使用하여 '아바이 마을'이라고도 한다. [출처 : 束草文化院 『束草地名硏究』中에서 引用] 아바이마을 入口 가을童話 撮影場 황소상 束草의 地形이 와우형(와우형:소가누워있는형상) 으로 소가 누어서는 맘대로 풀을 띁지 못하기 때문에 풀을 묶어서 소가 먹도록 해야 한다는 속초(束草)의 地名 說話에 着眼하여 設置한 象徵物로 황소는 힘과 통요 를 象徵하는 動物로 束草의 無限한 繁榮과 發展을 祈願 갯배 이곳은 朝陽洞으로 進入하..
襄陽(河趙臺) 하조대 (河趙臺) 하조대 (河趙臺) 朝鮮의 開國功臣인 河崙과 趙浚이 이곳에서 잠시 隱居 하였다. 하여 두사람의 性을 따서 河趙臺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朝鮮 正宗때 亭子를 建立하였으나 頹落하여 撤廢되었으며 數次例 重修를 거듭하여 1940년에 8角亭을 建立하였으나 韓國戰爭때 불에 탄것을 1955년과 1968년에 각각 再建되었다. 河趙臺는 東海바다의 絶景을 볼수있는 돌축된 만의 頂上部에 位置하여 빼어난 景致를 자랑하고 있는곳이다. 現在의 建物은 1998년 解體復原한 建物로서 初翼工 굴도리樣式의 六母停으로 지붕에 節甁桶을 얹어 소나무와 함께 주위의 自然景觀과 잘 어울이고 있으며 亭子角 앞에는 朝鮮 肅宗때 參判 벼슬을 지낸 李世槿이 쓴 河趙臺 3字가 巖角된 바위가 있다. 이곳은 隣接한 河趙臺 海水浴場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