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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島 海 港/- 島 -

濟州島 6

(濟州島) 

혼저옵서  하영봅서   쉬영갑서예

 

(山房山)

 

높이 395m. 摹瑟浦로부터 東쪽 4 ㎞ 海岸에 있다. 流動性이 적은 粗面巖質 安山巖으로 이루어진 典型的인 종상화산(龍巖原定口)이다. 火口가 없고 四面경사가 50° 內外이며, 사방(四方) 絶壁을 이룬다. 新生代 제3기에 火山灰層 및 火山沙層을 뚫고 바다에서 分出하면서 서서히 隆起하여 지금의 模樣을 이루었다. 北쪽 사면 一帶는 人爲的인 植木林과 初地를 이루고 있다. 山頂附近에는 구실잣밤나무·후박나무·겨울딸기·생달나무 등 暖帶林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唯一한 섬회양목 自生地이기도 하다. 岩壁에는 지네발란·동백나무겨우살이·풍란·방기·석곡 등 海岸性 植物이 自生하고 있으며, 濟州島에서는 이곳에서만 唯一하게 도라지가 서식하고 있다. 學術硏究者原으로 매우 價値가 높아 1966년 天然 記念物 제182-5호로 指定·保護되고 있다.

 

산방산

(山房山)

 

이 山에는 옛날 한 砲手가 漢拏山에 사냥을 나갔다가 잘못해서 山神의 궁둥이를 활로 쏘자 山神이 怒하여 손에 잡히는 대로 漢拏山 峰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날아와 山房山이 되고 뽑힌 자리가 白鹿潭이 되었다는 傳說이 있다. 또한 女神 山房德과 고승(高升)이란 夫婦가 幸福하게 살고 있었는데 이곳의 주관(州官)으로 있던 자가 山房德의 美毛를 貪내어 男便 高僧에게 陋名을 씌우고 野慾을 채우려 하다가 이를 알아차린 山房德이 俗世에 온 것을 恨歎하면서 山房屈로 들어가 바윗돌로 變해버렸다는 傳說이 있다.  높이 200m의 南西쪽 기슭에 있는 山房屈은 海蝕洞窟로 부처를 모시고 있어 山房窟사라고도 하는데, 길이 10m, 너비 5m, 높이 5m 정도이다. 高麗時代의 高僧 혜일(蕙日)이 修道했다고 하며, 歸養왔던 秋史 金正喜가 즐겨 찾던 곳이다. 屈 내부 天藏 岩壁에서 떨어지는 물은 이 山을 지키는 女神 山房德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 하며, 마시면 長壽한다는 俗說에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山의 南쪽에는 火山灰層이 風化된 독특한 京觀의 龍머리(龍頭)海岸이 있으며, 이곳에 하멜 漂流記念塔이 建立되어 있다. 山頂에서 바라보는 南海의 마라도·형제도·화순항의 景觀이 뛰어나며 이는 濟州10景의 하나이다. 頂上으로 오르는 4곳의 登山路가 있으나, 주로 北쪽 사면을 利用한다.

 

제주마

(濟州馬)


 과하마(果下馬)·토마(土馬)·삼척마(三尺馬)라고도 한다. 우리 民族과 더불어 生存해온 唯一한 在來 家畜이며 上古時代, 扶餘 및 高句麗時代부터 飼育되어왔다. 다갈색을 띠는 이 말의 크기는 매우 작으며 암말의 경우 어깨높이 113cm, 몸길이 122cm이며 체폭이 작다. 머리는 영리하고 몸 動作은 輕快하다. 溫順하며 體格에 비해 能力이 優數하여 普通 하루 32㎞씩 22일간 연일 行軍할 程度로 强忍한 體質과 忍耐心을 가지고 있다. 歷史的 記錄을 보면 濟州馬는 濟州에 本來 있던 향마(鄕馬)인 小形馬에 中型 以上의 크기를 갖는 몽골말 또는 아라비아말 系統의 血統이 誘入되어 濟州島의 氣候와 環境에 適應하여 繁植한 家畜으로 推定된다. 생김새가 몽골말과 비슷하며 生後 약 14개월이 되면 初期 發情을 하고 妊娠기간은 약 335일이며, 繁植季節(방목시기)은 4~12월이다.

 

소철

 

소철은 암꽃과 숫꽃이 있다고한다. 이것은 숫꽃같다.

 

추사김정희

(秋史金正喜流配地)

 

 

북학파(北學派)의 한 사람으로, 朝鮮의 실학(實學)과 청의 學風을 融和시켜 經學·金石學·佛敎學 등 多方面에 걸친 學文 體系를 樹立했다. 書藝에도 能하여 秋史體를 創案했으며, 그림에서는 문기(文氣)를 중시하는 文人畵風을 强調하여 朝鮮 末期 畵壇에 큰 影響을 미쳤다. 本官은 慶州.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보담재(寶覃齋)·담연재(覃硏齋).

 

추사김정희

(秋史金正喜流配地)

 

안거리

(寨)

 

이 建物은 강도순가옥(姜道淳家屋)으로서 강도순(姜道淳)가족들이 生活했던곳이다. 濟州 傳統 초가(草家)建物로서 안어리 밖거리 등 마당을 중심으로 建物 配置가 이루어져 있으며 地域元老 및 關係 專門家의  自問을 받아 原形復元 하였다.

 

모거리

(寨)

 

추사 김정희(秋史金正喜)先生은 1840년 (憲宗6년) 윤상도의 獄事에 連累되어 55세 나이로 이곳 대정현(大靜縣)에 9년 동안의 流配生活동안 중에 세동도(歲寒圖 국보180호)를 비롯한 추사체(秋史體)를 完成하였으며 孤獨과 逆境 속에서도 學文과 書藝에 精進 하여 이 高場 後進들에게 많은 影向을 남겼다.

 

밖거리

(받깥채)

 

秋史 金正喜 先生은 9년 績居生活중 (1840 ~ 1848)에 글을 배우러오는 地域住民과 儒生들을 이곳에서 學問과 書藝를 가르치셨고 초가(草家)建物 4칸으로 크게 增築하였던것을 地域元老와 關係專門家의 自問을 받아 原型 復原하였다.

 

통 시

 

변소(便所)를 통시라 한다. 부엌 반대측에 마당에서 보이지 않는곳에 통시를 設置하여 돼지(豚)를 飼育 하였다.

 

 

건강박물관

(健康/性)

 

地球上의 사람수 만큼이나 多樣한 사랑과 性의世界. 어린이나 靑少年의 性과 다른 어른의성 우리自身과 相對의 몸과 마음 그리고 多樣한 性文化를 잘 알면 더 健康하게 아름답게 멋지게 性을 具現할수 있읍니다 性에대한 궁금중 속설 正確한情報 性의 博物館에서 배우고 알고 갑니다. 사랑하는이와 濟州島의 넉넉함과 餘裕 속에 所重한 追憶을 한번 만들어 볼까요?  說明이 必要 없읍니다 보고 느끼세요

 

건강과성박물관

(健康/性)

 

R/B 폔션

 

서귀포에 묵었던 R/B 폐션입니다 조용하고 전망이 좋습니다. 다만 가격이 좀 비싼편 입니다.

 

한라수목원

(漢拏樹木園)

 

漢拏樹木園은 稀貴 自生植物의 遺傳資源을 保全.硏究하고 自然學習帳으로 提供하기 위하여 國內 地方樹木園으로서는 最初로 1993년 에 開元 하였다. 濟州市 近郊 1100도로변 광이 오름과 남조순오름 기슭 15 ha 에 1100종의 100.000여본을 保有하고 있는 漢拏樹木園 은 常綠闊葉樹林으로 울창한 숲을 이룬 喬木院과 四季節 꽃이 피는  火木院,희귀, 특산수종원, 약.식용원 등 11개원으로 되어잇고 森立浴場과 體力團練場도 갖추고 있다. 나무들이 모여사는 漢拏樹木園)은 새우난 노루발 새끼노루귀 등 재미난 이름을 가진 植物들이 가득하다. 이곳은 都市一般 公園과는 달리 나무를보고 느끼며 自然과 함께하는 마음을 배우는 곳이다,

 

한라수목원

(漢拏樹木園)

 

 

(三姓穴)

 

三姓穴은 濟州島 사람의 傳說的인 發祥地이다. 삼신인(三神人)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  이곡에서 태어나 狩獵生活을 하다가 오곡(五穀)의 종자(種子)와 가축(家畜)을 가지고 온 벽랑국(碧浪國) 3공주를 맞이하면서부터 農耕生活이 비롯되었으며 탐라왕국(耽羅王國)으로 發展하였다고 傳한다. 조선조(朝鮮朝)중종(中宗) 21년 (1526년)목사(牧使) 이수동(李壽童)이  처음표단(標壇)과 홍문(紅門)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春秋奉祭)하기 始作한 이래 歷代 牧使에 의하여 성역화(聖域化)사업이 이루어졌고 現在에도 매년 春.秋제 및 乾時대제(乾始大祭)를 지내고 있다.

 

삼성혈

( 三姓穴)

 

홍화각

(弘化閣)

 

世宗17년 (1435년) 按撫使 최해산(崔海山)이 성주청 옆 弘化閣을 創建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理念아래 성군(聖君)의 德을 사해(四海)에 널리 입히고 德化로서 치민(治民)한다는 뜻 漢城判尹 고득종(高得宗)의글

 

삼성전

(三聖殿)

 

三性始祖의 位牌가 奉安된 祠堂 祭香은 每年 春期大祭(4월 10일) 와 秋期大祭 (10월 10일)를 後孫들이 奉享한다.

 

전사청

(典祀廳)

 

제향(祭香)에 관한 모든일을 맡아보는집

 

숭보당

(崇報堂)

 

儒生들이 학업(學業)에 專念 하던 집

 

삼성혈

(三姓穴)

 

이곳은 탐라(耽羅)를 創始한 三性 始祖가 용출(湧出)하신 곳이다.

 

 

용두암

(龍頭巖)

 

 

바다속 龍宮에서 살던龍이 늘로 오르려다. 굳어진 모습과 같다고 하여 龍頭癌 또는 龍머리라고 한다. 바다속에 잠긴 몸통의 길이가 30 m 바다위로 나온 머리눞이가 10 m 쯤 된다.  火山이 暴發할때 熔岩이 굳어져서 이루어진 奇巖이다. 傳說에 의하면 龍王이 嗣子가 漢拏山에 不老長生의 藥草를 캐러 왔다가 혹은 아득한 옛날 龍이 昇天하면서 漢拏山 神靈의 玉구슬을 훔쳐 물고 달아나려다가 漢拏山 神靈이 쏜화살에 맞아서 몸뚱이는 바다에 잠기고 머리만 나와서 울부짖는 것이라고 한다. 龍頭巖은 서쪽 100m 즘에서 波濤가 칠때 보아야만 살아 움직이는 듯한 生動感이 드러난다. 龍頭巖 東쪽에 연이 이웃하여 있다.

 

용두암

(龍頭巖)

 

오하마나호

 

나와 우리食口을 仁川港까지 同行해줄 배

 

제주항

 

아쉬움을 뒤로하고 무사히 旅行을 마치고 濟州島를 떠납니다. 다음에 다시만날을  期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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