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 史 旅 行 2/歷 史 物

光化門廣場

광화문광장

 

光化門廣場

 

 

 

光化門에서 南쪽으로 光化門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空間은 朝鮮時代 議政府를 비롯한 中央 官廳이 모여 있던 육조거리(六曹街)였다. 1910년 韓日 强制 倂合 以後 光化門 자리에 朝鮮總督府 建物이 들어서고, 旣存 육조거리는 '光化門通'으로 불리면서 오늘날 世宗路가 形成되었고, 오랫동안 서울의 中心街로 使用 되었다. (百科事典)

 

 

사헌부 문터

司憲府 門 址

 

司憲府 門 址(터)展示場은 이 一帶의 發掘에서 나온 埋葬 文化財의 價値와 意味를 市民들에게 널리 알리고 共有하기 위해 造成 하였다. 展示場이 造成 된 場所는 司憲府가 있었던곳으로 2020년 10월부터 2021 년 6월 까지 進行될 發掘調査에서 排水路와 우물, 司憲府 廳舍의 담장과 出入門 터 行廊 遺構 등이 確認 되었다.

 

 

 

 

百姓은 나라의 根本이니

根本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平安하게 된다.

 

 

나라를 다스리는 法은 믿음을 보이는 것이 가장 重要한 것이다.

 

聖雄  李舜臣將軍

 

죽기를 覺悟하고 싸우면 살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必死則生   必生則死

 

 

거북선

(거북船)

 

거북선의 起源을 倭寇의 侵害가 가장 심했던 高麗 末期로 보는 見解도 있다. 이와 같이 거북선은 高麗末, 또는 朝鮮 初期에 이미製造조·使用되었으며, 1592 年(宣祖 25) 壬辰倭亂 당시에는 李舜臣에 의하여 創製된 鐵甲船으로서의 거북선이 實用화되었다. 鐵甲船으로서 世界的 先驅인 李舜臣의 거북선은 壬辰倭亂 初般의 잇따른 海戰에서 艦隊의 先鋒이 되어 突擊船의 威力을 남김없이 發揮하였다. 그러나 李舜臣의 投獄과 더불어, 또는 그의 戰歿 以後에는 거북선의 實用이 底下되고 만다. 壬辰倭亂 後 거북선은 時代에 따라 當初의 制度를 喪失하고 變貌하면서 朝鮮 末期까지 각 水營에 存在 하였다. 따라서 가장 큰 觀心의 對象이 된 거북선은 壬辰倭亂 당시 李舜臣에 의하여 創作, 구사된 거북선이다.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戰方急愼勿言我死

 

 

조선시대작전신호

朝鮮時代作戰信號

 

朝鮮時代 戰爭은 多樣한 信號로 展開 되었다. 信號는 크게 聽覺을 利用한것과 視角을 利用한 것으로 區分된다. 聽覺 信號에는 포, 북, 징, 꽹과리 등이 利用 되었고 視角 信號에는 煙氣와 불을 利用한 봉수와 戰爭터에서 命令을 내리고 받는 깃발등이 利用 되었다. 

 

 

조선시대작전신호

朝鮮時代作戰信號

 

李舜臣 將軍은 周邊 狀況에 따라 制約이 있는 聽覺 信號와 多樣한 議事 表現이 어려운 視角 信號와 短點을 補完한 作戰信號를 使用 하였다. 朝鮮 水軍들에게 익숙한 陰陽五行論에 바탕을 두어 靑色은 東쪽 赤色은 南쪽 白色은 西쪽 黑色은 北쪽 黃色은 가운데를 意味하는 깃발을 使用했다. 進法 뿐만이 아니라 作戰 信號에서도 그의 뛰어난 創意力이 發揮 되었음을 알수 있다.  

 

 

장검에 새겨진 명문

長劍名門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석자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들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장검

長劍

 

李舜臣 將軍이 閑山島에 있을때 製作한 것으로 恒常 壁에 걸어두고 보면서 精神을 가다듬던 칼

 

 

 

'歷 史 旅 行 2 > 歷 史 物' 카테고리의 다른 글

臨津閣平和 gondola  (0) 2023.02.28
鐵原에서 즐겨야할 9 景  (0) 2023.02.28
靑瓦臺開放  (0) 2022.06.20
國立서울顯忠院(第65回顯忠日)  (0) 2020.06.02
東海岸旅行/正東津,別莊.花津浦  (0) 2019.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