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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 憶 時 節/撮 映 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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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祚榮(束草撮映場) 대조영 (大祚榮) 王號는 고왕(高王). 아버지는 걸걸중상(乞乞仲象)이다. 그러나 그의 家系나 高句麗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社會的 地位에 대해서는 記錄이 一致하지 않는다. 〈구당서 舊唐書〉 발해전(渤海傳)에는 그를 高句麗人의 別種이라고 했고, 〈신당서 新唐書〉 渤海傳에는 元來 속말말갈(粟末靺鞨)의 族屬인데 나중에 高句麗에 附屬되었다고 했으며, 유득공(柳得恭)의 〈발해고 渤海考〉를 비롯한 우리의 先人들은 모두 그를 高句麗인으로 보고 있다.
聞慶鳥嶺.撮影地 문경새재 (聞慶鳥嶺)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漢江과 洛東江流域을 잇는 嶺南大路上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社會 文化 經濟의 流通과 國防相의 要衝地였다.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文獻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 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壬辰倭亂 뒤에 이곳에 3개(主屹關, 鳥谷關, 鳥嶺關)의 關門(史蹟 제 147호)을 設置하여 國防의 要塞로 삼았다. 이 곳은 自然景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遺跡과 說話·민요 등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 곳에는 나그네의 宿所인 원터, 신구 慶尙道觀察使가 官印을 주고 받았다는 交..
高句麗宮 고구려궁 (高句麗宮) 왼쪽산길을 올라가면 드라마에서 가장 重要한 地域으로 비춰지는 高句麗宮이다 넓은 공터를 앞마당마냥 기세좋게 서 잇고 안쪽에는 繁華한 궁박마을 風景이 펼쳐진다 거리 오른쪽 뒤에는 蓮胎祖의 집과 다른 욕실들의집 그리고 대장간이 나란히 꾸며져 있다 철저한 고중을 거쳐 지었다는 宮은 제법 위세가 있어 보인다. 高句麗宮 뒤쪽에는 新羅宮이 이어지고 그 뒤로는 金庾信과 金春秋의 家宅이 세워져 있다. 실제 現存하는 高句麗 城의 踏査와 수 개월간의 資料助辭를 거쳐 充分한 考證을 바탕으로 古建築復原工法을 通해 정교하게 再現한 세트장이다. 가은오픈세트장은 高句麗 古墳壁畵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色彩感을 代入하여 高句麗의 進就的인 氣象을 現在라는 時間 속에 聞慶이라는 空簡을 通해 表現하였다. SBS 淵蓋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