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
(儒達山)
높이 228m. 산정이 가파르고 奇巖絶壁이 疊疊이 쌓여 있어 湖南의 개골산(皆骨山)으로도 불린다. 山의 東쪽과 南쪽의 完경사 山綠은 이미 都市化가 進行되었다. 山亭에서는 木浦市와 多島海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過去 外敵을 境界하던 烽燧臺가 2개 남아 있다. 약 100m 내려오면 正午를 알리던 午砲隊와 露積峯이 있다. 露積峯은 壬辰倭亂 때 李舜臣 將軍이 軍糧米를 쌓아둔 것처럼 가장해 敵을 속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기슭에는 우리나라 最初로 조성된 彫刻公園이 있으며, 그 옆쪽으로는 全國 各地에서 收集한 난(蘭)公園이 있어 儒達山의 韻致를 더해준다.
노적봉
(露積峰)
해발 60 m 이 바위로 이루어진 이 峰우리에는 1597년 10월 ~ 1508년 2월 까지 木浦에 머물고 계시었던 忠武公 李舜臣將軍의 슬기가 머물고 있는 곳입니다. 忠武公께서는 敵은 軍勢로 많은 倭敵을 물리치기 위하여 이 峰우리를 짚마름으로 덮어 軍糧米를 쌓아놓은 露積峯 처럼 꾸며서 우리의 軍事가 많은것 같이 속여 倭軍이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답니다. 이러한일이 있는 뒤로 이 峰우리의 이름을 露積峯으로 부르게 되었읍니다.
복바위
(福岩)
福을 비는 模樣의 사람을 닮았다고?
오포대
(午砲臺)
午砲隊는 1909년 4월 木浦市民에게 正午를 알리기 위하여 設置 한것으로 이곳부터 약 200 m 떠러진 곳에 市民鐘閣에 있었던것을 이곳으로 옮겼다.
삼학도
(三鶴島)
지금은 連陸되어 木浦市 領海洞에 束한다. 본래 3개의 섬이었으나, 1968~73년에 連陸公事와 干拓工事를 實施하여 陸地化되었다. 3마리의 鶴이 내려앉아 섬을 이루었다는 傳說이 있으며, 過去에는 木浦津의 시지(柴地)로 이곳에서 木浦津에 땔나무를 提供했다. 섬의 最高地点은 73m이었다. 지금은 海運港灣廳, 海洋警察隊, 法務部 出入國 管理事務所 등의 政府機關과 韓國冷凍·湖南製粉 등의 工場이 들어서 있으며, 섬 北壇의 갓바위 一隊는 市民公園으로 造成되어 있어 많은 市民들의 休息處가 되고 있다. 또한 바닷가에는 人爲的으로 모래를 옮겨 白沙場을 만들어 海水浴場으로 利用하고 있다. 湖南線의 支線이 木浦驛에서 三鶴島 海運港灣廳까지 連結된다.
이난영의노래비
(李蘭影)
1969년 木浦 儒達山에 '木浦의 눈물 노래비'가 建立되었으며, 1986년 木浦市民의 賞이 受與되었다. 1950년 韓國戰爭이 勃發하면서 김해송이 失踪되어 혼자 子女들을 키우면서 어려운 生活을 해야 했다. 1958년 同僚 가수 남인수가 離婚한 뒤 事實婚 關係로 지내다가 1962년 남인수가 死亡하여 다시 혼자가 되었다. 1963년 美國에 건너가 딸들이 結成한 그룹 金시스터즈와 함께 公演을 하였으며, 韓國에서의 公演은 1965년 三一節 記念公演이 마지막이었다.
오포
(午砲)
午砲는 오정포(午正砲)라고도 하는데 1908년 4월 1일 당시 日本 統監府가 韓國과 日本의 1시간 시차를 無視하고 오전 11시에 日本時間 正午시에 時間을 맞춰 正午로 定하고 砲를 쏘아알린 아픈歷史를 지니고 있다. 日帝末期에 日本이 供出로 거둬가버린것을 1988년 12월 26일 現在 자리에 復元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