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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旅 旅 行/國 內

釜山(Busan City Tour)

 

Busan City Tour

 

 

幸信에서 ktx 로 釜山旅行을 始作 하려고 합니다. 旅行의 설래움을 안고 列車에 昇車 光明驛에서 一行을 만나 즐거운 對話를 나누며 對馬島 旅行 始作 ~  ~  ~  ~  마치고 ...  釜山에 到着 city tour 始作  淸明한 하늘과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저멀리 水平線을 보니 점점이 떠있는 수많은 배들은  우리나라의 國力을 보는것 같다. 스트레스가 확 날라가 버립니다.  우리의 庶民들과 韓國戰爭의 産物인 國際市場(깡통시장)과 자갈치市場을 보고 生鮮구이로 저녁을 뚝닥 解決하고 海雲臺의 夜景과 光眼大橋에서 지는 저녁노을을 感想하고 The Westin osun Hotel 을 바라보니 40 여年前의 追憶이 生角 남니다. 追憶을 뒤로하고 달맞이 一帶의 絶景에 감탄을 하고  아침식사는 우리나라 固有의 飮食중 아주 謙遜한 돼지국밥으로 解決하고  二妓臺 바다 바람과 햐얀 포말과에 調和롭게 철석거리는 波濤소리와 海岸 絶景에 心醉하며 걷는다. 즐겁고 記憶에 남는 旅行을 追求하는 박인태님의 努力에 感謝하고 安全하고 즐거운 旅行 이었읍니다. 다음에 만날때를 期約하며  안녕  

 

 

 

釜山驛

 

釜山벗꽃

Busan City Tour

 

자갈치市場

 

釜山港大橋

 

이기대

(二妓臺)

 

二妓臺의 이름은 東萊營誌에 나타난다. 東來領地는 朝鮮時代 左水營의 歷史와 地理를 昭詳히 紹介하고 있으며 左水使로 있던 이형하 (1850)가 終戰의 記錄을 土臺로 補充 收集하여 記錄한 冊이다. 이 東萊營誌 중 山川을 밝힌 部分에 二妓臺라고 적고 左營南十五里 上有 二妓몽云 (左水營에서 南쪽으로 15리에 있다. 위에 두 妓生의 무덤이 있어서 그리 말한다)고 했을뿐 具體的인 內容은 없다.  鄕土史學者 崔漢福의 말로는 壬辰倭亂 때 倭軍이 水營城을 陷落시키고는 景致좋은 이곳에서 祝賀잔치를 열었는데 水營의 妓女 두 사람이 찬치에 參加 했다가 倭將에게 술을 勸하고 술 취한 倭將과 함께 물에 빠져죽었다는 것이다. 그 두妓生이 이곳에 묻혀 있어서 二妓臺 라고 한다고 하나 그에 대한 姿勢한것은 알수없다.

 

 

오륙도

(五六島)

 

五六島는 陸地인 蠅頭末로 부터 南南東으로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는 바위섬들로 2007년 10월 1일 文化財廳에서 國家名勝 제 24 호로 指定 하였다. 12 萬年前 까지는 陸地와 이어진 작은 半島였던것이 오랜時間 거센波濤의 侵蝕 作用으로 陸地에서 分利되어 지금의 모습이 形成된것으로 推定된다. 1740년 編纂된 東萊府誌 山川條에 오륙도는 絶影島 東쪽에 있다. 峰우리와 외의 模樣이 奇異하고 바다가운데 나란히 서 있으니 東쪽에서 보면 여섯 峰우리가되고 西쪽에서 보면 다섯峰우리가 되어 이렇게 이름한것이다. 라 記錄된 바와 같이 보는 位置와 方向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데서 由來한 것이라 한다.

 

 

해운대동백섬

(海雲臺冬栢島)

 

冬柏나무가 自生하는 南海岸에는 冬柏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많다. 지금 海雲臺區의 海雲臺도 통친은 冬柏섬 이다. 冬柏섬은 예부터 겨울철에 冬柏이 至賤으로 피어 꽃方席을 이루고 바다와 구름 달과 山이 한데 어울렸던 곳이다. 이곳은 옛날에는 섬이었으나 長山瀑布을 흘러내린 물과 조동 東쪽 復興峰에서 내려온 물이 合流한 春川이 좌동,중동,우동지역의 充適評野의 모래를 실어 내려서 陸地와 連結된 陸繫島이다. 이곳은 崔致遠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遺跡地일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景觀이 매우 빼어나 有名한 詩人 墨客들이 즐겨 찿는 곳이다. 지금 冬柏섬 周圍에는 海松이 울창하고 섬의 頂上에는 崔致遠先生의 銅像과 記念碑가 세워져 있다.

 

 

누리마루 APEC 하우스

 

제 13차  APEC 頂上會談 會議場 으로 使用하기 위해 冬柏섬에 세운 建築物이다. 建物全體 造型은 韓國傳統 建築인 亭子를 現代式으로 表現하였고 지붕은 冬柏섬의 稜線을 形象化 하였다. 外部 四線 기둥 (12개)은 Dynamic Busan 의 逆動性을 나타내고 內部粧飾은 韓國의 創造的 傳統文化를 視覺的으로 表現하였다. 國內外 言論에 의해 歷代 會議場 가운데 風光이 가장 뛰어난 곳으로 評價되고 있다.

 

 

2005 APEC 제2차정상회의장

 

이 곳은 2005년   APEC 頂上會義 당시 2차 頂上會義가 열렸던 場所 입니다.

 

 

고운최치원선생상

(孤雲崔致遠先生像)

 

先生은 新羅 憲安王 첫해 서기 857년 慶州 南川가에 나서 12세에 唐나라로 留學을 가셨다. 18세에 科擧에 登科하여 慄水縣慰가 되고 25세에 討黃巢檄文을 지어 中原 文壇을 흔들고 侍御史 벼슬과 紫金漁袋의 하사를 받아 外國사람으로서 젊은 나이에 큰 榮光과 氣焰을 吐했다.  28세에 故國에 돌아와 侍讀이 되었다가 嫉妬를 입어 泰仁,咸陽,瑞山등 여러 고을 太守로 나돌면서도 名文과 名詩를 많이 남기셨다. 37세에 政治의 急先務를 아뢰어 阿飡의 職位를 얻었으나 기울어가는 國運을 求할길 없어 벼슬을 버리고 40세로 放浪의 몸이되어 全國여러곳을 다니시다가 마지막에는 妻子를 이끌고 伽倻山 -  陜川으로 들어가 갓과 신을 숲속에 남긴채 가신곳을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둿날 高麗朝에 이르러 海東儒學의 始祖로 받들고 文昌候의 詩號를 내리시니 그 道德과 學文을 崇尙해 마지 않았다.

 

 

최치원기념비

(崔致遠記念碑)

 

해운대 해수욕장

(海雲臺 海水浴場)

 

해운대 해수욕장

(海雲臺 海水浴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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