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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1/陵&園&墓

聖雄李舜臣將軍墓

순신

(李舜臣) 

 

 

忠武公 李純信將軍은 1545년 4월 28일 서울에서 出生하셨으며 壬辰倭亂 때 三道水軍 統制使로서 거북선을 創製하여 옥포,당포,당항포, 閑山島 앞바다외 釜山,明朗,古今島 등 海戰에서 外船 數百척과 倭兵 數萬名을 무찔러 나라와 겨레를 求하셨다. 이 忠武公은 露梁海戰에서 敵軍을 椎擊중 敵의 榴彈에 맞아 54세를 一期로 1598년 12월 16일 南海 海上 觀音浦 에서 戰死 하였다. 將軍의 墓所는 처음 牙山郡 금성사에 모셨다가 16년후 인 光海君 (1614년) 에 이곳에 옮겨 모셨다. 李舜臣 將軍은 一平生 定義를 實踐함에 있어, 조금도 不意와 妥協하지 않는 올곧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武官으로서 항상 功과 事를 嚴格히 區分하였으며, 옳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上官이나 權力者에게도 서슴없이 誤謬를 指摘하는 直言을 하였다. 비록 이로 인해 여러 차례 不利益을 당하기도 하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늘 定義를 삶의 핵심가치로 삼고 온전히 實踐하였다. 定義를 實踐함에 있어 將軍은 他人보다 本人에게 더 嚴格하였다. 다음 글은 1593년 熊川浦 海戰을 마치고 歸還하던 중 통선 1척을 잃은 것에 대해 將軍 스스로 罪를 請하는 狀啓의 한 부분이다. 사실 이 通船이 戰服된 原人은 部下將帥들이 將軍의 指揮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나 將軍은 指揮官으로써 本人의 責任을 물은 것이다.

 

 

 

 

이순신

(李舜臣)

 

壬辰倭亂의 戰勢를 바꾸게 한 1592년 7월 8일의 閑山島 海戰은 세계 4대 海戰으로 꼽힐 정도로 有名한 海戰이다. 당시 70여척의 敵船이 碇泊해 있던 견내량은 地形이 복잡하고 좁아서 我軍에게 불리한 場所였다. 將軍은 이 점을 看破하고 敵船을 閑山島의 넓은 바다로 誘因하여, 無防備 狀態의 敵을 "鶴翼陣法"으로 執中 攻擊함으로 大勝을 거둔다. 閑山島 海戰은 뛰어난 戰略家로써의 將軍의 面貌가 여실히 드러난 戰鬪였다. 將軍은 항상 部下將帥들과 戰略과 戰術을 論議하고 硏究하였다. 東西洋의 海戰 硏究家들은 時代를 超越하여 이러한 李舜臣 將軍의 뛰어난 海戰術을 稱讚하며 硏究하고 있다.

 

 

교지

(敎旨)

 

保人 李舜臣 武科.丙科 第四人及 第出身者  萬曆 四年 三月

 

 

신도비

(神道碑)

 

대개 무덤 南東쪽에 南쪽을 向하여 세우는데, 신도(神道)라는 말은 사자(死者)의 묘로(墓路), 즉 神靈의 길이라는 뜻이다. 神道碑는 元來 中國 한(漢)나라 양진(楊震)의 古代위양공지신도비(故大尉楊公之神道碑)에서 비롯되어 당시는 종2품 이상의 관계(官階)를 지녔던 사람에 한하여 세웠다. 韓國에서는  高麗時代부터 始作된 것으로 보이나 전하는 것이 없고 다만 《동문선(東文選)》 기타 文集에 비문(碑文)이 傳할 뿐인데 당시는 3품 이상의 官職者 무덤에 세운 것으로 推定된다. 朝鮮時代에는 2품 이상에 한하여 세우는 것으로 制度化하였다.  南楊州郡 九里읍(九里邑)에 있는  건원릉(健元陵:조선 太祖陵)의 神道碑를 비롯하여 洪陵의  世宗大王神道碑, 安山의  정난종(鄭蘭宗) 神道碑, 牙山의 李舜臣 神道碑 등 全國 各地에 많은 神道碑가 傳한다. 그러나 文宗은 王陵에 神道碑를 세우는 것을 法으로 禁止하였고, 功臣이나 석학(碩學) 등에 대하여는 王命으로 神道碑를 세우게 하였다.  

   

 

이순신묘

(李舜臣墓)

 

1598.11.19(양력 12.16) 54세를 일기로 露梁海戰에서 戰死한 공의 遺骸는 最後의 陣地였던 全南 莞島郡 소재 고금도(古今島)에 일단 모셔져 이듬해인 1599.2.11에 아산시 음봉면 소재 금성산에 安置하였다가 16년이 지난 光海6년(1614년)에 이곳 어라산 덕수이씨 先山에 移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묘는 婦人 상주방씨와의 合葬墓로써 封墳앞에는 石造文官石, 武官石, 動物相, 童子石, 像石, 墓碑가 있고 封墳은 屛風石으로 둘러져 있어 朝鮮時代 고관(高官) 墓의 典型的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李忠武公 從孫의 同義를 얻어 顯忠祠管理所가 1973.7.19부터 管理하고 있는 公의 墓所는 顯忠祠로부터 牙山溫泉 方向으로 약 9㎞ 떨어진 음봉삼거리에 位置하고 있다.

 

 

이충무공난중일기

(李忠武公亂中日記)

 국보제76호 

 

壬辰倭亂 (1592 ~ 1598)때에 李舜臣 (1545 ~ 1598)에 親筆로 作成한 日記로 7券이 남아있다. 이 日記는 忠武公典書에 收錄된 亂中日記의 初本으로 水軍統制에 관한 軍事費冊과 戰況을 報告한 狀啓의 草案등이 詳細히 收錄되어 있어 壬辰倭亂의 戰況및 당시 軍事制度 등을 알수있는 資料로 가치가 높다.  국보제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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