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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島 海 港/海 水 浴 場

花津浦海水浴場

 (花津浦海水浴場)

 

 

 

 

화진포해수욕장

(花津浦海水浴場)

 

民間人 出入이 許容되는 海水浴場 중에서 가장 北쪽에 자리하고 있다. 白沙場 길이는 약 1.7km이며, 水心 1~1.5m로 경사가 매우 婉娩하다. 모래에 모나즈(monaz) 成分이 많아 感觸이 부드러우며, 개미와 곤충이 들끓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모래에서 쇳소리가 난다고 하여 명사(鳴沙)라고도 불린다. 울창한 숲, 맑은 湖水, 奇巖怪石 등 조용하고 빼어난 周邊 景觀으로 인해 많은 避暑客이 몰려들며, 花津浦에 隣接하고 있어 年中 민물·바다 낚시꾼들로 붐빈다. 7월 中旬부터 8월말까지 海水浴이 可能하다. 周邊의 觀光地로 統一展望臺·巨鎭海水浴場 등이 있다.

 

 

광개토대왕릉

(廣開土大王陵)

 

高句麗 年代記에 따르면 廣開土大王 3년(394)8월경 花津浦 거북섬에 왕릉(壽陵)築造를 始作했으며 廣開土大王 18년 8월 花津浦의 壽陵築造 現場을 大王이 直接 訪問하기도 했던것으로 記錄되 있다. 廣開土大王이 逝去한 이듬해인 長壽王 2년 (414) 9월 29일 花津浦 거북섬에 廣開土大王의 屍身을 安葬 하였다고 한다. 이곳에 廣開土大王능 守備隊가 王陵을 지키고 있었고 鷄林(新羅)의 軍事와 守備隊간 잦은 分爭이 잇엇던 것으로 記述하고 있다. 문자명왕 2년에 이곳에서 광개토대왕의 망계(望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있는 거북섬 성의 구조는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섬의 頂上部인 약 45 m 높이의 高地를 中心에 두고 海岸線 地形을 따라 花崗岩을 利用하여 石築으로 築造하고 城壁上段은 삭토하여 還都를 開設한 痕跡이 200 m 에 뚜렸이 남아 있으며 山頂附近의 와편과 柱礎石의 殘害는 祠堂으로 推定하고 있다 섬 北쪽의 岩石 低地帶는 협축법으로 石築한 保護벽(城)과 방파성(防波城)이 약 60m 높이 170 ~ 230 cm 3개 區間에 남아있다.

 

 

화진포

(花津浦)

 

둘레 16km, 水心 15m, 面積 2.36㎢이다. 이 湖水는 後氷期 海面上昇으로 海岸이 侵水됨에 따라 河谷을 中心한 낮은 곳이 灣入으로 變하고 그 入口가 衆評川과 月案川의 土沙共給으로 이루어진 潟湖이다. 50~100年生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屛風처럼 둘러싸여 있고, 맑은 湖水와 奇巖괴석, 푸른 바다, 하얀 모래밭이 한데 어우러져 景致가 秀麗하다. 1971년 12월 16일 江原道 記念物 제10호로 指定되었으며, 겨울에는 白鳥(天然記念物 제201호)가 到來하고, 여름에는 海岸을 따라 海棠花가 피어 運置를 더해준다. 日帝强占期에는 外國人들의 休養地로 利用되었고, 8·15解放 後에는 김일성(金日成)·이승만(李承晩) 등의 別莊地로 使用되었으며, 지금도 남아 있다. 湖水의 北東쪽이 바다 쪽으로 트여 있어 잉어와 같은 淡水魚와 도미·전어·숭어 등의 바닷물고기가 함께 棲息한다. 

 

 

이승만대통령별장

(李承晩大統領 別莊)

 

1948년 제1 ~ 4대 大韓民國 大統領  1960년 4.19 의거로 失脚. 하와이로 亡命  大韓民國 初代 大統領인 李承晩이 머물렀던 곳으로 1954년에 新築된 뒤 1961년에 廢墟가 되었다가 1999년 展示館으로 復元되었다.  別莊의 外部는 別莊답지 않게 雅澹하고 素朴하며 허름하게 보인다. 내부는 寢室과 執務室로 쓰이던 방 두개와 居室로 區分되어 있으며 遺族들에게 寄贈 받은 物品들로 傳示하여 李承晩 大統領이 寄居하던 時節의 모습을 그대로 再現하였다. 短出한 家具와 素朴한 物件들 그리고 生前의 寫眞들로 그 당시의 雰圍氣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素朴하고 短出하지만 別莊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周邊의 울창한 松林과 한데 어우러진 花津浦의 두개의 湖水가 한눈에 보이는 까닭에 花津浦의 세 別莊 중 가장 景致가 뛰어나다는 評을 받고 있다. 조용히 바깥 風光을 즐기며 便安하게 쉴수 있는 平溫하고 조용한 別莊이다

 

 

이승만박사자작한시

(李承萬博士自作漢詩)

 

 

萬枝同根      만가지로 나누어져도 뿌리는같고                  尊祖崇宗     조상을 높이고 조상을 존중하여

   百派一源      백번갈라진 물도 근원은 하나로서               愛親睦族    어버이를사랑하고 동족이 화목하고

敬老慈幼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고                一意循此     한결같이 이 뜻을 따라   

斥邪護正   틀린것을 물리치고 바른것을 수호하자       永無或簪       길이길이 변함없게

 

 

이기붕별장

 

1920년대 外國人 宣敎師들에 의해 建築되어 使用된 建物로써 解放以後 北韓共産黨의 幹部 休養所로 使用되어오다가 休戰以後 副統領 이었던 李起鵬씨의 夫人 朴마리아 女史가 個人別莊으로 使用하다가 閉鎖되었으나 1999년 7월 歷史 安保 展示館으로 改修하여 觀覽客에게 展示하고 있다.

 

 

화진포의성

(金日成別粧)

 

花津浦의 城은 地下 1층, 지상 2층의 石造 建物로 지어져 당시 建築物로는 제법 華櫚함이 엿보인다. 花津浦의 城에는 옛 別莊의 모습을 담은 寫眞資料를 비롯해 金日成 家族이 使用했던 응접 세트 등 各種 遺品이 模型物로 만들어져 展示 되었다. 海岸가 산기슭에 位置한 花津浦의 城은 光復 直後 建立, 韓國戰爭 以前까지 金日成이 아들 金正日, 딸 김경희와 함께 垂示로 利用했던 곳으로 本來 地下 1층, 地上 2층의 石造物이었으나 戰爭 중 크게 毁損되어 64년 陸軍이 本來 建物을 撤去하고 지금의 1층 建物로 再建築 했었다. 새롭게 丹粧된 花津浦의 城은 內部에 金日成의 正體, 獨裁體制 構築科程, 韓國戰爭 挑發, 그리고 停戰協定 以後 北韓의 挑發漫行 등 北韓關聯 資料를 판넬식으로 揭示하고 있으며 金正日과 金慶姬가 어린 時節 이 곳에서 찍은 寫眞 등 關聯資料寫眞도 展示하고 있다. 花津浦의 城의 絶景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마주 보이는 금구도라 불리는 바위섬으로 花津浦 海邊에서 3백여m 떨어진 금구도는 거북 模樣을 닮은데다 가을철이면 이 섬에서 자라는 대나무 숲이 노랗게 변해 섬 全體가 黃金빛으로 물든다.

 

 

화진포금강소나무숲

(花津浦金松)

 

金剛소나무는 우리나라 太白山脈을 中心으로 江原道 慶尙北道,東海岸에 生育하고 있으며 代表的으로는 金剛山 地域에 分布하고 강송,춘얀목,金剛松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줄기가 곧고 붉은색을 나타내며 나무껍질이 얇고 才質이 優秀하여 文化財 建築用材로 使用되는 所重한 나무입니다 우리모두 소나무 保護에 힘서야 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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