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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旅 旅 行/國 內

烏頭山 統一展望台

오두산통일전망대

(烏頭山統一展望台)

 

 

우리 統一 展望臺는 1992년 9월 8일 開館 以後 대國民 統一 弘報 및 安保敎育場으로 技能을 다하기 위하여 最先의 努力을 競走하여 왔습니다. 그동안 우리 烏頭山統一展望台는 內國人,外國人에게 戰爭의 恐怖내지 平和의 重要性을 일깨우는 分斷 最一線의 學習場所이자 독특한 文化 生態를 體驗할 수 있는 空簡으로 자리매김하고, 특히 1천만 失鄕民의 만남의 場이며 마음의 故鄕으로, 統一展望臺에 들어서면 가슴 찡해지는 엄숙한 離散의 한을 달래는 場으로 定着하여 왔습니다. 統一 展望臺 設立後 15여년이 지나면서 누적 觀覽客 약 1,500만명에 이르는 등 많은 訪問客이 往來하여 分斷의 아픔을 實感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現場 으로 技能을 다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南北關係의 漸進的 變化, 주 5일 勤務의 擴散등 時代的, 社會的 環境 變化는 顧客들에게 새로운 感動의 體驗을 주는 장 으로서의 變化를 要求받고 있습니다. 이에 符應하여 오두산 統一展望臺에서는 셔틀버스 내에서나 展望臺 廣場에서 北녘의 民謠와 노래를 들려주고, 2층 映像室에서는 傳統춤과 季節춤등 北녘 生活과 文化에 대한 映像물 上映으로 訪問客의 갈채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高性能望遠鏡을 통한 北녘마을(임한리) 觀望 및 傳問 要員들의 具體的인 브리핑을 통해『南ㆍ北의 和解協力에 대한 理解』를 돕고자 努力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通하여 烏頭山統一展望台의 모든 것에대하여 恒常 訪問客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北녘의 그리운 山河를 바라보면서 좀더 多樣하고 즐거운 觀覽과 休息處가 될 수 있도록 最先의 勞力을 다 할 것을 約束드리며, 많은 觀心과 訪問이 있으시 길 期待합니다.

 

 

망배단

(望拜壇)

 

失鄕民을 위한 휴전선(休戰線)북쪽에 故鄕을 가진 실향민(失鄕民)들이 설날과 秋夕등 家族이 보고싶을때 故鄕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이곳에서 이북(以北)에 계신 父母,祖上에게 배례(拜禮)하는 場所로 失鄕民들이 자주찾는 곳입니다.

 

 

고당조만식

(曺晩植)

 

先生은 1883년 2월 1 일 平南 江西郡 에서 나시었다. 평양숭실(平壤崇實)中學校와 日本 明治大學 法學科를 卒業後 많은 독립지도자(獨立智導者)가 海外로 떠나버린 이 고난(苦難)의 땅에서  애국애족 (愛國愛族)活動을 하셨다. 강서모락장 3. 1 萬歲 運動後 투옥(投獄)되었고 정주 오산(五山)中學校長 YMCA 總務 朝鮮物産장려회 (朝鮮物産奬勵會)創立會場  崇仁商業學校 設立理事長 關西體育會長 朝鮮日報社長을 歷任하며 民族을 일깨우고 日帝에 대한 非暴力 抵抗運動을 펴셨다.解放後 北韓의 민족영도자(民族領導者)로 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을 創黨해 自由民主統一국가(自由民主統一國家)를 建設하려고 蘇聯軍政과 공산당(共産黨)과 맞싸우다 끝내 순국(殉國) 하셨다. 北韓同抱를 버리고 나만이 월남(越南)할수 없다는 決心을 先生은 죽음으로 지키셨다.  그것이 1950년 일이다 1970 년 大韓民國 건국훈장(建國勳章)을 받으시다.

 

 

한강

(漢江)

 

流量을 基準으로 할 경우 南韓에서 가장 規模가 크다. 重上流地方은 높은 山地로 되어 있어서 年降水量이 1,200~1,300 ㎜에 이르는 다우지이기 때문에 流量이 豊富하다. 流域面積은 2만 6,018 ㎢로 韓半島에서 鴨綠江·豆滿江 다음으로 넓고, 流路延長은 497.25 ㎢로 鴨綠江·豆滿江·洛東江 다음으로 길다. 漢江의 本流는 京畿道 楊平郡의 兩水理에서 비슷한 크기의 南漢江과 北漢江이 만나서 이루어진다.   左側은 金浦半島 입니다. 漢江과 臨津江이 합쳐지는 合水머리 입니다 이곳을거친 물은 저멀리 보이는 江華島 앞 바다에 倒着합니다.

 

 

統一의피아노

 

休戰線은 우리가 分斷을 말할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事物이다.  또한 休戰線은 分斷뿐만 아니라 休戰狀態인 南北의 緊張感과 對立을 象徵하기 때문에 이것을 다른용도로 사용한다는 생각을 하는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逆說的으로 이러한  分斷對立의 象徵을 利用해 平和的 和合을 노래 한다면 어떨까?  鐵條網이 만들내는 鈍濁하고 거친 不協和音은 한 民族이지만 떨어져 있을수밖에 없는 우리의 恨을 노래하는  同時에 아직 穩全치 않은 南北의 狀況을 表現 한다고 볼수 있다.

 

 

希望의하늘

 

烏頭山統一展望台 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누군가에게는 70 年前을 떠올리며 悽絶했을

怨望의 하늘이고

또 다른이에게는 過去를 그리워했을

懇切한 하늘이다. 

오늘

統一을 念願하며

希望의 하늘을 올려다 본다. 

 

 

烏頭山統一展望台에서 北韓을 바라보는 童心은?

 

 

未來 希望의 KTX 서울 ~ 平壤 ~ 파리

 

 

대 화

 

멀리서 서로가 對話 할수 있도록..... 南韓과 北韓의 대화는 韓半島 平和에 있어서 絶對的으로 要求되는 必要條件이다. 북녘이 보이는 이곳 烏頭山統一展望台에서 북녘의 家族에게 親舊에게 對話를 試圖해 보자 그리고 함께 이곳을 訪問한 家族끼리 親舊끼리 對話하는 유쾌한 經驗을 해보자 作品에 使用된 鐵條網은 南北을 가로 막았던 鐵條網이며 다섯개의 壁은 南남 과 北을 가로막고 있는 5개의 鐵柵線(民間統制線, 2중으로된 南方限界線, 休戰線, 北方限界線)을 象徵한다.

 

 

平和로운 和合 ~ 함께하다.

 

 

희 망

 

希望이라는 title로 世上 모든 이들에게 삶의 希望과 治癒를 傳達하는 彫刻家 이다. 삶의 危機속 에서 偶然히 올려다본 하늘은 고된 日常에 慰安이 되었고 現實에 맞설수 있었던 힘이 된것이다. 作家는 이러한 個人的인 經驗을 作品으로 擴張하여 觀客들과 共有하고자 한다.  作家특유의 예민한 視線으로 捕捉한 찰나의 아름다움을 撮影한 後 차곡차곡 쌓은 數千番의  레진미띠에르 위에 펼쳐진 하늘의 風光은 希望의 感情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作家의 感情을 透明한 하늘 image는 觀覽者의 視線을 作品앞에 머무르게 하여 時空間을 共有하게 한다. 

 

 

안중근

(安重根) 追慕臺

 

大韓帝國의 敎育家,獨立運動家, 大韓義兵 參謀中將이다. 本官은順興, 高麗朝 名賢 安享의 26代孫이다. 1905년 朝鮮을 事實上 日本의 植民地로 만든 乙巳條約이 締結된 것에 抵抗해, 獨立 運動에 投身한 그는 1909년 10월 26일에 中國 하얼빈 驛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狙擊, 射殺했다. 어려서 안응칠(安膺七)이라는 兒名으로 불렸으며, 독실한 天主敎 信者였던 그의 洗禮名은 使徒 성 토마스의 이름을 딴 토마스였다. 그래서 安重根 토마스(혹은 도마 安重根)라고도 불린다.

 

안중근의최후유언

(安重根의最後遺言)

 

 

내가 죽은뒤에 나의 뼈(骨)를 하얼빈 公園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國權이 回復되거든 故國으로 반장(搬葬)해다고

 

나는 천국(天國)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廻復)을 위해 힘쓸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同抱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責任)을지고 국민(國民)된 의무(義務)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功勞)를 세우고 업(業)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大韓獨立)의 소리가 天國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萬歲)를 부를것이다.

 

 

점심은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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