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오피아한국전참전기념관
(Menmorial Hall for Ethiopian Veterans in the Korean War)
에티오피아의 제1진인 제1 Kagnew大隊는 美 第 7 師團에 配屬되어 주로 中東部戰線의 赤根山 - 심헌 附近과 斷腸의 稜線및 펀치볼 附近에서 活動하였다. 1951년 8월 9일 華川 勞動里에서 師團豫備로 編成된 大隊는 9월 14일 까지 赤根山 - 삼헌 一帶에서 偵察및 探索戰을 修行하였다. 1951년 8월 12일 大隊는 赤根山 前紡 797高地 西北쪽의 봉당덕리 附近에서 中共軍과 參戰 以來 最初의 交戰을 벌였다. 8월 15일에는 防禦陣을 目標로 浸透한 中共軍을 4 時間여의 激戰 끝에 물리치는등 大隊는 9월 14일 까지 18회의 偵察및 探索戰을 實施하여 卓越한 戰果를 거두었다.
에티오피아군
(Ethiopia army)
에티오피아 政府는 1,200명 水準의 1개 步兵大隊 派兵을 決定하고 1950년 8월 皇室近衛隊로 大隊를 編成하였다. 이들은 다음해 4월 初까지 首都인 아디스아바바 近郊의 韓國地形과 類似한 地域에서 英國軍 敎官들로부터 强訓練을 받았다. 大隊는 1951년 4월 13일 축국申告式에서 皇帝로부터 相對에게 決定的 打擊을 주거나 潰滅시키는는 大隊 라는 意味의 Kagnew 大隊 라는 名稱을 受與 받았다. 제 1 Kagnew 大隊 將兵 1,153명과 파한 에티오피아군 司令部 要員 35명으로 構成된 제 1진 1,188명은 列車로 移動 다음날 지부티港에서 美軍 輸送船 General Macrea (제너널 매크리아)호에 乘船 하였다. 그리고 21일간의 긴航海 끝에 1951년 5월 6일 아침 釜山港에 到着해 李承晩 大統領의 歡迎을 받았다.
參戰勇士 들이 寄贈한 6.25 戰爭關聯記念메달
너무 늦게 찾아와 罪悚합니다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
내 버킷리스트엔 韓國戰 參戰勇士분들을 直接 찾아뵙고
感謝人事와 함께 따뜻한 한 끼 飮食을 待接하고 싶다는 內容이 있습니다.
10여 년 前에 적어둔 內容이지만 혼자서 해내기엔
어려운 일이라 行動으로 옮기기가 너무나 막막했었습니다.
그런데 반갑게도 따뜻한 하루의 강뉴부대 後援消息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따뜻한 하루에 同參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고
머지않아 에티오피아로 함께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韓國을 떠난 지 15시간 만에 到着한 에티오피아의 首都 아디스아바바.
이른 아침 到着이어서 첫날부터 參戰 勇士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첫 만남부터 나를 한없이 부끄럽고 만드신 한 參戰 勇士분은
당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시면서 저희가 온다는 消息에
夫人의 副軸까지 받으며 먼 길을 마중하러 나오셨습니다.
벽에는 皇室 近衛兵으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을
오래전 모습이 낡은 寫眞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皇室 近衛兵이라는 保障된 삶을 뒤로 한 채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위해
使命感만으로 參戰을 決心한 6,039명의 강뉴 戰士들.
그렇게 우리는 生存 確認이 되는 244분의 강뉴部隊員 중
210분을 直接 만나서 따뜻한 하루 家族님들이 보내주신 後援金과
感謝의 膳物을 傳達해 드렸습니다.
1951년 4월 13일, 韓國戰 參戰을 위한 강뉴部隊 出征式에서
하일레 셀라시에 皇帝는 이길 때까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싸워서
韓國의 自由와 平和를 回復시키라고 命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勇猛하게 싸웠고 253번의 치열했던 戰鬪에서
한 번의 敗北도 없이 253번의 값진 勝利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싸워 이긴 勝利에는 犧牲도 함께했습니다.
戰死한 戰友가 있으면 밤새 그 主位에 모여서 다 함께 울었다고 하니
지구 反對편 東洋의 작은 나라에서 겪었을 그 참담함을
이 글로서 다 表現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마음이 아련할 뿐입니다.
그렇게 名譽로웠던 강뉴부대,
지금 이분들의 時計는 어디에서 멈추어 있는 걸까요?
韓國戰 參戰 後 極甚한 가뭄과 內戰으로 인해 共産主義 國家가 되면서
강뉴部隊 勇士들은 家族과 이웃으로부터 非難받고
參戰 事實을 숨겨가며 숨어 살 수밖에 없는 狀況이었다고 합니다.
이제라도 손을 잡으며 그분들께 눈물로서 할 수 있는 말은
'너무 늦게 찾아와 罪悚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잊지 않고 여기까지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오히려 눈물을 흘리시며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분들은 옷장 깊숙이 감춰두셨던 수많은 勳章을
비록 낡고 낡은 옷이지만 자랑스럽게 달고 나와 주셨습니다.
그중에 90세가 넘으신 한 老兵은 우릴 보자 "釜山! 釜山!"을 크게 외치셨습니다.
韓國戰爭 당시 처음 到着했던 韓國의 釜山이 宮禁하셨나 봅니다.
지금의 釜山을 說明해 드리니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노래를 부르기 始作 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그분의 입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자
노래를 부르는 老兵과 우리들의 눈가에는 主體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과연 大韓民國 國民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래되고 잊혀가고 있는 이러한 歷史를 알고 있을까요?
하지만 이제는 記憶해야 할 우리의 歷史입니다.
우리는 찾는 이 몇 없이 地下 무덤에 쓸쓸히 잠들어 계신 123명의 戰死者분과
아직 生存해 계신 244명의 參戰勇士 그리고 그 後孫들,
그리고 6,039명의 강뉴部隊 全 隊員들의 犧牲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할 때입니다.
제가 보고 느끼고 온 것은 너무도 아픈 歷史의 事實이기에
따뜻한 하루 家族님들의 뜨거운 關心과 後援에 同參해 주시기 바랍니다.
- 에티오피아 방문 강정화 님 후기 -
너무 늦게 찾아와 罪悚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