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立中央博物館/朝鮮前期美術大典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새나라 새미술
조선전기미술대전
(朝鮮前期美術大典)
한 時代가 저물고 새時代가 始作됩니다. 어떤歷史의 새벽녁을 들여다 봅니다. 高麗末 1391년, 李成桂와 그 側近들은 舍利莊嚴을 造成하여 金剛山 月出峰의 石函안에 封印했읍니다. 高麗末 부처에게 起源하는 靈驗한 場所였던 金剛山에 納入한 舍利莊嚴에는 彌勒의 世上이 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읍니다. 혼란한 世上에 내려와 사람들을 救援하는 存在인 彌勒에게 저무는 時代를 뒤로하고 새나라를 열고자 한 李成桂의 굳은 다짐을 投影했읍니다. 舍利莊嚴을 構成하는 金銅 舍利函에 보이는 티베트계 佛敎美術의 影響은 朝鮮建國 以後 展開될 佛敎 美術의 한斷面을 提供 합니다. 舍利函에 담겨있던 白瓷발은 靑瓷 中心의 高麗陶瓷에서 白瓷中心 의 朝鮮陶瓷로 履行하는 課程을 象徵的으로 보여 줍니다. 高麗末 사람들이 가지고 온 物質文化의 基盤 위에서 이제 새 나라 朝鮮의 旅程이 始作 됩니다.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
쓰러질 듯한 巨大한 絶壁 아래 한 사람이 물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읍니다. 巨大한 絶壁은 붓을 단번에 쓸어내려 表現하였고 絶壁 아래로 뻗어 나온 넝쿨은 筆線으로 表現하여 全體的으로 强熱한 筆墨이 돋보입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강희안의 筆墨를 성글고 거친 붓질이 特徵이라고 한 언급과 맞닿아 있읍니다. 畵面 왼편 가운데 仁齋 印章이 있어 그의 作品으로 傳해오고 있지만 그의 作品으로 보지 않는 意見도 있읍니다.
기려도
騎驢圖
(畵苑別集) 2책 1면
왼쪽에 우뚝 솟은 巖壁 아래 나귀를 타고가는 人物이 보입니다. 나귀를 탄 人物은 自然의 아름다움을 吟味하는 高潔한 文人이나 또는 벼슬길을 피하고자 하는 人物을 象徵합니다. 이 그림에서는 등을 꼿꼿이 세운 人物과 지친듯 등을 굽힌 나귀가 뚜렷한 對照를 이룹니다. 흙백의 강한 對比로 表現된 巖壁과 늘어진 넝쿨, 筆線의 굵기 變化를 人物 描寫는 간결한 붓질로 그려진 나귀와 調和를 이루며 畵面 構成에 生動感을 더합니다.
사시팔경도
四時八景圖
四季節을 두폭식 이른 봄부터 늦은 겨울까지 여덟 場面으로 構成한 作品 입니다. 여름은 물기많은 筆墨으로 겨울은 거친 筆線으로 季節感을 表現 하였읍니다. 이 作品은 單純한 自然 風景의 再演을 넘어 自然 萬物의 生長과 消滅이라는 理致를 理想世界로 形象化한 그림으로 農本 理念과도 깊이 關聯 됩니다. 節氣에 따라 씨를 뿌리고 收穫하는 일은 王을 비롯한 支配者가 반드시 알아야 할 德目으로 여겨졌기 때문 입니다. 이 그림은 百姓의 삶을 理解하고 國政을 運營하는데 必要한 智慧를 상기시키는 役割을 한다고 볼수 있읍니다.
고사도교도
高士渡橋圖
선비가 어깨에 冊을 둘러멘 시동과 개울을 건너는 場面이 각각 表現되어었습니다.
적벽도
赤壁圖
北送의 문인 蘇軾(1037 ~ 1101)의 前赤壁賦 에 나온 뱃놀이 場面을 그린 그림입니다. 소식은 음력 7월 보름에 赤壁 아래에서 배를 타고 詩를 읊으며 달을 鑑賞했는데 朝鮮前期 士大夫들도 消息을 본받아 7월 보름에 배를 띄우는 風俗을 즐겼읍니다. 그림은 絶壁아래 소식과 一行이 술을 마시고 퉁소를 부는 場面이 담겨 있으며 험하고 복잡한 산과 바위의 表現에서 中國 明나라 浙派畵風의 影響을 느낄수 있읍니다. 이 그림은 본래 안견이 그린것으로 傳해지나 그의 畵風과는 差異가 있읍니다.
나라와 백성이 함께 만들다
陶瓷器는 나라에서 使用하려고 全國에서 만든 重要한 貢納品 이었읍니다. 朝鮮은 全國을 빠짐없이 調査하여 地理誌를 펴내고, 江과 바다의 물길을 整備해 全國을 연결했읍니다. 이 길을 따라 全國에서 만들어진 粉靑沙器를 漢陽으로 보냈습니다. . 粉靑沙器는 國家 制度와 地方 장인들의 노력이 만나 다양한 모습으로 제작되었읍니다. 이후 全國의 匠人을 廣州로 불러들여 그릇을 만들게 했고 이곳에서 새하얀 白瓷가 本格的으로 生産되었습니다.
분청사기상감풀꽃무늬둥근네귀달린 항아리
粉靑沙器象嵌草花文四耳壺
世宗(在位 1418 ~ 1450)의 長女인 貞昭公主 墓에 있었던 항아리 이다. 한 점은 高麗 象嵌靑瓷의 傳統에서 벗어나 朝鮮化된 象嵌粉靑沙器 의 面貌를 엿볼수 있고 두 점의 항아리는 連續된 집단 印花무늬를 촘촘하게 粧飾하여 初期沙器의 初期 모습을 보여줍니다. 象嵌粉靑 과 印花粉靑이 한 무덤에서 出土되어 象嵌에서 印花技法으로의 履行과 時點을 象徵的으로 보여 줍니다.
백자청화매화새대나무무늬항아리
白磁靑畵梅鳥竹文壺
시가있는접시
(白磁靑畵詩銘蝶匙)
朝鮮 15 ~ 16 世紀
竹溪月冷陶令醉 대나무 숲 시내에 달빛이 서늘하매 도연명이 취하고
花市風香李白眠 꽃시장에 바람 향기로워 이태백이 잠드네
到頭世事情如夢 눈 앞의 세상일은 정겹기 꿈과 같이
人間無欲以樣前 인간세상 술 없이도 술잔 앞에 있는듯해
분청사기조화.박지.모란무늬항아리
分淸沙器彫花剝地牡丹文壺
끈무늬병
(白磁鐵畵垂彩文甁)
잘룩한 목에 가닥끈을 휘감아 自然스럽게 늘어뜨려 끝에서 둥굴게 말린무늬가 특이하다 單純하면서도 거침없이 그어내린 節製된 筆致는 藝術的 境地를 보여준다. 굽바닥에는 뜻을 알수없는 "니느히" 라는 한글이 적혀 있다.
모란무늬자라병
(粉靑沙器刺地鐵彩牡丹文甁)
國寶260호
납작한 몸체에 주둥이가 달린 形態로 자라를 닮아 자라甁 이라 불린다. 旅行用 물병이나 술병으로 使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늬가 대범하면서도 白土로 남겨진 部分과 細部를 表現한 技法에 흐트러짐이 없다. 박지된 部分에는 검게 칠하여 視覺 效果를 높였다.
연꽃물고기무늬병
(粉靑沙器鐵畵蓮魚文甁)
초콜릿색의 顔料를 使用하여 물고기와 연꽃을 대담한 構圖로 시원스럽게 그려 놓았다. 막 뛰어오를 듯한 물고기는 지느러미가 활짝펴진 모습으로 過狀되게 表現되었고 비늘은 점을 찍어 나타냈다. 忠淸南道 公州市 셰룡산 鶴峯里 一帶 가마터에서 製作된 것이다.
백자청화구름.용무늬항아리
(白磁靑畵雲龍文壺)
龍은 구름을 몰고 비를 부르는 神領한 動物로 東Asia 에서 最高 權力者가 獨占한 象徵物 이었다. 이 항아리는 王室 宴會에서 술을 담거나 종이와 비단으로 만든 꽃나무를 꽃는데 使用했다. 王室 權威를 象徵하는 奇物 이어서 靑華를 사치스럽다고 여겨 禁止했을 때도 繼續 만들어졌다.
백자뚜껑이있는항아리
白磁함壺
정덕십년명석조지장보살좌상
正德十年銘石造地藏菩薩坐像
두건을 쓰고 한손에 寶珠를든 地藏菩薩 입니다. 한 덩어리의 돌을 깍아 만들고 對坐 뒷면에 名文을 새겼읍니다. 元來 觀音菩薩과 한 쌍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地藏菩薩만 남아 있읍니다. 高麗 後期부터 朝鮮 前期에는 죽은後 極樂에 가기위해 또 現在의 삶에서 福을 얻기위해 觀音菩薩과 地藏菩薩을 함께 많이 믿었습니다.이 菩薩은 朝鮮 16 世紀에 나타나는 두건을 쓴 地藏菩薩의 모습을 잘 보여집니다,
기림사건칠관음보상반가상
祈林寺乾漆觀音菩薩半跏像
한쪽다리를 내리고 앉은 觀音菩薩 입니다. 흙으로 만든상 위에 삼베를 겹겹이 쒸우고 옻을 발라 단단하게 만든뒤 속을 비우는 乾漆技法으로 만들었읍니다. 乾漆像은 材料인 옻이 貴하고 製作이 까다로워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高麗後期 부터 朝鮮前期의 豫가 여러 구 남아 있읍니다. 이 像은 太內郡守를 지냈던 李圓林이 發源 했읍니다. 官職에 올랐던 人物이 發源하여 造成한 뛰어난 像으로 注目됩니다.
심곡사 칠층석탑출토청동불감과금동불상
深谷寺七層石塔出土靑銅佛龕金銅佛像
益山 深谷寺七層石塔 基壇에서 發見된 부처와 佛龕 입니다. 箱子模樣의 佛龕안에 7구의 부처와 菩薩이 함께 들어 있었읍니다. 7구 중 크기가 큰 阿彌陀 부처와 觀音菩薩, 地藏菩薩의 三尊像은 元. 明 Tibet係 佛敎美術의 影響으로 날씬한 身體를 드러내고 華櫚한 裝身具를 걸쳤습니다. 4 구의 작은상은 對坐가 없고 부처는 양 어깨를 가리는 옷을 입었읍니다. 朝鮮 前期에는 이처럼 塔안에 부처와 佛龕을 넣는 信仰이 流行 했읍니다.
유점사동종
楡岾寺銅鐘
金剛山 楡岾寺에 모셔졌던 鐘 입니다. 楡岾寺는 15 세기에 여러차례 王室의 後援을 받아 重創 헸는데 이 鐘 여시 당시 王室의 後援으로 만들어진것으로 推定 됩니다. 鐘의 어깨는 둥굴게 내려왔고 여러개의 平行한 線을 돌렸으며 범자와 龍 무늬를 表現 했읍니다. 또 鐘 윗부분 고리에는 두마리의 龍이 살짝 머리를 들고 있는데 이러한 表現은 15세기 王室에서 만든 鐘의 特徵을 보여 줍니다.
훈민정음 혜례본
訓民正音解例本
世宗이 1443년 새로운 글자인 訓民正音을 만들고 1446년에 그 原理를 說明하기위해 지은 冊 입니다. 글자의 原理를 解釋하고 豫를 든 內容이 실려 있어 解例本 이라고 부릅니다. 世宗이 직접쓴 序文, 글자를 만든 原理와 소리를 說明한 글 子音과 母音의 原理를 說明한 글이 실렸읍니다. 당시 使用하던 單語로 한글의 表記를 說明한 部分에서는 朝鮮에서 實地로 使用하던 한글 날말을 찿아볼수 있습니다.