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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B 旅 行/國 內

莞島 (甫吉島)

(甫吉島)

 

 

所安島를 떠나 카페리호1호를 타고 甫吉島로 甫吉島는 尹善道의 漁父四時詞등 우리나라 古文學 思想 珠玉같은 詩를 남긴곳으로 朝鮮 肅宗때는 尤菴 宋時烈의 濟州道 歸養길에 머무른곳으로 有名하다, 또한 多島海 海上國立公園으로 指定되어 뛰어난 自然環境을 갖고 있으며 山岳人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甫吉島를 向하여 出發.

 

보길대교

(甫吉大橋)

 

莞島 노화와 甫吉島를 잇는 連島橋인 ‘甫吉大橋’가 2008년 1월 開通됐다. 甫吉大橋는 橋梁길이 620m와 接續道路 1.4km로 甫吉大橋 開通으로 天惠의 自然景觀과 孤山 尹善道 遺跡地 등을 찾는 探訪客과 島嶼 住民의 交通 便益이 增進되고 있다.

 

 

혹약암

(惑躍岩)

 

硯池 계담(桂潭)에 있는 칠암(七岩)중의 하나이다. 이 바위는 易經 의 건(乾)에 나오는 혹약재연(惑躍在淵)이란 효사 (爻辭)에서 따온말로 뛸뜻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 는 뜻이다. 즉 惑躍岩은 마치 힘차게 뛰어갈것 같은 큰 황소의 모습을 닮은 바위를 말한다.

 

 

회수담

(回水潭)

 

洗然亭 東쪽 蓄段밑의 桂潭에서 人工연못으로 흐르는 터널식 水入口가 있다. 桂潭쪽에서 들어가는 水口는 다섯구멍이며 人工 연못쪽으로 나오는 水口는 세구멍이다, 이를 五入三出 이라 하는데 이 構造는 아주 독특한데 물막이 石築 다섯곳의 吸收口를 만들어 흐르는 물을 받아들이되 排出하는 구멍은 세곳만 만들어 들어오고 나가는 水量을 調節할수 있도록 만든 構造이다.

 

 

사투암

(射投岩)

 

洗然亭 周邊의 잘생긴 바위 일곱을 指稱하여 칠암 (七岩)이라 불렀는데 그중 하나인 射投岩은 沃素臺를 向하여 활을 쏘는데 발받침 역활을 하였다.고 傳해지는 바위로 연못쪽이 들려진 모습이다. 들려진 部分에 발을 딛고 沃素臺쪽 과녁을 向하여 활을 쏘았다는 傳說이 傳해 내려오고 있다.

 

 

세연정

(洗然亭)

 

洗然이란 周邊京觀이 물에 씻은듯 깨끗하고 丹鼎하여 氣分이 상쾌해 지는곳 이란 뜻으로 고산연보 (孤山年譜)에서는 1637년 孤山이 甫吉島에 들어와 芙蓉동을 發見했을때 지은 亭子라 하고있다. 亭子의 中央에 세연정(洗然亭), 東쪽에 호광루 (呼光樓) 서쪽에 동하각 (同何閣) 남쪽에는 낙기란 (樂飢欄)이란 扁額을 걸었으며  또 西쪽에는 칠암헌(七岩軒)이라는 扁額을 걸었다.

 

 

회수담

(回水潭)

 

洗然亭 東쪽 築段밑의 溪潭에서 人工연못으로 흐르는 터널식 收入口가 있다. 溪潭쪽에서 들어가는 수구는 다섯구멍이며 人工 연못쪽으로 나오는 水口는 세구멍이다, 이를 五入三出 이라 하는데 이 構造는 아주 독특한데 물막이 石築 다섯곳의 吸收口를 만들어 흐르는 물을 받아들이되 排出하는 구멍은 세곳만 만들어 들어오고 나가는 水量을 調節할수 있도록 만든 構造이다.

 

 

서대

(西臺)

 

現在는 나선형으로 세단이 남아 있으며 그 規模는 推斷의 한면이  7,6 m 程度의  長方形으로 높이는 약 2,2 m 이른다 여러사람이 어울려 군무(群舞)를 즐겼던 곳으로 平衡이다.

 

 

윤선도

(尹善道)

 

윤선도(尹善道, 1587년 6월 22일 ~ 1671년 6월 11일)는 朝鮮時代 中期, 後期의 詩人·文臣·作家·政治人이자 音樂家이다. 南人 重鎭 文臣이자 許穆, 윤휴와 함께 禮訟 論爭 당시 南人의 主要 論客이자 禮訟 論爭 당시 先鋒將이었다. 1차 禮訟論爭때 宋時烈이 體利不定說을 主張하자 이에 반발, 孝宗의 宗統을 否認했다는 過激한 上訴를 올렸다가 西人 猛攻을 받고 自身이 삼수(三水)에 流配되었다.流配地에서 울적한 心思를 달래며 지은 漁父四時詞 등은 有名한 作品이기도 하다.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宋時烈이 65세 때 벼슬을 그만두고 全羅南道 甫吉島 芙蓉洞에 들어가 한적한 나날을 보내면서 지은 노래이다. 世上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과 한몸이 되어 강호한정(江湖閑情)에 빠지는 것이 主題이다. 4季節을 각 10수씩 40수로 하고 여음이 붙어 있다. 여음은 배를 띄우는 것에서부터 돌아오기까지의 科程을 따라 말을 붙였다. 高麗 後期의 〈漁夫家〉를 이어받아 다시 創作한 것으로, 李賢輔의 〈漁夫史〉나 그밖의 漁夫家에 束하는 노래는 漢詩에 여음이 붙어 있는 것이 普通이나 이 노래는 순 우리말로 새롭게 썼다. 〈오우가 五友歌〉와 함께 그의 代表作으로 손꼽히며 〈고산유고 孤山遺稿〉에 실려 傳한다.

 

 

 

판석보

(板石洑)

 

우리나라 造園遺跡중 唯一한 석조보(石造洑)로 일명 굴뚝다리라 부르며 洗然池의 底水를 위해 만들었으며 乾燥할때에는 돌다리가 되고 雨期에는 瀑布가 되어 一定한 水面을 維持 하도록 만들었다. 보(洑)의 構造는 양쪽에 板石을 堅固하게 세우고 그 안에 剛灰를 채워서 물이 새지않케 한다음 그 위에 板石으로 뚜껑돌을 덮었다.

 

 

동대

(東臺)

 

洗然亭에서 바라보아 오른쪽 板石보 옆에 位置해 있고 그 規模는 가로 6,7 m 와 세로 7,7 m 의 長方形으로 높이는 약 1,5 m 이며 自然石으로 쌓아올렸다. 漁父四時詞가 불리워지면 여러사람이 어울려 군무(群舞)를 즐겼던 곳으로 平衡이다.

 

 

 

 

가을女人들

 

우암송시열암각시문

(尤庵宋時烈岩刻詩文)

 

八十三歲翁 蒼波萬里中

一言胡大罪 三黜亦云窮

北極空艙日 南溟但信風

韶구舊恩在 感激泣孤衷

 

여든셋 늙은 몸이 푸른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구나.

한마디 말이 무슨 큰 罪일까 세번이나 쫓겨난 이도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大闕에 계신 님을 속절없이 우러르며 다만 南녁 바다의 順風만 믿을수 밖에

담비갑옷 내리신 옛 恩惠 있으니 感激하여 외로운 忠情으로 흐느끼네

 

 

뉴장보고

蘆花島 山羊進港 ~ 南海땅끝 까지 運行하는 카페리호 뉴 張保皐호를 타고 甫吉島를 出發.

 

 

 

뉴장보고

蘆花島 山羊進港 ~ 南海땅끝 까지 運行하는 카페리호 뉴 張保皐호를 타고 甫吉島를 出發.

 

 

 

 

 

땅끝展望臺

 

 

땅끝展望臺에서 바라본 海南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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