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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1/王 宮

慶熙宮

(慶熙宮)

 

 

慶熙宮은 朝鮮後期 이궁(離宮)이었다. 1617년(光海君 9)부터 짓기시작하여  1623년 (光海君 15)에 完成 하였다. 慶熙宮의 처음 名稱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元宗의 諡號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1700년 (英祖 36) 慶熙宮으로 바뀌었다. 慶熙宮은 都成의 西쪽에 있다하여 서궐(西闕)아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昌德宮과 昌慶宮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對比되는  別稱이다. 仁祖 以後 鐵宗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처 임금들이 慶熙宮에 머물렀는데 특히 英祖는 치세의 折半을 이곳에서 보냈다. 慶熙宮에는 正殿인  崇政殿을 비롯하여  便殿인 資政殿 寢殿인 隆福殿,會祥殿 등 100여동의 크고 작은 建物이 있었다. 그러나 日帝가 大韓帝國을 强占하면서 慶熙宮은 受難의 歷史를 맞이 하였다.  1910 년 日本人 學敎인 京城中學敎가 들어서면서 大部分 宮闕 建物이 헐려나갔고 그 面積도 折半 정도로 縮小되어 宮闕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서울시에서는 慶熙宮址에 大韓 發掘을 거쳐 崇政殿등 正殿 地域을 復元하여 2002년부터 市民에게 公開하기 始作하였다. 

 

 

 

흥화문

(興化門)

 

興化門은 朝鮮時代 光海君 10年 (1618년에 세운 京德宮(現在 慶熙宮)의 正門이다. 1910년 日帝가 京城中學敎를 세우기 위해 慶熙宮의 全閣들을 헐고, 몇몇 建物들을 賣却하고 以建하면서 興化門도 1915년 南쪽 담장으로 옮겨졌다가 1932년 장충동 박문사(博文寺)로 옮겨져 正門으로 使用되었다. 그 後 博文寺에 迎賓館이 들어서고 新羅호텔이 서면서 호텔 正門으로 사용되다가 1988년 慶熙宮의 現在 位置로 옮겨졌다. 慶熙宮의 正門이었던 興化門은 元來 宮闕의 東南쪽 모퉁이, 지금의 救世軍會館 빌딩 자리에 동향하여 서 있다가 1915년 道路工事로 南쪽으로 以前되었으나, 現在 復元된 興化門은 元來의 位置와 向이 다르게 南向으로 되었다. 元來 慶熙宮에는 東門인 興化門 외에 興化門 왼쪽에 흥원문(興元門), 오른쪽에 개양문(開陽門), 西쪽에 숭의문(崇義門), 北쪽에 무덕문(武德門)이 있었다.

 

 

경희궁

(慶熙宮)

 

史蹟 제271호. 現在 서울에 남아 있는 5대宮 중 西쪽에 자리하여 西闕로도 불렀다. 정원군(定遠君:元宗)의 집 근처인 색문동(塞門洞)에 王氣가 서려 있다는 부사(府使) 신경희(申景禧)의 말에 따라 이곳의 王氣를 制壓하기 위해 1617년(光海君 9)에 수百 호의 여염집을 强制로 移住시키고 경덕궁(慶德宮)을 짓기 始作하여 3년 뒤인 1620년 完工했다. 인조반정(1623)으로 登極한 仁祖는 이곳에서 政事를 보았으며, 그뒤 孝宗부터 鐵宗에 이르는 10여 명의 임금이 살았다. 顯宗과 肅宗은 이곳에서 平生을 보냈기 때문에 이 期間 동안에 火災와 修理가 특히 많았다. 肅宗은 이 宮의 정전(政殿)인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나 융복전(隆福殿)에서 죽었다. 景宗은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함으로써 京德宮에서 最初로 卽位式을 올렸다. 英祖는 1760년(英祖 36) 仁祖의 아버지 원종(元宗)의 諡號인 '경덕'(敬德)과 음이 같다는 理由로 '京德宮'을 '京熙宮'으로 바꾸었다. 英祖는 이곳에서 卽位를 했으나 몇 달만 이곳에서 지냈으므로 거의 빈 宮闕로 있었다. 1810년(純祖 10) 純祖가 이곳으로 옮겨 지냈는데, 1829년(純祖 29)에 많은 建物이 불타 2년 뒤에 重建했고, 1834년 會祥殿에서 죽었다. 顯宗도 이곳에서 卽位했으나 여섯 달만 머물렀으며 그뒤 다시 빈 宮闕이 되었다. 1860년(鐵宗 11) 修理를 하고 鐵宗이 일곱 달만 머물고 昌德宮으로 옮김으로써 朝鮮王祖가 끝날 때까지 빈 宮闕이었다. 1889년(高宗 26) 崇政門이 불탔으나 1902년(光武 6)에 修理했다.

 

 

숭정전

(崇政殿)

 

숭정전(崇政殿)은 元來 京熙宮의 正殿이었다. 京熙宮은 元來 仁祖의 아버지인 원종의 私邸가 있던 곳이다. 光海君이 이곳에 王氣가 서렸다는 風水說을 믿고 王氣를 누르기 위해 卽位 9년인 1617년에서  1620년 사이에 宮闕을 建立하여 京德宮이라 불렀던 곳이다.  崇政殿은 1910년 日帝가 京熙宮을 撤廢하고 日本人 子弟들을 위한 學敎인 京城中學敎를 設立할 때도 남아 있었다. 그 後  1926년에 필동 南山 기슭, 지금의 東國大學敎 자리인 曹溪寺의 本錢으로 使用되기 위해 以建되었다 光復 後 그 자리에 東國大學敎가 세워지면서  1976년 9월 現在 位置로 옮겨져 學敎의 法堂인 정각원으로 使用되고 있다.

 

 

답 도

(踏道)

 

 

 

崇政殿으로 오르는 階段  踏道에는 朝鮮宮闕의 象徵인 鳳凰이 새겨져 있다.

 

어 좌

(御座)

 

中央칸 안두리기둥 사이에 보좌(寶座)를 마련하고 그 위에 御座를 設置하였다. 御座 뒤에는 일월오악병풍(日月五岳屛風)을 背景으로 삼아 사룡수(四龍首)를 彫刻한 삼절병(三折屛)을 두었다. 御座의 上部에는 四角平面에 다출목(多出目)의 작은 공포를 짜고 네 귀를 모접이 한 뒤 다시 다출목의 작은 공포를 짜서 이른바 말각천장형식(抹角天障形式)의 보개(寶蓋)를 마련하였다. 그 中央에는 雙龍과 如意寶珠를 彫刻하였다. 補佐는 복련(覆蓮)과 앙련(仰蓮)을 새긴 蓮花對坐를 받침으로 하되 對坐의 옆면은 3단의 궁판으로 나누었다. 嘲弄童子처럼 彫刻한 童子를 使用해서 궁판을 區劃하고 여기에 풍혈(風穴)을 새기고 그 사이에 보상화문(寶相華文)을 彫刻하였다. 對坐 위에는 난간을 두었는데, 계자각(鷄子脚) 사이 아랫부분에는 귀면(鬼面)을 2구씩 두고 그 上部에는 風穴을 彫刻하였다.(京福宮內用)

 

 

품계석

(品界石)


朝會 시 임금은 正殿의 御座에 자리하고 뒤쪽에는 屛風 과 五峰甁을 둔다. 앞쪽으로는 保安 등의 器物을  周邊으로 다수의 護衛軍事가 配置된다. 文武百官은 마당의 品界石에 따라 자리를 잡는데 王世子 文班이 東쪽으로, 宗親과 武官이 西쪽으로 선다. 월대와 마당 周邊으로는  護衛軍事가  서고 노부가 配列되어 仁政殿과 周邊 마당 全體가 朝會  參禮者로 가득하게 된다.

 

 

자정전

(資政殿)

 

이곳은 京熙宮의 편전(便殿)으로서 1617년 ~ 20년(光海君 9 ~ 12)에 建立되었다. 便殿이란 國王이 臣下들과 政事를 議論하거나 競演을 여는등 日常的인 業務를 遂行하던곳이다. 京熙宮에서는 資政殿 이외에 흥정당(興政堂)도 政事를 論하거나 競演을 여는 場所로 利用되었다. 資政殿은 便殿으로 지어졌지만 肅宗이 昇遐하였을 때는 빈전(殯殿)으로 使用되었으며 先王들의 어진(御眞:肖像畵)이나 위폐가 臨時로 保管되기도 하였다. 資政殿은 日帝에 毁損되었지만 서울시의 京熙宮 復元事業의 一環으로 發掘을 통해 確認된 位置에 現在와 같이 復元 되었다.

 

 

태령전

(泰寧殿)

 

이곳은 英祖의 어진(御眞:초상화)을 모셔두던 建物이다. 이 建物은 본래는 特別한 用度가 指定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英祖의 御眞이 그려지자 1744년 (英祖 20)에 이곳을 다시 修理하여 御眞을 모셨다. 선원전(璿源殿)의 경우 先代 國王들이 御眞을 모셨던것에 비해서 泰寧殿은 英祖 在位 당시에 現王인 英祖 自身의 御眞을 모셨다는 점이 特徵이다. 泰寧殿은 日帝에 의해 痕跡도 없이 破壞되었지만 서울시는 京熙宮 復元事業의 一環으로 西闕圖案에 따라 現在의 建物로 復元하였고 懸板은 石蜂 韓濩의 글씨를 集字하여 만들었다.

 

 

영 조

(英祖)

 

朝鮮의 第21代 王(재위 1724~1776). 蕩平政策을 施行하여 朋黨의 對立을 緩和하였고 여러 차례 奢侈風潮  禁斷의 措置를 내렸다. 《農家集成》을 普及하고 均役法을 施行하였으며 淸溪川을 浚渫하고 申聞鼓를 設置하는 등 많은 業積을 남겼다.

 

 

서 암

(瑞巖)

 

瑞巖과 巖泉. 瑞巖은 泰寧殿 뒤에 있는 기이한 模樣의 바위이다. 바위泉 이라는 뜻을 갖는 ‘암천(巖泉)’으로 불리는 泉이 그 속에 있어 예로부터 京熙宮의 名物이었다. 이 바위는 임금님 바위라는 뜻의 ‘왕암(王巖)’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으로 인하여 光海君이 이 곳에 京熙宮을 지었다는 俗說도 있다. 1708년(肅宗 34)에 이름을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의 ‘서암(瑞巖)’으로 고치고, 肅宗이 直接 ‘瑞巖’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 두게 하였다. 그러나 瑞巖을 새겨두었던 四方石은 傳해지지 않고, 다만 바위에 깎아 놓은 물길이 옛 자취를 傳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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