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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歷 史 物

漣川高浪浦口歷史公園

연천고랑포구역사공원

(漣川高浪浦口歷史公園)

 

 

燦爛한 歷史의 現場을 만나다.

 

三國時代부터 戰略的 要衝地로 臨津江을  通한 物資交流의 中心役割 을 하던 나루터 입니다. 1930 년대 開城과 漢城의 物資交流를 通하여 和信百貨店의 分店이 자리잡을 程度로 繁盛 하였으나  6. 25 戰爭과  南北 分斷으로 衰落 하였읍니다.  

 

 

 

레클리스

(Staff Sgt.Reckless)

 

레클리스 下士. 通稱 레클리스(1948 ~ 1968)는 美軍에 公式的으로 登載된 韓國戰爭에서 용감하게 活躍했던 軍馬 이다. 

 

 

서울 ~ 文山間 高速國道

 

 

레클리스

(Staff Sgt.Reckless)

 

레클리스 下士. 通稱 레클리스(1948 ~ 1968)는 美軍에 公式的으로 登載된 韓國戰爭에서 용감하게 活躍했던 軍馬 이다.  韓國에서 아침해 라는 이름의 競走馬로 活動하다. 1952 년 美國 海兵隊에 入隊 하면서 레클리스 라는 이름을 얻고 戰爭터에서  活躍했다. 특히 1953 년 京畿道 漣川에서 海兵隊와 中共軍의 네바다 前哨 戰鬪에서는 사람의 도움없이 하루에 약 15 차례 彈藥을 실어 날났으며. 이 功勞를 認定받아 武功勳章등 5개의 勳章을 받았다.  1959 년 에는 美軍 最初로 말 下士官으로 進級했다. 

 

 

和信 百貨店

 

1930 년대  開城과 漢城의 物資交流를  通하여 和信 百貨店 의 分店이 자리잡을 程度로 繁盛 하였다.

 

 

국 밥

 

국밥에 막걸리 

 

호로고루

瓠蘆古壘

 

 

1. 高句麗 體性壁   2.  高句麗 補充城壁   3. 新羅 體性壁    4. 新羅 1次 稚    5. 新羅  2次 稚   6. 新羅 補充城壁

 

 

연천호로고루동벽

漣川 瓠蘆古壘東壁

 

瓠蘆古壘 東壁은 平地로 이어져 敵의 侵入이 쉬운 城의 東쪽 부분을 防禦하는 城壁이다. 城壁은 높이가 10 m 길이가 90 m 에 달할 程度에서  마을住民들이 城이 아니고 재미산 이라고 부를 程度로 雄壯하다.  東壁을 만드는데 들어간 흙과 돌의 量이 大略 15,996 ㎢에 달한다고 하니 엄청난 土木工事로 만들어졌음을 알수 있다. 

 

 

연천호로고루동벽

漣川 瓠蘆古壘東壁

 

瓠蘆古壘 東壁은 高句麗에 의해 처음 만들어져 使用되었지만 668 년 高句麗가 滅亡하고 이어 벌어진 羅唐戰爭에서 新羅가 勝利하자 新羅가 占領하여 使用하였다.  新羅軍이 占領할 당시 瓠蘆古壘 東壁은 오랜戰爭으로 말미암아 城壁의 곳곳이 무너져 保守가 必要한 狀況 이었다.  新羅군은 高句麗 城壁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둔 狀態에서 城壁을 덧붙여 쌓는 方式으로 保守 하였는데 高句麗 城壁은 新羅城壁에가려져 그 모습을 確認할수 없었다. 그러나 韓國戰爭 당시 人民軍 砲隊가 設置되면서 城壁의 뒷부분과  南쪽 부분이 크게 毁損 되었고 高句麗 遺跡으로 알려지기 以前 마을 住民이 뱀을 잡기위해 重裝備로 南쪽 치(稚)의 上部를 무너뜨리는 過程에서 高句麗 城壁 一部가 外部로 露出되게 되었다. 所重한 文化遺産이 後代에 人爲的인 原因으로 毁損된것은 안타가운 일이지만 瓠蘆古壘 東壁은 한곳에서 高句麗와 新羅의 城壁을 모두 觀察할수있는 보기드문 場所가 되었다.  

 

 

연천호로고루동벽

瓠蘆古壘東壁南稚

 

치(稚)는 敵을 側面에서 攻擊할수 있도록 城壁 앞으로 내어 쌓은 構造를 말하는데 瓠蘆古壘 東壁에는 南쪽과 북쪽에 두개의 치(稚)가 있다. 南쪽 치는 城壁上部가 毁損되면서 內部의모습이 겉으로 들어나 城壁의 構造를 살펴볼수 있다. 치(稚)의 第一 안쪽 가장 안쪽 가장 높은 城壁은 高句麗의 體性壁으로 바깥쪽에 기대어 쌓은 補充城壁 으로  保護되고 있다.  高句麗 補築城壁에서 바깥쪽으로 약간의 間隔을 두고 片麻巖으로 쌓은 城壁이 보이는데 이는 後代의 新羅가 쌓은 城壁이다. 이 城壁 앞으로 네모나게 바깥쪽으로 내어 쌓은 城壁이 있다. 이것이 東壁의 南쪽 치(稚)다. 치(稚)는 다시 玄武巖의 基礎를 가진 半圓形의 城壁으로 다시 돌려져 있는데 치(稚)를 修理하는 課程에서 追加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高句麗 城壁은 95 % 以上이 周邊에서 쉽게 求할수 있는 玄武巖으로 쌓는데 반해 新羅城壁은 周邊에서 구하기 어려운  片麻巖이 使用되었다.  玄武巖은 돌이 질기고 깨기가 힘들어 다루기가 쉽지 않은데 오랫동안 臨津江 一帶를 支配하며 玄武巖을 다루는 技術을 터득한 高句麗의 石工들에 비해 새롭게 臨津江 地域을 次知한 新羅의 石工들은 그 技術을 短期間에 익힐수가 없어서 다루는데 익숙한  片麻巖을 멀리서 가져와 城壁을 쌓는 受苦를 했다고 한다.

 

 

솟 대

 

솟대는 地域이나 目的에 따라 짐대·소줏대·표줏대·솔대·거릿대·수살목·서낭대 등 여러 가지 名稱이 있다. 形態도 多樣하여 一時的인 것과 永久的인 것, 家庭이나 個人 信仰의 對象인 것에서 村落 또는 地域을 위한 것 등이 있다. 솟대가 守護神의 象徵이라는 点과 聖域의 象徵 또는 警戒나 里程標 등의 技能이 있는 것은 장승과 마찬가지 이다.

 

 

黃布 돛배

 

널찍한 노란색 돛을 펼치고 바람을 따라 臨津江을 유유히 지나가는 黃布돛배. 朝鮮時代 主要 運送手段 이었던 黃布돛배를 타고  臨津江 두지리에서 자장리까지 약 45분간  臨津江 赤壁의 絶景을 感想해보자. 坡州 黃布돛배는 朝鮮時代 당시의 모습을 原形 그대로 되살려낸 것으로 旅行客들에게 즐거운 時間旅行을 膳賜한다. 黃布돛배 위에 몸을 실으면 두지船着場을 出發해 원당리赤壁, 瓠蘆古壘城, 고랑포여울목 등 數十年 間 民間人의 出入이 統制되었던  臨津江 의 아름다운 景致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

 

 

임진강주상절리

臨津江柱狀節理

 

臨津江과 漢灘江이 만나는 合水머리(도감포)에서부터 北쪽으로 臨津江을 거슬러 마치 屛風을 쳐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垂直의 柱狀節理가 수 킬로미터에 걸쳐 發達해 있는 國內에서도 唯一한 곳이다. 北韓 平康郡 오리산과 680m 高地에서 噴出한 鎔巖은 옛 漢灘江의 낮은 大地를 메우며 鐵原 - 抱川 - 漣川 一帶에 넓은 鎔巖大地를 形成하였고 臨津江을 만나 臨津江 上流쪽으로 逆流하면서 玄武巖層을 만들었습니다. 火山活動이 끝난 後 鎔巖大地가 江의 浸蝕을 받게 되자 江을 따라 幾何學的인 形態의 玄武巖 柱狀節理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임진강주상절리

臨津江柱狀節理

 

節理는 石巖의 表面에 發達하는 좁은 틈(혹은 금)을 말하는데 浸蝕을 받게 되면 이 틈이 벌어지면서 巖石이 쪼개지게 된다. 柱狀節理는 긴 筒模樣의 節理를 일컫는 말로 대개 玄武巖에서 가장 잘 發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玄武巖은 鎔巖이 굳을 때 發生하는 收縮作用으로 인해 中心點을 따라 四角 혹은 六角形 模樣으로 垂直의 節理가 發達하게 되는데, 浸蝕을 받게 되면 六角形 模樣의 돌기둥이 떨어져 나가면서 아름다운 柱狀節理 絶壁이 만들어지게 된다. 가을이면 柱狀節理의 絶壁이 담쟁이와 돌단풍이 물들고 夕陽빛에 더욱 붉게 보여 赤壁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천호로고루란 ?

 

瓠蘆古壘는 南韓에서는 흔하지 않은 高句麗 遺跡으로 臨津江을 예전에는 "瓠蘆河"라고 불렀기에 瓠蘆河에 있는 오래된 堡壘라는 뜻으로 지금의  瓠蘆古壘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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