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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 族/兪 完 順

1泊2日旅行

 12

 

 

(平沙里 ,盧武鉉生家,通度寺,썬크루즈,江陵安保公園,燈明落痂寺,正東津,許蘭雪軒)

 

 

 

 

최참판댁

(崔參判宅)

 

參判의 벼슬 品階는 정2품 판서(判書)를 保佐하는 차관격(次官格)이었으며, 각 조에 1명씩 모두 6명을 두었다. 判書를 정경(正卿)이라고 하고, 參判은 아경(亞卿)이라고 했다. 原來 사평부(司平府)에 두었던 좌사(左使)·우사(右使)를 1404년(太宗 4) 3월 참판사평부사(參判司平府使)라고 改稱했다가, 1405년 1월 司平府가 호조(戶曹)에 倂合되고 6조의 의랑(議郞) 각 2명을 左·右 參議로 바꾸었다. 그뒤 參判·參議 各各 1명으로 改編되어 〈經國大典〉에 法制化했다. 〈大典會通〉에 보면, 이조(吏曹) 참판은 경연(經筵)의 동지사(同知事) 가운데에서 임금이 直接 薦擧했다고 한다

 

 

평사리들판

(平沙里들판)

 

약 80萬坪의 넓은 面積으로 "土地"의 主舞臺로 알려진 곳으로 들판가운데 두 구루의  소나무는 夫婦松 이라고도 불린다.

 

 

16 

(盧武鉉墓)

 

 

大韓民國 第 16代 大統領 이다. 獨立運動家 노응규의 後孫이며 本官은 광주 (光州)이다. 慶尙南道 金海市 出生 判事로 1년 남짓 在職하다가 그만두고 租稅分野 辯護士 活動 하던중 人權 辯護士가 되어 民主化 運動에 參與하였다. 以後 統一民主黨으로 政治權에 入門해 釜山과 서울에서 國會議員으로 活動하였으나 民自黨의 3黨 合黨에 반대하여 脫黨하고 通追를 結成했다. 國民의 政府에서 海洋水産部長官을 歷任 했다. 그후 國民 競選制에서 盧風을 일으키며 與黨後補로 2002年 大通領選擧에서 當選되었으나 이듬해 새千年民主黨을 脫黨하고 열린우리당 創黨을 사실상 主道하였다. 退任後 처음으로 故鄕인 慶尙南道 金海市  봉하마을로 歸鄕했다. 家族이 金錢을 收手한 件으로 인하여 檢察 召喚 調査에까지 이르렀다  以後 自宅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投身自殺하여 衝擊을 주었다 葬禮 는 國民葬 으로 치러졌으며, 永訣式에는 追募 人波가 몰려 서울특별시청부터 서울역까지를 메웠다.

 

 

盧武鉉 精神 實現되어

"사람사는 世上"  되었으면 합니다.

 

大韓民國第16代大統領盧武鉉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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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均,許蘭雪軒記念館)

 

 

江陵 바닷가 泗川과 이어진 蛟龍山 正氣를 타고난 蛟山 許筠과 蘭草香과 눈처럼 깨끗한 性品을 지닌  난 雪軒 許楚姬는  聞香 江陵이 낳은 오누이 文人 이다. 梅泉 皇憲은 이들과 虛封을 가리켜 草堂家門에 세구루 寶配로운 나무 제일의 神仙在住는 "景樊에 속하였네" 라고 찬국조제가 시에서 稱頌하였는데 특히 그중 蘭雪軒의 글재주가 가장 돋보여 詩仙在住를 닮았다고 하였다. 오누이는 아버지 許曄과 장남 虛聲 그리고 虛封과 함께 허씨 5 文章家를 이루어 글 잘짓고 學問하는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江陵땅 草堂에서 살면서 鏡捕湖의 아름다운 風光을 探勝하여 시를 읊고 文學性을 키워 나갔다. 특히 막내 許筠의 시 "鏡浦湖를 그리워하며" 에서 내집은 鏡浦湖 西쪽에 있으니 바위돌 골짜기들이 回啓名山과 같아라 라고 하는등 여러 作品을 통해 江陵에 대한 愛着을 表現했다.

 

 

난설헌허초희

(許蘭雪軒許楚姬)

 

우리나라 代表的인 女流詩人의 한사람인 許蘭雪軒은  본명이 초희(楚姬)로 호는 난설헌(蘭雪軒)이고 자는 경번(景樊)이다.. 1563년 江陵에서 태었났다. 어릴때부터 재주가 飛翔하고 出衆하였으며 兒名을 楚姬라 했다. 許蘭雪軒은 和談 徐敬德의 文人인 許曄의 딸이자 미암 柳希春의 文人인 許筬과 虛封의 同生이며 柳成龍과 李達에게 文章과 詩를 배운 許筠의 누이였다. 이런 家庭環境과 文學敎育이 許蘭雪軒 詩文學의 뿌리가 되었다. 許蘭雪軒이 어린나이에 지은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은 天才性을 遺憾없이 發揮한 作品이다. 中國 양조평양록, 金萬重의 西浦漫筆 에서도 許蘭雪軒의 才能을 激讚한바 있으며 오빠 虛封도 蘭雪軒의 詩는 배워서는 그렇게 될수없다.라고 할만큼 許蘭雪軒의 재주가 天賦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허난설헌생가

(許蘭雪軒生家)

 

朝鮮 宣祖때 草堂 許曄이 사던곳으로 許蘭雪軒이 태어났으며 許筠이 살았다고 전한다. 오늘날 地名인 草堂은 許曄과 關聯이 있는것으로 보인다. 토담과 周邊솔밭이 造花를 이룬 연화부수형 (蓮花浮水形) 明堂으로 알려져 있다.

 

 

(烏竹軒)

 

寶物 제165호. 이 建物은 1452년(文宗 2)에 登第하여 大司憲까지 지낸 최응현(崔應賢)의 古宅에 딸린 別堂으로, 1536년(中宗 31) 李珥가 태어난 遺緖 깊은 곳이다. 平面構造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된 일(一)자집이며 대청·온돌방·툇마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이가 태어난 방은 몽룡실(夢龍室)이라고 한다. 커다란 長臺石으로 쌓은 단층 기단 위에 막돌礎石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을 창방으로 결구했으며, 기둥 위에 주두(柱頭)를 놓고 익공(翼工)으로 처리한 이익공(二翼工)집이다. 앞면에는 띠살창호를, 옆면에는 골판문을 달았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이 建物은 韓國住宅史에서 現存하는 유구(遺構)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매우 重要하다. 그러나 방과 대청으로만 構成된 別堂만 남아 있고, 본채가 없어 朝鮮 初期의 住宅構造를 알 수 없는 것이 有感이다.

 

 

(SUN CRUISE)

 

 

東海岸 正東津 山위에 우뚝 솟은 船上 리조트인 SUN CRUISE를 해가 진後에 到着 旅裝 풀기가 바쁘다.

내일 아침 해돋이를 期待 하면서 취침.....

 

 

 

SUN CRUISE 全景

 

(靈鷲山通度寺)

 

通度寺는 부처님의 眞身舍利와 금란가사(金欄袈裟-금실로 수놓은 가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三保 가운데 가장 으뜸인 佛寶寺刹의 位置를 갖게 되었다. 通度寺를 韓國佛敎의 으뜸인 불지종찰(佛之宗刹)이요,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 하는 理由가 여기에 있다. 특히 釋迦牟尼 부처님의 眞身舍利를 모신 舍利塔이 있는 제1寂滅寶宮이기에 大雄殿에는 佛像이 없는 寺刹로 有名하다. 通度寺 大雄殿은 實題로 부처님이 살아 숨 쉬고 계시는 空間이기 때문에 다른 寺刹의 大雄殿과는 다른 宗敎的 象徵性을 갖게 된다. 따라서 정자형(丁字形) 法堂 사면에는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는데, 東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쓰여 있다.

 

 

(正東津)

 

 

정동진역

(正東津驛)

 

嶺東線의 철도역(鐵道驛)이다. 江原道江陵市 江東面 正東津里에 있으며, 코레일 管理한다. 驛의 이름인 “正東津”은, 朝鮮 時代에 光化門에서 보아 正東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다. 1962년 11월 8일 에 旅客과 貨物을 取扱하는 驛으로 開業하였다. 以後 持續的인 人口 減少로 閉驛이 考慮되었으나, 드라마 모래時計의 撮影地로 알려지면서 觀光 需要가 急增하여 비둘기호만 停車하는 簡易驛에서 새마을호가 停車하는 主要 歷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歷은 乘降場이 바로 白沙場으로 連結되어 있어서 入場券으로 歷 乘降場은 물론 白沙場까지 나갈 수 있는 특이한 形態를 갖추고 있다.

 

 

강릉통일공원

(江陵統一公園)

 

江陵統一公園은 96년 9, 18일 北韓武裝 潛水艦이 浸透한것을 계기로 武裝間諜 浸透地域에 國民들에 대한 統一念願을 위한 아품을 體驗 安保 意識鼓吹를 目的으로 造成하게 되었으며 江陵統一公園은 艦艇展示館과 安保展示館이 있으며 安保展示館에는 室內展示 施設과 野外展示場이 있읍니다.

 

 

대통령전용기

(大統領專用機)

 

江陵 統一公園에 展示한 大統領 專用機는 空軍機로 부터 退役하여 現在의 展示館 現場으로 移動 組立 內部復元하여 一般人을 위해 內部를 公開하게 되었다. 1969년 ~ 1973 년 까지 大統領 專用機로 活用 1974 ~ 1991 년까지 各國 大統領,수상,總理등 貴賓 訪問時 公需業務 修行

 

명칭 : sk master

모델 : c - 54

엔진 : 4 pratt & whitney r - 2000 -11 Twin w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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