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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1/朝鮮王妃陵

朝鮮王祖/宗廟

 

 朝鮮王祖 500

 

朝鮮王妃 神主를 모신

宗 廟

 

 

宗廟는 儒學을 基盤으로 建國한 朝鮮王朝가 歷代 王과 王妃 그리고 추존된 王과 王妃의 神主를 모시고 祭祀를 奉行하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正殿을 宗廟라 하였으나 현재는 正殿과 永寧殿을 합쳐 宗廟라부른다. 正殿과 永寧殿은  長石과 技巧를 節制하여 단조로워 보이지만 이는 王室의 祭祀를 모시는 空間이기에 尊嚴하고 神聖한 雰圍氣를 위한 意圖的인 裝置이다. 正殿에는 태조의 神主를 비롯하여 功德이 있는 歷代  王과 王妃 49분의 神主를 모시고 있고 永寧殿에는 太祖의 4 대조를 비롯하여 朝鮮의  王과 王妃 그리고 推尊된  王과 王妃 34 분의 神主를 모시고 있다. 宗廟는 建物과 더불어 建物및 祭禮樂을 그대로  保存하고 있다. 이러한 理由로 宗廟는 1995 년에 UNESCO 世界遺産 으로 登載되었고 宗廟제례및 宗廟祭禮樂은 2001 년에 人類無形 文化遺産 으로 登載 되었다.

 

 

 

종묘대제

宗廟大祭

 

宗廟大祭는 朝鮮王朝의 祠堂인 宗廟에서 歷代王과 王妃의 神主를 모시고 祭祀를 지내는 儀禮로 봄,여름,가을,겨울 납일등 1년에 5 번 지냈으나 現在는 每年 5월 첫번째 일요일과 11월 첫번째  土曜日에 奉行되고 있다. 祭享意識 뿐 아니라 祭禮樂과 佾舞등 無形의 世界遺産을 感想할수 있는 宗廟大祭는 世界的으로 보기드문 綜合的인 儀禮 이다. 

 

 

참도

(參道)

 

紅箭門에서 丁字閣까지 이어진길 薄石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이 약간 높은 길은 神 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신도 (神道)라고하며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도 (御道)라고 한다.

 

정 전

正殿

 

正殿은 宗廟의 中心部分으로 긴 正殿의 앞에는 넓은 月臺 를 두었고 四方으로 담장 둘렀다. 南쪽 神門으로는 魂靈이 東門동문으로는  임금을 비롯한 祭官들이 西門으로는 祭禮樂을 演奏하는 樂工과 춤을 추는 佾舞員(宗廟祭禮때 여러줄로서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出入 했다. 1395 년에 신설 7칸의 規模로 처음 만들어졌고, 여러차례 늘려 지어 現在에는 19 칸에 이르는 매우긴 木造建物이 되었다.  거친 우러대 바닥과 그위로 육중한 지붕이 떠있는 모습은 崇高하고 古典的인 建築美의 極致를 보여준다. 南쪽 담장 안에는 功臣堂 七祀堂을 각각 東쪽과 西쪽에 세웠으며 西門 밖에는 祭禮樂을 準備하는 樂工廳을 두었다. 

 

칠사당

七祀堂 

 

작은 문으로 들어서며 서쪽부터 사명지신(司命之神), 사호지신(司戶之神), 사조지신(司窕之神), 중류지신(中霤之神), 국문지신(國門之神), 공려지신( 公蠣之神), 국행지신(國行之神) 등 일상생활과 관련있는 일곱 신을 모시고 국가 안위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사명지신(司命之神)은 인간의 운명과 만물의 생명을 주관하는 신으로 봄철에 제사를 드리고,

사호지신(司戶之神)은 집, 출입을 주관하는 신으로 역시 봄철에 제사를 드리며,

사조지신(司窕之神)은 부엌이나 음식을 주관하는 신으로 여름철에 제사를 드리고,

중류지신(中霤之神)은 거처를 주관하는 토지의 신으로 여름(6월)철에 제사를 드리고.

국문지신(國門之神)은 관문, 문(門)을 주관하는 신으로 가을철철에 제사를 드리고, ,

공려지신( 公蠣之神)은 살상과 형벌을 주관하는 신으로 역시 가을철에 제사를 드리고, ,

국행지신(國行之神)은 도로의 행작(行作)을 주관하는 신으로 겨울철에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종묘제례때와 음력6월 정한 날에 하나 또는 두 신에게제사를 지냄으로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기원했다고 한다.

 

七祀堂은 일곱의 작은 신들에게 왕실과 궁궐의 모든 일과 만백성의 생활이 아무탈없이 잘 풀리도록 기원하는 사당이다.  칠사는 봄의 司命과 司戶. 여름의 司窕  中霤 . 가을의 國門 , 겨울의 國行을 이르는 말 이다. 七祀사에게 지내는 제사는 토속 신앙과 유교사상을 결합된 국가의 의례였다.

 

신 로

神路

 

神路는 宗廟祭禮등 意識을 위해 만든길이다. 가운데가 약간 높고 양옆이 약간 낮은 세길중 가운데길은 神主와 香. 祝이 들어가는 神路 東側의 길은 王이 다니는 御路 西側의 길은 世子가 다니는 世子路 이다. 神路는 外大門 안에서 正殿과 永寧殿의 南神門 밖까지는 거칠고 널찍한薄石으로 南神門  안에서 上月臺 아래 까지는 전석으로 設置되었다. 御路와  世子路 는 齋宮으로 이어진 다음 正殿과 永寧殿 東門안 上月臺 아래까지  設置 되었다.  

 

 

재 궁

齋宮

 

齋宮은 임금이 世子와 함께 祭祀를 準備하던 곳으로 御齋室 또는 御宿室 이라고 불린다. 北쪽에 임금이 머무는  御齋室 東쪽에는  世子가 머무는  世子齋室 西쪽에  御沐浴廳이 있다. 임금과 世子齋宮 正門으로 들어와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후 西門으로 나와서 正殿의 東門으로 들어가 祭禮를 올렸다.

 

 

향대청

香大廳

 

祭禮에 바칠 香.  祝文. 幣帛 (香祝)을 保管하고 祭禮를 主觀하는 祭官들이 待期하던 곳이다. 또한 祭禮에 從事하는 執事들의 執事廳도 딸려 있다. 정면 9.5칸의 긴 建物이며 앞에는 行脚이 놓여 있어 南北으로 긴 뜰이 만들어 졌다. 南쪽의 望廟樓祭禮를 지낼때 임금이 잠시 머물며 앞선 임금들의 功德을 기리던 곳이다. 望廟樓 앞쪽에 연못을 만들었고 뒤쪽에 恭愍王 神堂을 두었다.

 

 

공민왕 신당

恭愍王神堂

 

高麗 제 31 대 恭愍王과 王妃인 魯國大長公主의  影幀을 모신 祠堂 이다. 正式이름은 高麗 恭愍王 影幀奉安摯堂 이다. 恭愍王은 元나라를 물리쳐 나라의 主權과 領土를 되찾고 안으로 改革政治를 폈으며  個人으로서 藝術的 才能이 뛰어난 임금이다. 恭愍王이 친히 그렸다고 傳하는 말 그림도 祠堂  안에 있다. 朝鮮王朝 最高 祠堂 인 宗廟에 高麗 을 모셨다는 점이 특이 하지만 그 이유는 正確히 알수 없다.

 

 

 

恭愍王王妃魯國大長公主

 

 

祭享을 받으실 對象의 呼稱과 追慕글을 적은 文書이다.

 

 

정 전

正殿

 

正殿은 宗廟의 中心部分으로 긴 正殿의 앞에는 넓은 月臺 를 두었고 四方으로 담장 둘렀다. 南쪽 神門으로는 魂靈이 東門동문으로는  임금을 비롯한 祭官들이 西門으로는 祭禮樂을 演奏하는 樂工과 춤을 추는 佾舞員(宗廟祭禮때 여러줄로서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出入 했다. 1395 년에 신설 7칸의 規模로 처음 만들어졌고, 여러차례 늘려 지어 現在에는 19 칸에 이르는 매우긴 木造建物이 되었다.  거친 우러대 바닥과 그위로 육중한 지붕이 떠있는 모습은 崇高하고 古典的인 建築美의 極致를 보여준다. 南쪽 담장 안에는 功臣堂七祀堂을 각각 東쪽과 西쪽에 세웠으며 西門 밖에는 祭禮樂을 準備하는 樂工廳을 두었다. 

 

 

영녕전

永寧殿

 

永寧殿은 正殿에 있던 神主를 옮겨 모시기위해 1421 년 지은 建物로 永寧은  王家의 子孫이  길이 平安하라 는 뜻이다. 施設과 空間 形式은 正殿과 類似하지만 正殿보다 規模가 작고 좀더 親密하게 지어졌다. 正殿과 類似하게 2 중으로 된 月臺 周圍에 담장을 두르고  東쪽, 南쪽, 西쪽 세곳에 門을 두었다. 元來  6칸 規模였으나 여러 차례 左右에 칸을 만들어 現在  神室은 모두 16 칸 이다.  가운데 4 칸은 太祖의 4 대조를 모신 곳으로 左右 夾室보다 지붕이 높다. 東쪽에는 祭祀道具를 保管하는 祭器庫를  西南쪽 바깥에는 祭禮樂을 準備하는 小樂工廳을 두었다.

 

 

종묘제례악

宗廟祭禮樂

 

宗廟祭禮樂은 宗廟祭禮 意識에 맞추어 演奏하는 것으로 器樂, 노래, 춤이 어우려지는 綜合藝術이다. 樂器 演奏에 맞추어 先王의 功德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열을 맞추어 추는 佾舞를 춘다. 宗廟祭禮樂은 1964 년 重要無形文化財 제 1호로 指定되었고 2001년 에 宗廟祭禮와 더불어 UNESCO 人類無形遺産 으로 登載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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